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왕 형제의 모험』꼭 해야만 하는 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사자왕 형제의 모험』리뷰와 에피소드

by 서은

이사 온 직후 약수로 유명한 인근 산사를 찾아가 보고 싶었다. 비교적 높지 않은 산이니 열심히 오르다 보면 산사가 나오리라 기대했으나, 매번 찾지 못하고 한 계절이 지나버렸다.

길 묻기도 주저하는 자신의 변변찮음에 화가 날 지경이 되어서야 등산복이며 스틱을 제대로 갖춘 분들께 길을 묻기 시작하였다. 이런 복장이면 산사의 위치 정도는 잘 알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인데, 수차례 물어보아도 아는 이가 드물었다. 안다 해도 지목한 방향이 도저히 길로 안 보이거나 어른 키만 한 수풀이 우거져있어 헤치고 나가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니 복장이 완벽한 프로 산악인의 목적은 등반이며 정상일 터 그걸 생각 못 하였다. 결국은 미로처럼 복잡하게 느껴지는 산속에서 숨어버린 산사를 발견하지 못하고 생각할수록 허허로움만 깊어갔다.


이후로는, 불자도 아닌데 꼭 사찰을 찾아내야 하나? 혹은 시대와 함께 묘연히 사라진 절로 싱겁게 정리하고 나 역시 정상을 오르는 데만 집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유달리 크고 괴상한 새소리에 홀린 듯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다. 궁시렁궁시렁 자신의 멍청함을 비약하며 나아가던 중, 조악하게나마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계단이며 앉을 수 있는 벤치, 건너가도록 널빤지를 대놓은 얕은 물웅덩이 길을 지나갔다. 그래도 인적이 느껴지는 게 사람이 다니는 길인 게야. 속으로 되뇌며, 이번에는 길을 발견한 스스로의 눈썰미를 칭찬하였다.


커다란 청설모 녀석이 날카롭고 높은 소리로 끽끽 짖기도 하고, 내 주변을 까불며 놀려먹던 구간은 빠르게 통과했다. 가끔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의 기분 좋은 동행을 느꼈다. 지저귀는 새소리들이 유난히 다채롭게 섞인 길에서는 귀가 먹먹해졌다. 새소리의 먹먹함에 익숙해지던 어느 순간 나는 들었다. 새소리와 달리 낮은 톤으로 울리던 단아한 독경 소리가 점차로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을. 산사의 독경소리는 점차로 선명하고 웅장해지며 산속의 방랑자를 자신으로 품 안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시야가 확 트이면서 아름답고 다정한 절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백년의 고독』에서 아르카디오는 예언자이자 방랑자였던 집시 멜키아데스에게 마꼰도를 어떻게 찾았는지 물었다. 그는 새소리를 따라왔다고 답했다. 마꼰도 부락에서는 수많은 종의 새들을 기르고 있었다. 그렇게나 긴 시간 허다하게 애를 써도 찾지 못했건만, 나도 멜키아데스처럼 새소리에 이끌려 산사를 찾은 것이다.


산사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대 이상의 위안을 주었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대웅전은 『나의 해방일지』에서 삶이 주는 고통 속으로 침잠하는 두 연인에게 기꺼이 쉴 자리를 내주었다. 산사가 말보다 긴 침묵으로 위로가 돼 주었기에 그들은 이전보다 덜 말을 아낄 수 있었다. 침묵과 시선으로는 전할 수 없었던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었고 상대방은 충분히 납득하였다. 현실이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봄이 다시 왔다.

