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문학이 인간을 살찌운다.

by 서은


시월 들어 서관에 한 자 되게 눈 쌓이면,

이중 휘장 폭식한 담요로 손님을 잡아 두고는,

갓 모양의 냄비에 노루고기 전골하고,

길게 뽑은 냉면에다 숭채 무침 곁들인다네.

-다산문집 여유당전중



우리나라에서 평양냉면에 대한 첫 음식 리뷰는 다산문집 여유당전이 최초이리라.

다산 정약용 선생이 황해도땅에서 선주후면, 먼저 술을 한잔 기울이고, 면맛을 보시던 순간이 어떠했을지 자못 떠올리게 된다. 그분이 평양냉면을 드시던 당시의 상황이 어떠하셨는지, 낮술이라 풍류셨을지, 밤이라 오롯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평양냉면을 맛본 기록을 남기셨으니, 평양냉면이라는 음식과 삶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당시도 냉면은 겨울이 제맛이었는가 보다. 눈이 한자가 되게 쌓인 추운 겨울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먹는 평양냉면은 이한치한도 아니고, 얼마나 따뜻하였을 것이며 동시에 얼마나 시원하고 맛났을까 싶다.

평양냉면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으로 선주후면이 손꼽히는 것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애주가들이 이 전통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산문집에서 냉면을 서술하신 정약용 선생의 글에서 보이듯이, 사람들의 DNA 속에는 음식이란 것에 대한 특별한 자세가 있다.


음식의 이면에는 단순한 먹거리, 우리의 피와 살을 찌우는 수단을 넘어서는 무엇이 분명 존재한다.

심플한 평양냉면을 먹을 때 먼저 기울인 술 한 잔은 몸과 마음을 여유롭고 따뜻하게 가열해 준다.

한 잔 술로 되살아난 섬세한 미각은 심심한 평양냉면의 차가운 매력에 집중하게 만들고, 다음번에는 술 한 잔이 없어도 더 슴슴, 심심한 평양냉면 맛의 진심을 느끼고자 우리는 사력을 다하게 된다.


사람도 아닌 음식의 진심을 느끼고자 사력을 다하는 전통 역시도 오늘날 수많은 평양냉면 초자들이 행하는 관례가 되었다. 평양냉면은 어떤 이들에게는 난해한 문학서적과도 같다. 이 맛을 먹고 느끼고 찬양하지 않으면 광분한 평양냉면 신도들에 의해 욕을 얻어 처먹기 십상이다.


호불호는 인정되지 않고 싸구려 입맛으로 평가절하된다. 그래서인지 평양냉면의 첫맛이 사랑스럽지 않았던 이들은 곧바로 뒤돌아서서 맛이 과대평가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욕을 하기도 한다.

이들이 욕을 하는 것도 타당해 보인다. 이북지방에서 소소하게 먹던 서민음식 평양냉면은 남한으로 상륙해 무지하게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지 않은가? 이 정도 가격이면 고기가 들어간 해장국 한 그릇이 가성비가 좋지 않은가? 정신적인 만족감? 이것 역시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평양냉면에서 재미를 못 본 이들에게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 적으로도 평양냉면 가격의 고기 해장국 한 그릇이나 좋아하는 동일 가격대 음식이 정신적으로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평양냉면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희소성과 나름의 음식의 품격에 대한 독특한 자부심이 문화적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가치는 쉽사리 넘보거나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음식은 무엇일까?

음식이라고 포괄적으로 적기보다는, 부러 마음을 들여 정성껏 만든 맛있는 한 그릇 요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음식의 의미는 사람들에게 수천 가지, 수만 가지의 이유를 만들어준다.

단순히 처음 먹어본 신기한 맛일 수도 있고, 미각의 흥분이 아름답게 느껴졌다고만 찬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적으로는 만들어준 대상에 대한 좋은 기억 혹은 그리움이 되어 물들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한 서글픈 작별 가로 눈시울을 적시게도 한다. 문학에 노벨상이 있다면 음식에는 미슐랭이 있다. 나는 이런 음식을 만든 모든 요리사들의 마음을 사랑한다.


내가 먹어서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을 넘어 내 마음에 원기를 북돋아 주고, 살고자 하는 의지와 의미를 함께 부여해 준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문학작품 속에서 마음으로도 피와 살이 돼준 특정 문학 작품들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입으로는 음식의 맛을 보지만, 정작은 무언가를 전달해 주고 싶어 하고 전달받고 싶어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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