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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Mar 20. 2022

선택의 픽션

삶과 죽음 사이.

  그러니까 이건 한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무영은 엉겨 붙는 벌레들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창틀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신고 있는 슬리퍼는 아까부터 떨어질 듯 위태롭게 발끝에 걸려 있었다. 가로등도 꺼진 깊은 새벽이라 그런 무영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영은 손목의 흉터를 바라보며 이대로 뛰어내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장단점은 명확했다. 뛰어내린다면 육체적으로 많이 아프겠지만, 길고 긴 삶이라는 고통을 끝낼 수 있을 것이었다.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고통스런 삶을 계속 영위해야겠지만, 육체가 부서지는 아픔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육체가 부서지는 아픔은 잠깐일터였다. 잠깐만 견디면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럼 손목에 자해하며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무영의 결심은 확고해졌다. 그 순간 무영의 슬리퍼 한 짝이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무영은 그 깊은 어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발작적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눈물을 흘렸다. 새벽의 찬바람에 무영의 눈물이 다 말라버렸을 때 창틀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영은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분명…….”

 무영은 이상함을 느끼며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 것도 없는 새하얀 방이었다. 문도 없고 그냥 새하얗기만 했다. 그때 방처럼 새하얀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여자가 무영 앞에 나타났다. 여자는 감정 없는 얼굴로 무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건 뭐죠? 혹시 내가 천국에 온 건가요?”

 무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여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무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한참을 그렇게 웃어댔다. 웃다가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미안, 미안. 내가 혼자 너무 웃었지? 네 꿈이 말도 안 되게 커서 말이지. 네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여자는 웃음을 거두고 싸늘한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무영은 온몸에 한기를 느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딱 왔다. 무영은 여기서 도망가고 싶었다.

 “넌 언제나 도망갈 궁리만 하는구나.”

 여자는 무영의 마음을 간파한 듯 차갑게 말했다. 무영은 깜짝 놀라서 여자를 올려다봤다.

 “자, 내 소개가 늦었지? 나는 자살한 자들을 관리하는 신이야. 모든 자살 시도를 한 자들은 나를 거치지. 요즘 자살을 시도하는 자들이 많아 내가 좀 바쁘단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 끝내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너 정말 죽을 거니?”

 “죽음을 선택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지옥에 가나요?”

 “그런 건 없단다. 죽음을 선택하면 넌 그냥 완전히 소멸하는 거야. 그게 최고의 형벌이지.”

 “어째서 그렇죠?”

 “환생할 기회도, 행복해질 기회도 얻지 못하고 그냥 사라지는 거니까.”

 “환생, 행복…….”

 무영은 골똘히 생각했다. 뛰어내리면 다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다시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 줄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고민이 되나보구나. 그럼 내가 도와주지. 따라와.”

 신은 무영에게 손짓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무영을 감쌌다. 무영은 눈을 꼭 감았다 떴다. 그러자 눈앞에 새하얀 방은 사라지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건 뭔가요?”

 “네가 행복해질 가능성을 담은 공간이야. 이 공간의 끝에 네 행복이 있지. 가보렴.”

 무영은 신을 한 번 바라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끝은 닿을 듯 닿지 않았다. 아무리 걸어도 끝은 나오지 않았다. 분명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 같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면 다시 멀어져 있었다.

 “언제까지 걸어가야 해요?”

 “아직도 모르겠니? 이게 네 삶이야. 네가 삶을 선택하면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야. 행복은 닿을 듯 닿지 않겠지. 그래도 삶을 선택하겠니?”

 “그럼 죽음을 선택하면요?”

 무영의 물음에 신은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웃더니 또 따라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무영이 발걸음을 옮기자 바로 어두운 숲이 펼쳐졌다.

 “알다시피 네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과 달라. 때가 돼서 죽는 죽음이 아닌 시스템을 어지럽히는 죽음이지. 그래서 이번엔 소멸한다는 게 어떤 건지 체험시켜줄까 해. 가봐. 네 소멸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신은 냉정한 말투로 말했다. 무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내딛었다. 그러자 손끝에서부터 살이 타고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영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뒤에서 떠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영의 몸은 한 발짝 한 발짝 옮길 때마다 가루처럼 부서졌다. 언제까지 걸어가야 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걷고 걸어 블랙홀 같은 형체에 다다랐을 때 무영은 마음속으로 ‘그만!’을 외쳤다. 그리고 무영은 다시 새하얀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무영은 가슴을 움켜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신은 그런 무영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제 선택할 수 있겠니?”

 신은 차분한 말투로 물었다.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삶을 선택할게요.”

 “그래. 잘 견뎌보렴.”

 무영의 눈앞에 다시 거센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무영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목과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긴 악몽을 꾼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저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직도 너무 생생했다. 동시에 후회가 밀려왔다. 다시 내일부터 이 지겨운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무영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전까지 겪었던 건 대체 뭐였을까 골똘히 생각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럼에도 삶을 선택했음에 안도했다.



* 오늘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아 예전에 썼던 콩트로 대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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