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할머님 환자였다. 폐암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분이었는데 폐렴 때문에 입원 중이었다. 머리카락은 새하얗고 얼굴 곳곳에 주름이 패어 있었다. 하지만 동그란 얼굴에 웃는 인상 그리고 다정한 말투 때문인지 할머님을 뵐 때면 '귀여움'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떠올랐다. 회진을 가면 숨이 찬 가운데에도 밝은 표정으로 반겨주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매일 청진을 하다 보니 할머님의 거친 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 로션을 자주 바르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집에서 가져온 로션을 거의 다 써서 없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사다 달라고 말하기는 미안해하는 듯했다.
퇴근길에 마트에서 보습 로션을 사서 다음날 갖다 드렸다.
"심심할 때마다 손에 바르세요."
할머님은 되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OOO님 드리려고 일부러 사 온 거예요. 비싼 거 아니니까 편하게 쓰세요. 이렇게 뚜껑을 열고 짜서 쓰시면 돼요."
쓰는 방법도 알려드릴 겸 할머님 손에 로션을 발라 드렸다. 손이 거칠다 보니 흡수가 잘 되지 않아서 여러 번 문질러야 했다.
며칠 뒤 다른 교수님을 뵈러 병동에서 나가고 있었는데 할머님이 나를 붙잡았다. 카드를 건네며 지하 빵집에서 블루베리 롤케이크를 한 개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다른 맛은 안되고 꼭 블루베리여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음이 바빴지만 혼자 이 주째 입원해 계신 할머님이 콕 집어서 블루베리 롤케이크를 사다 달라고 하니 얼마나 생각이 나면 그럴까 싶어 알겠다고 했다.
서둘러 롤케이크를 사 와서 카드, 영수증과 함께 드렸다.
"맛있게 드세요~"
"블루베리맛 맞지~?"
"네 맞아요~"
그런데 롤케이크가 들어있는 종이봉투를 다시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이거 맛있어. 가져가서 먹어요."
"네? 드시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 늙은이 치료 잘해줘서 고마워서...... 이 집 롤케이크 중에 블루베리가 제일 맛있어."
"아...... 괜찮습니다. 좋아하시는 케이크인 것 같은데 OOO님께서 드세요~"
"나는 요새 입맛이 없어서 먹고 싶은 게 없어. 가져가서 꼭 먹어요."
할머님과 나는 그렇게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작년에 지하 빵집이 다른 브랜드로 바뀌었다.
이제는 우리 병원 빵집에서 블루베리 롤케이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 그 할머님을 더 이상 뵐 수 없다.
여전히 블루베리 롤케이크를 볼 때면 그분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