오후 다섯 시쯤 그녀가 병동에 들어섰다. 40대 초반이었고 검은색 짧은 파마머리에 검은색 뿔테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수술한 지 일 년 만에 유방암이 재발하여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였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옷이 헐렁하게 남았다. 많이 말라있었다.
"암이 재발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요. 수술 후에 보조 항암치료까지 다 받았어요."
그녀가 한 첫마디였다. 그러고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 거기에는 '암이 재발한 것이 사실인지, PET CT에서 까맣게 보이는 부분이 다 전이인 것인지, 이번 항암제는 머리가 빠지는지' 등 열 개도 넘는 질문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빽빽한 질문 뒤에 놓인 그녀의 불안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러 질문 끝에 그녀가 마지막 질문이라며 물었다.
"혹시 암이 재발한 이유가 제가 잘못했기 때문인가요?"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며 내 입술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제가 아침마다 늦게까지 잠을 자서, 밥을 많이 안 먹어서, 규칙적인 운동을 안 해서 재발한 건가요?"
그녀는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찾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처음 진단 당시에 유방암 1기나 2기가 아니라 3기로 병기가 높았어요. 그리고 수술 당시 병리 조직 결과가 좋지 않은 형태였고요. 재발한 것은 OOO님 탓이 아니에요. 절대 본인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녀는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말했다.
"그런 거죠? 제가 잘못한 거 아닌 거죠? 정말 그런 거죠? 그 얘기가 너무 듣고 싶었어요."
대화를 좀 더 나누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암이 재발한 이유를 그녀 탓으로 돌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과 형제 모두 '네가 이러이러한 잘못된 행동을 해서 암이 재발한 거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유방암이 재발하는 데에 그녀의 잘못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들이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얹고 토닥였다. 병의 재발 만으로도 버거웠을 텐데, 주위 사람들로부터 너 때문이라는 비난까지 받으면서 어떻게 버텼을까.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러 오는 길 위에서 그녀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그녀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녀의 울음소리에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씻겨 내려가기를 바라며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저 완치될 수 있을까요?"
그녀가 원하는 답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장기까지 전이된 현재 상태에서 '완치'가 될 확률은 희박했다. 그녀에게 섣불리 헛된 희망을 심어주지는 않되,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의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적당한 표현을 고르려 애썼다.
"지금 상태보다 좋아지려고 하는 거죠. 젊으시니까 항암치료를 잘 견디실 수 있을 거예요. 우선 한 번 해보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여섯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녀가 겪은 긴 시간의 마음고생에 비하면 한 시간의 대화는 짧았다.
이제부터 그녀와 하나하나 시간을 쌓아가야겠지. 부디 그 시간들이 너무 괴롭지만은 않기를.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