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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진짜 ‘보호자’

by 서원

사이가 좋아 보이는 50대 부부였다. 아내가 암으로 수술을 받은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재발하여 올해 봄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입원을 할 때마다 그녀 곁에는 항상 남편이 함께였다. 그는 환자 침상 옆에 있는 좁은 간이침대에서 먹고 자며 그녀를 간호했다. 그녀는 남편을 찾을 때마다 콧소리가 섞인 다정한 목소리로

"오빠~"

하고 불렀다. 남편을 지칭할 때는 '우리 신랑이~'라고 말하였다.

최근에 그녀의 암이 서서히 진행하면서 전신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패혈증도 반복되었고 황달이 진행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올해를 넘기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곁에서 매일 지켜보던 남편도 그녀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황달이 진행하고 있고 혈압도 불안정한 상태라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음을 그에게 설명했다. 그가 예상외의 말을 꺼냈다.

"사실은 제가 남편이 아닙니다. OO이가 혼자 사는 여자예요. 딱히 돌봐줄 사람도 없고 해서 암 진단받을 때부터 제가 병원에 데리고 다니고 있습니다...... (중략)......"

알고 보니 그 둘은 법적 부부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혼을 한 싱글이었고 둘은 만난 지 3년이 된 연인 관계였다. 그녀는 엄마와 남매 그리고 외동딸이 있기는 하지만 오래전 모두 절연한 상태로 교류가 거의 없다고 했다. 보다 못한 그가 그녀의 남동생에게 현재 상태가 안 좋다고 전화를 하였지만 별다른 말 없이 끊었고, 그녀의 딸은 지난 주말에 병원에 처음으로 다녀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머리가 멍해졌다.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법적 혼인관계가 아닌 경우를 많이 보았기에 특별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결국 나는 여태까지 모든 설명을 가족이 아니라 남자친구에게만 했던 셈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내 앞에서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그녀의 마지막 정리까지 본인이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병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부부 사이가 달라지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투병 생활 도중 이혼한 환자(그 이후로 배우자는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았다.), 암의 재발이 환자 때문이라고 탓하던 배우자, 결혼 1년 만에 암이 진단된 경우였는데, 항암치료가 계속되자 사기결혼 당했다며 병실에서 환자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던 배우자 등. 이런 경우를 볼 때마다 암이라는 괴물이 환자의 신체뿐만 아니라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까지도 망가뜨린다는 사실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하지만 만난 지 이제 3년이 된 이 둘은 사이가 나빠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애틋했다. 나이가 든 후에 좋은 인연을 만나 관계를 이어나가던 중 2년 만에 여자에게 암이 진단되었고 또 금방 재발하면서 그들의 일상은 무너져 버렸다. 그럼에도 그 둘은 함께였다. 암에 걸린 이후에 정작 가족은 그녀의 곁에 없었지만 법적 가족이 아닌 그가 그녀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되어 주었다.


1주일이 넘게 이어지던 비가 그친 오늘, 오랜만에 병실에 따스한 햇살이 가득했다. 그래서였을까. 오늘따라 그녀의 표정이 평소보다 밝아보였다. 병원비를 내려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며 나에게 농담까지 건넸다. 그 말을 들은 남편(실제로는 남자친구)은 웃으며

"필요하면 내가 할게. 걱정 마"

라고 답했다.

이 순간의 웃음이 언젠가 그들에게 그리움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문득 가슴이 저릿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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