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나는 군대 시절 보직을 3번이나 변경된 특이 사례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군대 생활 꼬인 케이스다. 상병 무렵 동기가 있는 간부식당이란 곳으로 최종 보직을 맡게 됐다. 일반 취사병이라고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 군인이 아닌 직업군인인 간부 대상으로만 밥을 해주는 곳이다. 내려오는 정해진 식단대로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식재료를 이용하고 직접 식단도 짠다. 영양을 고려한 균형 잡힌 식단은 알 리가 없었다. 그냥 사수에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개인적 주관이 많이 반영된 요리를 주로 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요리를 해볼 수 있었고 요리 실력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도 하나 배웠으니 말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제대하고 나니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외식업 분야가 되었다. 제대하면 그렇게 놀고 싶었는데 막상 제대하니 할 일이 없었다. 3일 만에 무작정 돈가스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초밥도 만들어 보고 그러다 정말 초밥집에서도 일했다. 하지만 초밥을 만들기보단 생선회 뜨기 좋게 손질해주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열심히 판매만 해야 했다. 이후 다시 복학한 대학은 그 당시 새로 신설한 TV 방송 통신과 라고 흥미로워 들어갔었으나 대부분 전공을 살리지 못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졸업하고 나니 당장 취업이라는 현실 앞에 맞닥뜨렸다. 그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던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에 가고 군대까지 다녀오면 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 앞에 나온 난 막막했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학창 시절 대학 군대 이 모든 게 심하게는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일단 이런저런 이상한 회사에도 들어가 보고 그냥 나오기 일쑤였다. 당장 생활비가 없어 동네 근처 PC방 아르바이트라도 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떨어졌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번 생은 틀린 건가. 비로써 사회라는 현실의 쓴맛을 맛보게 된 것이다.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월급 많이 주는 곳을 찾아 무작정 들어갔다. 작은 회사 사무실에서 일이 힘든데 괜찮겠냐고 물어왔었다. 나는 괜찮다 상관없다고 했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 뒤로 사무실에서 왜 그렇게 물어봤는지 뒤늦게 알 수 있었다. 불닭 전문점이었는데 서울 홍대 번화가에 있는 매장이었다. 그런데 오후 5시쯤 오픈 전 시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여기 뭐지? 그 뒤로 밤늦도록 줄이 계속되었다. 오후 10시 넘어야 겨우 대기 손님이 없어질 정도로 쉴 틈 없이 일해야 했다. 왜 그렇게 전에 물어봤는지 월급을 다른 곳보다 많이 주는지 알만했다. 새벽 늦게까지 일이 끝나고 집에 가서 자고 다시 출근하고 수개월을 하다 보니 돈은 금세 모이기 시작했다. 몇 년 버티고 나니 어느새 한 매장의 최연소 점장을 맡게 되고 이후 본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5년쯤 버텼을까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회사가 직원 100여 명 이상 커지다 점점 다시 작아지더니 직원들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거의 마지막까지 남았던 나는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퇴사 후 무작정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나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전환점을 갖고 싶었던 듯하다. 스스로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돌아와선 전 직장 동료 소개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번엔 중식 프랜차이즈 회사였다. 바로 본사로 출근하여 시작한 사업부는 2명이 도맡아 일하며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했다. 결국 매장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뭔가 속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짬뽕 전문점을 오픈하여 줄을 서서 먹는 곳으로 인기를 끌며 매장을 키워 나갔다. 내가 다 키운 건 아니지만 매장 운영부터 매뉴얼 작업, 가맹점 오픈 교육 등 꽤나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그렇게 또 수년간 60여 개 넘는 매장을 개점해가며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회사는 기존 브랜드 등 사정이 좋지 못하여 점점 어려워졌다. 직원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뭔가 데자뷔가 떠오른다. 30대 초반 나이에 오픈부터 시작한 내가 직원들이 많이 나가니 어울리지도 않는 무늬만 사업부장이 되고야 말았다. 말이 좋아 사업부장이지 직원이 초창기처럼 한둘밖에 남지 않았다. 나 역시 권고사직으로 인하여 결국 퇴사를 하게 되었고 이후 회사는 거의 정리하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이상하게도 두 직장 모두 초기에 시작하여 잘 나가다 결국 안 좋아져 마지막에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20대와 30대 초반은 나름 대박 난 프랜차이즈 회사 두 곳을 경험했다. PC방 아르바이트 자리도 떨어졌던 내가 많은 것을 얻고 배운 사회생활이었다. 그렇게 직장을 나온 후 잠깐의 휴식기를 가지며 우연히 달팽이를 접하게 된 것이다. 32살의 나이에 그동안 해온 일 경력이 있는데 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할지. 아니면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볼지. 고민의 갈림길에 선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던 것처럼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욕망이 컸던 듯하다. 아니 이상하게 특이한 것에 끌렸다고 해야 하나. 남들이 많이 하는 평범한 것은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반대로 많이 하지 않는 것이라 더욱 어렵겠지만 그걸 극복하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거니까. 사실 지금 돌아보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랬나 싶기도 하다. 달팽이농장이라…. 귀농도 아니고 귀촌도 아니다. 먼 훗날 꿈꾸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때 아니면 언제 또 해보겠어! 그렇게 30대 나는 달팽이농장에 취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