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전쟁이 일상이 될 때

아다니아 쉬블리, 『사소한 일』 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등산로 오르막길 옆 건물의 공사가 마무리되었나 보다. 엄청난 먼지를 뿜어대는 터보 분사기는 새집을 깨끗하게 만드는 동시에 등산로 한편에 먼지 구름 통로를 만들었다. 나는 멀찍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말았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자 산에 오르는 것인데 먼지라니? 나는 이 사소한 일을 참을 수 없었다. 8월의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서 먼지 구름을 뒤집어쓰고 땀을 흘리며 일하는 외국인 청소 노동자들의 그을린 얼굴과 땀, 고된 노동은 안중에 없었다. 나는 그저 내 몸 어딘가에 내려앉을 수도 있는 약간의 먼지만을 걱정하였다. 먼지가 무슨 큰 해악이라도 되는 양 조금 가파른 샛길을 선택했다. 평상시라면 절대 기어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간 내린 비로 등산로는 조금 더 습하고 풀들은 높게 자라 있었다. 잠깐이나마 먼지가 내려앉는 게 싫어서 이 습하고 축축한 풀숲을 가로지르게 생겼구나 생각하던 중 무심히 오른쪽 팔뚝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유난을 떤 대가인가? '물것'이었다. 곧, 왼편 손가락 두어 마디며 팔뚝이 심하게 가렵기 시작했고 나는 벌겋게 생채기가 날 때까지 내 몸을 긁어댔다.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을 읽고 난 직후의 무거운 기분 때문일까? 수면 중 물것에 물린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극심한 경련에 빠진 이스라엘 소대장이 떠올랐다. 가볍게 물린 것도 이렇게나 짜증스러운데, 타오를 듯 건조하고 더운 팔월의 네게브 사막, 극심한 통증과 피고름을 참으며 정찰 업무를 반복했을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직무 우선이라는 명분이 전쟁 중 벌어진 끔찍한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주거나 사소한 일로 치부되어도 안될 일이다.




모든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이곳에 도착한 이래 처음이었다. 술도 한몫했을 터였다. 술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날 밤 모든 병사들이 조금씩 마실 만큼은 되었다.

아홉시 반경, 그는 다시 일어나 다들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그의 두 눈은 충혈되었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그날 아침 진지로 끌고 온 소녀에 대해 언급하며 병사 몇이 그녀를 건드렸다고 말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면서 방금 전까지 막사 안을 채웠던 유쾌한 분위기가 잦아들었다.

몇 분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 그가 다시 입을 열어 그들의 선택은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소녀를 진지 식당에서 일하게 하든지, 아니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녀를 가지고 놀든지.

병사들은 놀라서 잠시 멈칫했다. 몇몇은 다른 동료들의 눈치를 보았고, 다른 병사들은 혼란과 의혹에 차 눈길을 외면했다. 그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덫을 놓는 건지, 아니면 술에 취한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차 여기 저기서 웅성웅성 목소리가 커지더니, 재빨리 후자를 선택하자는 요란한 집단적 요구가 형성되었다.

(아다니아 쉬블리 장편소설, 사소한 일, 도서출판 강, 2024)




1부와 2부로 구성된 아다니아 쉬블리의 장편소설 『사소한 일』은 전쟁터에 사소한 일로 잊힐 뻔한 두 개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이 역설적인 제목이 지목한 시간들은 실제로는 지독하게 냉담한 현실로, 피해자에게는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의 기록이다. 더군다나 피해자는 사막의 먼지 모래처럼 자신의 고통을 기억할 수조차 없는 존재가 되었다. 전쟁이 일상이 될 때 잔인무도한 사건들은 하나의 해프닝이 되고 만다. 누군가 집착하면서 주목시키지 않으면 버려지는 사소한 이야기들인 것이다.


작가는 하나의 사건을 집착적으로 서술했고, 우연한 연결점을 발견하고 집착에 빠진 주인공의 추적을 불안하고 조심스럽게 서술해간다. 그리고 독자가 집착에 빠지고 긴장과 안도를 반복하는 짧은 순간 빵~ 터지는 한방의 총소리처럼 허무하고 심술궂게 이야기를 끝내버렸다. 끝없는 전쟁이고, 그곳에서는 지금도 사소하게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기에 결말을 맺지 않았을 것이다.


1부는 시온주의를 표방한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가자 지구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정착촌을 확장해가는 시기 중 벌어진 일이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주권과 생존권을 침해당해 식민지화에 저항하는 시점이다. 1948년 8월 네게브 사막 니림마을에 주둔한 이스라엘 점령군 소대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소녀 강간 살해 사건은 단 5일간에 벌어졌고 잊혔다. 극사실주의적 기법으로 마치 사진을 보는 듯 지루할 만큼 시공간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장황한 묘사는 사물이나 사건에 객관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인물 표현에 있어서는 냉정함이 더 강하게 드러났다.


