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올린 글들을 초반부터 보신 분들이라면 이미 아시겠지만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래. 다행히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다. 고통의 강도가 예전보다 훨씬 덜 하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건 고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약간의 통증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우울증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어도 알긴 좀 안다. 직접 겪어봤으니까. 지난주 방송한 <우리들의 블루스> 4회는 그런 면에서 인상적이었다.
<우리들의 블루스> 4회 프롤로그에는 선아(신민아)의 우울증 에피소드가 나왔다. 선아(신민아)는 남편 태훈(정성일)이 아침에 일어나라고 불러도 커튼 친 깜깜한 방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태훈(정성일)이 커튼을 젖히며 화를 내니 그제야 몸을 힘겹게 일으킨다. 마치 몸에 무거운 추가 달려있는 것처럼. 남편 태훈(정성일)의 말에 의하면 선아(신민아)는 몸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며칠 째 씻지도 않은 상태다. 집안일도 방치해둘 정도로 무기력하다. 심지어 시간의 흐름도 느끼지 못한다. 분명 아침에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나가려던 참인데, 아이가 하원할 시간인 저녁이 되어버렸다. 선아(신민아)는 놀라고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다는 걸 체감하지 못할 만큼 선아(신민아)의 상태는 심각하다. 그런데 치료도 받지 않고 있다. 제발 병원 좀 가라는 남편의 다그침은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우울증에 대한 연출을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했다. 우울증 환자가 느끼는 걸 오롯이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선아(신민아)가 힘겹게 일어나서 침대에 잠깐 기대 있을 때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당연히 선아가 갑자기 물벼락을 맞았을 리는 없다. 물에 젖은 것처럼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선아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 장면에 깊이 공감했다. 우울증이 많이 심할 때 나는 항상 물속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아주 아주 깊은 물속으로 끝도 없이 침잠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활동을 해야 할 순간이 오면 물에 젖은 솜같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씻는다'는 사소한 행위조차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겉으로 봤을 때는 멀쩡해 보이니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기도 어렵다. 온전히 나만 알 수 있는 상태, 감정이다. 그걸 캐치해낸 <우리들의 블루스> 제작진이 사려 깊게 느껴졌다. 작품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졌다.
아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만들었던 제작진이라 선아(신민아)의 우울증을 그냥 단순하게 표현하고 지나가지 않은 듯하다.(<괜찮아, 사랑이야>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정신질환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였다.) 프롤로그가 우울증 환자 시점을 다룬 마치 한 편의 단편영화 같았다. 짧지만 강렬했다. 선아(신민아)라는 캐릭터가 궁금해진 건 말할 것도 없다. 전에 <우리들의 블루스>가 우리를 웃기고 울릴 좋은 드라마가 되어주었으면 한다고 썼었는데 정말 그렇게 될 것처럼 보인다. 이제 4회밖에 안 봤지만 배우들 연기며 대본이며 연출이며 뭐 하나 흠잡을 게 없다. 좀 거슬리는 게 있다면 약간 마초 성향이 드라마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사려 깊은 연출을 하는 제작진이 할 선택은 아니었다고 보지만 말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생각을 더 정리해서 다뤄보겠다.
요즘 재밌게 보던 드라마들 대부분 마지막회를 시청하지 못했는데, 이 드라마는 왠지 완주할 수 있을 거 같다. 우울증이 있는 선아(신민아)가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지 동행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 그 외에 다른 캐릭터들 이야기도 기대된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순항을 기원한다.
* 그나저나 한수(차승원)는 이제 더 이상 안 나오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 아쉽다. 보고 싶을 거야. 최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