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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Nov 12. 2020

'당신에게', 어느 피해 생존자의 편지.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리며.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사실 이 순간이 안 오길 바랐습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는 일이니까요. 아니, 현재 진행형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애써 꾹꾹 누른 채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끄집어내면 한동안 후유증이 심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펜을 들게 된 건 한 번쯤은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간절한 호소를 하고 싶기도 하고요. 부디 잘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을 항상 무서워 하긴 했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걸 본 건 다섯 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구타는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당신은 회식을 마치고 늦게 들어온 그녀 때문에 몹시 화가 나 있었죠. 순식간에 언쟁이 몸싸움으로 번졌습니다. 그녀가 소리쳤죠. “죽여라. 죽여.” 당신은 그녀를 제압하여 바닥에 눕힌 뒤 온몸으로 짓눌렀습니다. 그 장면을 부엌에 홀로 서서 지켜봤죠. 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겨우 다섯 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장면만큼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걸 시발점으로 당신이 그녀에게 더 큰 폭력을 휘두르진 않았어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건 이유 불문 쓰레기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때때로 선풍기는 부서졌고 서로를 저주하고 욕을 하는 소리가 집 안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열 살 때까지는 혼자, 그 이후에는 동생들과 같이 들어야 했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낼 때면 당신은 날 예민한 사람 취급하거나, 다 그러고 산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오히려 그러지 않는 게 건강하지 못한 거라고요. 그 일들로 제가 얼마나 건강해졌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당신이 내게 가했던 ‘직접적인 폭력’을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일곱 살 때였죠. 숙제하기 너무 따분했던 저는 달고나 만드는 거 잠깐만 보고 오겠다고 말하고 밖에 나갔습니다. 아주머니가 달고나 만드는 걸 한참 보다가, 바로 옆에 사는 친구를 만나 놀게 되었어요. 저녁 여덟 시쯤 됐을까요. 꽤 오래 놀았는데도 뭔가 아쉬워 친구에게 더 놀자고 조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날 발견했고 두껍고 커다란 손으로 뺨을 때렸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수차례 뺨을 맞았던 기억이 나네요. 집에 도착해서는 말리는 시늉을 하는 그녀를 제쳐두고 옷을 벗으라고 했죠. 떨리는 손으로 울면서 옷을 벗었더니 화장실에 욱여넣고 엎드려뻗치라고 했습니다. 체감 상 한참 동안 엉덩이와 허벅지를 맞았던 거 같습니다. 잘못했다고 애원하는 목소리는 절대 몽둥이질을 막을 수 없었죠. 맞고 나와서 제대로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엉덩이가 아팠고 단단한 플라스틱 빗자루가 지나간 자리마다 고동색 멍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유도 모른 채 맞았다가 초등학생이 돼서야 당신한테 물었죠. 대체 왜 때렸느냐고. 처음에는 ‘나를 잃어버린 줄 알고 걱정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물어봤을 때는 ‘내 딸이 친구한테 같이 놀자고 매달리고 있는 게 자존심 상해서’라고 했죠. 어느 쪽이든 이해는 안 갑니다. 그때는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인 줄 알았죠. 항상 당신은 폭력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으니까요. 아홉 살 때는 숙제를 늦게 끝냈다고 때리더군요. 제일 어이없었던 건 중학생 때 밥 생각이 없어서 밥을 안 먹겠다고 했더니 동생들 앞에서 내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녔던 거였죠. 그때 내가 사람으로 보이긴 했었나요? 나는 정육점에 매달린 고깃덩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고등학생에서 성인이 되던 무렵에는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어 당신한테 반항하기 시작했죠. 고통에 몸부림치며 악을 썼습니다. 돌아온 것은 무차별 구타였어요.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저항하는 팔을 꺾고 발로 밟았죠.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당신 때문에 온몸이 타버릴 거 같아 베란다로 향해 뛰어내리려고 했을 때 당신은 뛰어내려 보라며 등을 떠밀었습니다. ‘너 안 무섭다’면서요. 무서우라고 한 건 아니고 한 번만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몸부림친 건데 가닿지 않았나 봅니다.


 매일매일 잠들기 전 기도했습니다. “내일 아침 눈뜨지 않게 해 주세요. 잠자듯이 가게 해주세요.” 하지만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직도 지옥 속에 살고 있습니다.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해주길 바랐습니다. 당신한테는 기껏해야 자존심 굽히는 일 아닌가요? 한 번도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마음은 스스로를 맞아도 싼 하찮은 존재로 여기며 간신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자기혐오의 늪이 덮쳐 옵니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모든 아이들이 맞으면서 크는 줄 알았습니다. 그게 정상인 줄 알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죠. 모든 아이들이 맞으면서 자라진 않는다는 걸. 그리고 부모님한테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는 그 친구가 훨씬 행복해 보이더라는 것까지. 눈이 동그래져서 “너희 부모님은 때려?”라고 묻던 그 친구의 말이 가슴을 푹푹 찔렀습니다. 당신은 틀렸습니다. 매를 안 맞고 자라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자라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나와 달리 충만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TV나 영화를 보면 종종 부모님과 자녀의 슬픈 장면들이 나옵니다. 저도 보면서 눈물짓곤 하는데요. 대부분 그 상황이 안타깝고 슬퍼서 우는데 저는 부모의 따뜻함에 웁니다. 슬픈 상황임에도 자녀 캐릭터가 한없이 부럽기도 해요. 나는 평생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랑을 품고 살아갈 테니까요.


 당신은 내 마음이 아픈 걸 장기간 지속되었던 학교, 학원 폭력 탓을 합니다. 물론 그것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정말 외롭고 괴롭게 만든 건 가정에서의 학대였습니다. 집에서 만이라도 행복했다면 나는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편히 쉴 곳은 없었죠. 그래서 지금도 방황 중입니다. 사실 학대의 기억을 잊어버리면 편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최대한 기억하려고 하는지 아세요? 당신이 정말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까 봐서요. 지금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아예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릴까 봐 저라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하는 겁니다. 왜 자꾸 피해 생존자가 학대라는데 체벌이라고 우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안 난다고 없던 일이 되나요?


 저는 지금 몸속 어딘가가 부서진 채 난파선을 붙들고 부유하고 있습니다. 왜 피해 생존자가 호소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해야 한다면, 제발 앞으로는 이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서 나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는 오늘도 우편함을 확인합니다. 당신에게 사과 편지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확인하고 있죠. 부디 부질없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느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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