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그녀의 진짜 ‘보호자’] 속편 -
그가 그녀의 법적 배우자가 아니라 만난 지 3년 된 남자친구라는 사실을 듣고 매우 놀랐다. 하지만 그 충격은 반나절을 채 가지 않았다. 그들은 법적인 부부가 아닐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사이좋은 50대 부부였다. 그는 여전히 곁에서 그녀를 살뜰히 보살폈다.
"교수님 저 어제 면사포 썼어요. 너무 예쁜 거 있죠?"
"면사포를 쓰셨어요?"
"아, 내 정신 좀 봐. 면사포 아니고 미사보요. 저 어제 세례 받았거든요. 신랑이 명동성당까지 가서 사 왔어요."
옅은 분홍색에 하얀색 십자가가 수놓아진 사각 주머니가 병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너무 쨍하지도 희미하지도 않은 포근한 분홍색이었다.
"구경해 봐도 될까요?"
"그럼요. 교수님한테도 자랑해야지."
미사보를 꺼내보니 그녀가 왜 면사포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크기만 작았을 뿐 면사포처럼 새하얗고 예뻤다. 화려하지만 촌스럽지 않은 레이스 위에 반짝이가 잔잔하게 뿌려져 있었다. 여태까지 보아온 미사보 중 가장 아름다웠다. 바라만 보기에는 아쉬워서 그녀의 머리 위에 대보았다. 황달로 얼굴색이 어두웠지만 고운 미사보가 그녀의 안색마저 밝아 보이게 했다.
"이거 쓰시니까 더 고우세요."
미사보를 쓴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미사보를 걷어 접으려고 보니 머리카락이 몇 가닥 묻어 있었다. 그녀는 올해 봄 처음 보았을 때보다 머리숱이 꽤 줄어 있었다. 몸을 옆으로 돌린 채 미사보를 접으면서 그녀가 안 보이는 각도로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그녀의 미사보를 직접 만져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고이 접어 다시 분홍색 주머니 안에 넣었다. 올해가 가기 전 그녀가 떠날 것이라는 것을 그녀도 그도 그리고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순간만큼은 마치 그러한 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그녀는 면사포를 쓰고 그와 결혼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녀에게 고운 미사보를 씌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