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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농부 Jan 02. 2021

이번 생은 틀린건가 - 1

part-1

넌 뭘 잘해? 이렇게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글쎄 난 잘하는 게 뭘까. 어렸을 땐 공부를 잘하는 게 최고인 줄 알았다. 나 역시 어렸을 땐 공부는 곧 잘한다 생각했다. 어린 시절 자란 시골에선 서울이란 곳을 마냥 동경했었다. 서울 가면 공부는 당연히 더 잘해지고 뭔가 다 좋아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 먼저 가 있던 형을 뒤따라 온 식구가 서울로 올라갔다. 그렇게 기대하며 동경하던 서울로 온 것이다. 하지만 부푼 기대가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 나보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애들도 시골에서 올라왔나 라는 생각이 드는 친구들도 많았다. 잠시나마 내가 이 정도로 잘했나 싶기도 했다. 그 역시 내 착각을 깨 주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잠시뿐이었다. 고등학생 되니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은 아주 많이 넘쳐났다. 그렇다고 운동이든 뭐든 딱히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없다. 주변에 뭔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을 보면 늘 부러워했다. 왜 난 저런 특별한 재능이 없는 걸까. 

정말 재능은 타고나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난 이번 생은 틀린 거냐. 공부도 재능이 없어. 예체능도 재능이 없어. 아! 게임하는 건 밤새워서도 할 수 있긴 했다. 지금은 게임도 e-스포츠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러기엔 지금 나이가 너무 많다. 그럼 도대체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은 뭐란 말인가. 


 다시 꿈부터 찾아야 하는 건 아니지. 재능은 발견이란 말도 있다. 만드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 어떻게 발견하냐고? 그건 경험뿐이다. 경험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날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듯이 재능이 발견된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남자에겐 재능 발견의 시간을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부여한다. 바로 군대란 곳이다. 일단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준다. 충성심을 만들어 준다. 나도 모르는 특기를 부여한다. 참을성을 만들어 준다. 인내심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이 많은 재능의 시간은 제대하는 순간 물거품처럼 다시 사라진다. 데신 허세란 재능을 만들어 준다. 단점은 이 허세가 시도 때도 없이 발현되며 평생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재능은 타고나고 싶지 않다.  재능이란 능력과 일치하기도 하지만 무언가 타고나야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타고난 재능이 없다. 그럼 재능은 없고 능력은 있고? 능력도 없다고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재능은 없어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최소한 어떠한 일을 감당해 낼 힘만 있으면 된다. 

재능이 타고난 것이라면 능력은 경험과 훈련으로 획득할 수 있다. 곰곰이 잘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뭔가 소소한 재능 같은 게 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상장을 뒤적거려 보았다. 일단 빠지지 않고 있는 개근상. 상당히 성실한 재능은 타고난 듯하다. 그리기 우수상. 이건 뭐지? 나 그림 실력은 젬병인데. 뭔가 표절을 하지 않았나 싶다. 줄넘기 금상. 시골에서 논이고 산이고 심지어 저녁까지 그렇게 뛰어놀았으니 체력 훈련은 잘되어 있었을 것이다. 학력평가 우수상. 시험 보고 빨간 색연필로 일일이 채점하던 시절이다. 몇 개 미만 틀리면 주던 상이다. 잠시 몇 개 안 틀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 재미가 좀 더 오래갔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글짓기 최우수상. 오 나에게도 이런 능력이. 아마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 탓에 그나마 글로는 나름 잘 표현했나 보다. 이렇게 보니 특별한 재능까지는 못 되더라도 나름 여러 능력은 있었던 게 확실하다. 이런 재능이나 능력은 어린 시절 훨씬 많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많은 것들을 살리지 못하고 오로지 수능만을 위해 공부만 시켰으니 재능이나 능력이 사라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한땐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는 전날 저녁은 물론 새벽부터 100여 미터가 넘게 줄이 늘어져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유명강사의 학원 강의를 듣기 위해서이다. 부모님 가족이 대신 줄을 서는 것도 모자라 줄을 대신 서주는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현재에도 좋은 대학만 가면 마치 인생이 성공이라도 할 것이란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행복을 위해 함께하는 핀란드 같은 교육은 못 되더라도 지금 같은 입시제도는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2020년부터 대입시험이 달라진다. 객관식으로 출제되었던 대입시험을 폐지한다. 대신 논술형 문제로 시험을 내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물론 여기에도 논술형이다 보니 채점 방식 등에서 많은 논란거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교육혁명 제도는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우린 교실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선생님 수업만 들어야 했다. 수업 시간엔 서로 논의하고 발표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수능만을 위해 초중고 12년이란 시간을 보내기엔 10대 학창 시절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물론 학창 시절 기본적인 교육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수능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학생들의 능력과 재능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더 배우고 싶은 곳이 대학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난 다른 것을 찾고자 한다면 과감히 대학은 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대학에 간 것을 후회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당시에 SKY라 불리는 서울 명문대라는 대학에 들어갈 능력은 못 됐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보내려고 하는 지방까지 내려가 다니긴 싫었다. 그래도 대학은 가고 싶었는지 가까운 전문대 2곳에만 원서를 냈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열심히 설거지하는 도중에 연락이 왔다. 합격. 그것도 추가 합격이란다. 그래도 합격이라니 당시엔 기쁜 마음에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에 대한 판타지도 길어야 몇 개월이다. 한 학년이 지나고 나면 대부분 달라진다. 조금은 정신을 차렸다고 느낄 무렵 이젠 군대라는 곳을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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