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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악수

by 서원

항암치료를 받던 40대 위암 4기 여자환자였다. 기력이 없고 다리가 퉁퉁 붓는다며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혈액검사 결과를 보니 신장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복부 CT를 보니 복막에 퍼진 암 때문에 요로가 좁아져 있었다. 소변이 몸 밖으로 잘 빠져나가지 못하니 병목 현상이 발생하면서 우측 신장이 많이 부어있었다. 신장 기능을 회복시키려면 다른 길을 내어 소변을 배출시켜야 했다.
옆구리에 관을 삽입해서 소변이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시술(경피적 신루 설치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완곡히 거절했다.
"지난주 외래에서 제가 2개월 정도 남았다고 들었어요. 굳이 힘들게 시술 같은 거는 안 하고 싶어요."
시술을 하지 않으면 신기능이 급격하게 나빠질 것이고 그러면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더 이상 2개월이 아니었다. 길어야 2주였다. 지금 이 시점에 암의 경과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현재 상태에서 시술이 필요한 이유를 정확히 알린 후에 다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신장기능이 정상일 때는 남은 시간을 2개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신장 기능이 빠르게 나빠지게 되면 남은 시간이 1-2주 밖에 안되세요. OOO님이 암 때문에 나빠지시는 것은 제가 더 이상 막기 어렵지만 신장 때문에 불과 며칠 만에 돌아가시는 것은 막고 싶습니다."
그녀는 그러한 상태인 줄은 몰랐다며 시술을 받겠다고 했다. 다행히 시술은 잘 되었고 신기능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신기능이 좋아지면서 환자의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처음 입원했을 때는 다 포기한 듯한 어두운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회진 때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교수님, 그때 설명하시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어요. 시술을 안 하겠다고 한 제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여명이 2개월 정도라고 설명한 의사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말로 감사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니 내가 감히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인가 싶었다.

앞으로의 남은 시간을 좀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결과 그녀는 호스피스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실이 확정된 날, 이송 사원이 이실을 위해 병실로 왔다. 낯선 병동으로 처음 옮겨가는 날인데 그녀만 보내려니 마음에 걸렸다.

"제가 같이 모셔다 드릴게요."

이송 사원과 함께 그녀의 침대를 끌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했다. 호스피스 병동에 준비된 그녀의 자리는 햇살이 환하게 내리쬐는 창가자리였다. 최근 며칠 날씨가 계속 흐렸었는데 이날은 하늘이 파랬다. 환자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교수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악수 한 번 할 수 있을까요?"

서둘러 알코올 젤을 손에 묻혀 비빈 후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거칠고 앙상했지만 손길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의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녀가 남은 시간을 환한 햇살 속에서 부디 고통 없이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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