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친구 J에게 서운한 말을 들었다. 나한테 너무 병원과 약에 의존하지 말란다.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활동을 하면서 증상을 완화시켜 보란다. J가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리고 평소에 양약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어서 한 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는 병원과 약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필요한 만큼의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닐 뿐이다. J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 말은 마치 우울증이 개인의 의지로 해결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떤 병이든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긴 하다. 그 의지가 때론 기적을 만들어내곤 하니까. 하지만 의지만 가지고 병이 낫지는 않는다.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독감에 걸렸으면 타미플루를 맞아야 하고 약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암에 걸렸으면 수술도 받아야 하고 항암치료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다들 정신질환은 치료를 받지 않고도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몸의 질병보다 이해받기 어려운 것 같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사랑하는 J까지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면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을 한 게 J뿐만이 아니다. 부(父)도 언제까지 약 먹을 거냐고 운동으로 극복해보라고 했다. 운동으로 우울증을 극복한(?) 사례를 예시로 들면서 말이다. 운동이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 건 맞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 운동을 시작할 힘이 없어서 우울증인 것이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심하게 무기력한 것이다. 어쩔 때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 헐크의 파워가 필요할 때도 있다. 우울증을 앓지 않는 사람들의 귀차니즘과는 차원이 다르다. 약은 헐크의 파워까지 없어도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수단이다. 물론 언젠가는 다 나아서 약 없이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다 나았을 때 이야기고, 약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빨리 끊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필요는 전혀 없는 거 같다. 오히려 그게 나아지는데 방해 요소가 되지 않을까.
솔직히 운동을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세태에 신물이 난다. 이 병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참고로 우울한 것과 우울증은 다르다.) 자칫 잘못하다간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병인데 말이다. 우울증 환자의 주변인들이 할 일은 “누가 이렇게 해서 나았대. 그러니 너도 해봐.” 이런 식의 조언이나 해결책 제시가 아니라, 아픔에 충분히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다. 그게 섣부른 조언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낳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실제로 내가 힘이 나는 때도 그럴 때니까.
노파심에 말하자면 이 글은 우울증에 약이 최고라고 말하는 것도, 운동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울증을 좀 더 사려 깊게 봐달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우리는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인 만큼 섣부르지 않은 다정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나와 내 주변인이 걸렸을 때 잘못 대처하지 않을 수 있게. 그게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고, 다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