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고 싶지만, 끝낼 수 없는.
외로움. ‘외로움’의 사전적 의미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한다. 나는 외롭다.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기를 외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나. 가슴에 뚫린 구멍을 모래로 계속 채우고 있는 기분이다. 모래는 끊임없이 흘러내리기 때문에 허겁지겁 주워 담아 다시 채워줘야 한다. 이 고행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마음은 쉽게 바스러지고 무너져 내린다. 나를 이루는 토대가 단단하지 않아서 그런가. 어렸을 적 받았던 학대가 아직도 나를 갉아먹으며 놔주지 않고 있나. 질문은 쏟아지지만 답해주는 이 없다. 나조차도 모른다.
이 외로움을 끝내기 위해 차라리 누군가 날 죽여줬으면 하고 바랐을 때도 많았다. 지금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 고통은 결정적으로 타인의 공감과 이해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더 동굴 깊숙이 숨어들어 혼자 괴로워하는 수밖에 없다. 미칠 듯한 괴로움이 온몸을 조른다. 졸리는 몸을 동굴 벽에 머리를 찧어가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 이런 날 구원해주길 바라기도 했다. 단 한 명이라도 나타나 주길. 이 지옥에서 꺼내 주길. 제발 살려주세요. 하지만 그런 건 없다. 결국 나 혼자다. 친구도 가족도 결국 온전히 날 이해하진 못한다. 내가 그렇듯이. 그렇다면 왜 관계 맺음이 필요할까. 어차피 모래성처럼 무너질 허약한 관계 아닌가. 사람이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모래성의 가치를 찾는다. 사람은 고통 가득한 세상에 잠깐의 진통제가 되어준다. 물론 진통제인 줄 알고 먹었는데 독약인 경우도 종종 있다.
진통제는 결론적으로 독약으로 치명상을 입어 너덜대는 마음을 치유해주지는 못한다. 다만 잠시나마 고통을 잠재워준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제 몫을 한다. 그래서 이해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사람을 찾고 또 찾고 어차피 무너질 토대를 손바닥으로 단단해지게 두드린다. 사막에 씨앗을 뿌리는 누군가처럼 한 줌의 모래를 움켜쥐고 천천히 살아간다. 견딘다. 희망이 재앙이 될지라도 언젠가 외롭지 않은 날도 오길 고대하면서.(외로운 사람들이 새벽에 깨어있지 않고 푹 잘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