한밤중 물것에 물려 극심한 고열이 오르고 며칠 새 피고름이 터져 썩은 내가 진동하는 상처를 입은 이스라엘 지휘관이 8월의 타오르는 더위와 긴장감 속에서 정찰 업무를 반복한다. 여느 때처럼 정찰 업무를 수행하던 중 아랍인들을 발견하자 별다른 확인 절차도 없이 사살하고 같이있던 팔레스타인 소녀를 생포했다. 규율과 규칙 준수에 엄격한 원칙주의자이자 데려온 소녀와 개마저 씻겨야 하는 청결 주의자이자였던 소대장. 돌연 무엇에 압도되었는지 스스로 원칙을 깨뜨리며 소녀를 강간하고 병사들에게 집단 강간을 부추기는 암시를 한다. 소녀는 소대장을 비롯해 수많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굳이 없는 이유에 개연성을 조금 부여해 보자면 소통의 부재 때문이었을까?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이스라엘 소대장과 아랍어를 사용하는 소녀는 동정이나 연민을 불러일으키거나나 부당함을 토로할 대화가 전혀 없었다. 언어문제가 아니라 소대장 개인의 문제였다면, 물것에 물린 뒤 극심한 고통과 정찰의 긴장감에 한순간 무너져버렸을까? 그것마저 아니라면 병사 몇이 소녀를 겁탈한 뒤, 자신의 완벽주의와 인도주의적 원칙이 훼손된것에 대한 분노일까? 이 사건은 50년 동안 네게브 사막에 소녀와 함께 묻혀버렸다. 한 소녀를 향한 집단 강간과 죽임은 주목되고 분노할만한 큰 사건이지만, 전쟁이 일상이 된 중독의 역사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이런 종류의 악행은 '아주 흔하고 사소한 일들'중 하나가 되고 만다. 그리고 여전히 일어난다. 사소한 일로.


2부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 팔레스타인 여성의 이야기이다. 1부가 조금 더 리얼하게 폭력적이고, 2부가 조금 더 정치적 색채가 짙달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적대적 전쟁을 벌이는 연속선상에 놓인 상황에서 폭력은 일상화되고,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2000년대 웨스트뱅크 팔레스타인 구역의 한 여성이 사반세기 전 벌어진 소녀의 죽음이 자신이 태어난 날짜에 벌어졌다는데 집착한다. 꼭 그래야만 할 이유도 없는데도, 여성은 신문기사 하나에 꽂혀 목숨을 건 취재여행을 떠난다. 여성은 매 순간 마음을 졸이면서도 실제 넘지 말아야 할 땅의 경계를 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경계도 넘으며 온갖 경계선을 넘는 경험을 한다. 딴에는 조심스럽게 여행을 이어가던 그녀는 커져버린 호기심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은 치명적인 상황에 놓이고 만다.


소녀가 죽던 날짜와 같은 날 태어난 여성의 죽음은 1부와 2부가 같은 연속선상에 놓여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전쟁 중인 이 땅에서 벌어진 한 소녀의 죽음이 사소한 일로 잊혔듯이, 여성의 죽음도 사소한 일로 잊힐 것이다. 후일 어떤 친절한 목격자가 증언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완전무결하게 묻힐 것이다.

이 책의 1부와 2부는 시간의 간극도 존재하고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두 개의 사건이 벌어지는 사소한 분위기나 기운들은 참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다른 개별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서로 벌어질 일을 암시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사소한 일』과 같은 제3세계 소설을 읽을때만다 이게 지엽적인지 세계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다니아 쉬블리의 작품은 지엽적인 소재를 다뤘으나, 이 지엽적인 소재는 결국 세계적인 이슈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늘 전쟁인 나라거니 하고 잘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가짜 뉴스가 어느 한쪽을 지지하면 곧잘 반대편에 대한 반감을 갖는게 대중이다. 사실 세계는 팔레스타인들이 겪고있는 알나크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쪽이고 반복되는 인종말살의 상황에서 감정은 값비싼 사치가 된다. 누가 너희를 죽이러 온다면, 먼저 일어나서 그를 죽여야 한다. 그것이 전쟁이다. 제3자가 어느 누가 옳다고 하기 힘든 것이다.


디아스포라로 세계곳곳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부를 축적한 뒤 미디어의 힘을 빌렸고, 테러리스트 하마스에 대한 세계인의 반감을 고조시켰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인종청소를 겪은 이스라엘이 이번에는 자신들의 시온주의를 극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아랍인에게 똑같은 행위를 벌이고 있다. 굳이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보지 않아도, 제3자의 눈으로 보아도 똑같은 행위이다. 결국 답이 없는 이 땅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전쟁은 정치나 어떤 다른 수단으로든 해결하기 힘들어 보인다. 끝나지 않을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해결책은 결국 인간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무뎌진 눈으로 응대하는 것이나 은연중 폭력행위를 즐기는 잔인성이 우리 안에는 내재해있다. 인간성의 상실이 가져오는 비극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자각과 반성, 고통을 받은 타자에 대한 연민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문학도 한몫을 할 것이다.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사소한 일』이 다시 한번 타인의 고통에 연민과 도움을 주어야할 충분한 이유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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