지치고 힘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듣고 싶었던 산사의 독경소리. 더 이상은 나 혼자 듣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신기루처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평화로운 산사를 찾아, 거친 숲 속을 헤매고 방랑하며 베이고 상처 입었다. 그러나, 사자왕 형제처럼 낭기열라나 낭길리마를 통과하지 않고도 현실에서 한데 뭉쳐 자유를 위해 싸웠으며 독재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독재에 굴복할 때 오는 최고의 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자의 손에 의해 통치되는 것임을 우리는 필요한 시간에 정확히 기억해 냈다. 그리하여 또다시 통치되는 저주스러운 벌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한 번 더 하였다. 이제 두 번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날 '들장미 골짜기'는 온통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탱일의 부하들만은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가슴 아파하기는커녕 그들은 탱일이 '들장미 골짜기'에 오자 한결 기뻐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으레 탱일은 부하들에게 잔치를 베풀기 때문입니다. 죄 없이 목숨을 잃은 사람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맥주통이 광장으로 실려오고 돼지고기가 구워졌습니다. 그 냄새가 온 골짜기에 퍼지고 탱일의 부하들은 실컷 먹고 마시면서 탱일을 찬양했습니다. 탱일이 부하들에게만은 온갖 필요한 물건들을 대주니까요.

"하지만 저 악당들이 먹는 돼지고기는 '들장미 골짜기'에서 빼앗은 거야. 저 맥주도 물론 우리가 만든 거지.

마티아스 할아버지가 분한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

요나단 형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림없어. 우리처럼 한데 뭉쳐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걸 텡일은 상상도 못하겠지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사자왕 형제의 모험, 창비, 1983년 7월 20일)



스웨덴 판타지 아동문학의 대표적 고전 소설인 이 작품은 불길같이 거침없이 타오르고 번지는 환상, 부조리한 다층구조를 질책하는 엄한 꾸짖음, 형제애를 넘어서 인류애를 도모하는 두 소년의 모험을 유익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또한 겁 많고 병약한 카일이 죽음을 통과해 용감한 소년으로 재탄생하는 성장 소설이기도 하고, 동화 속 화두라기에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죽음'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 이후에도 삶은 연거푸 이어지고, 사후세계는 어쩌면 더 자유롭고 나아질 수도 있으며, 삶은 유한하지만 죽음을 통해 무한할 수도 있다는 격려랄까 위로를 주는 작품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나이순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는 아이들도 직면할 수 있는 고통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과감히 꺼내주었고, 어쩌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혹은 적어도 일말의 희망을 품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소설의 초입부 형 요나단은 죽음이 예고된 카일을 살리고자 화마 속에서 동생을 없고 2층에서 뛰어내려 사후세계인 낭기열라에 먼저 도착한다. 어린아이로 써는 힘든, 굉장한 사랑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런 계산 없고 주저 없음은 오히려 순수한 아이라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작품 속에서 요나단은 카일을 돌보기도 하지만, 시종일관 본보기가 되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멘토가 된다.


형이 먼저 떠난 후에도 동생 카일의 삶은 가난과 병으로 점철되었고 세상은 여전히 외롭고 재미없지만, 형이 이끈 사후세계 낭기열라에서는 오히려 건강하고 자유로운 신체를 갖게 된다.

형제는 낭기열라 벚나무 골짜기의 꿈결같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었고, 이웃과는 노동이건 물자건 모든 것을 민주적으로 공평하게 나눔으로써 인간다운 기본 삶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탱일이라는 잔인한 독재자의 출몰은 낭기열라의 공평하고 자유로운 삶을 파괴하였고, 급기야 벚나무 골짜기와 들장미 골짜기는 분리되었다. 들장미 골짜기를 점령한 탱일 일당은 시민들로부터 강탈한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하였고, 거의 모든 재산을 착취하고 노예 신분으로 전락시켰으며, 잔인한 총칼은 주저 없이 사용되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리고 현실 세계의 독재권력이 그러하듯이 몰수한 재산은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하였다.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작품이 아닌 현실에서도 권력과 자본을 독식하려는 집권정당의 횡포에 부단히 항거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평생 자긍심을 가진 사회민주당원이었으나 1930년대 후반 불리하게 세법을 적용하고, 수입의 100%가 넘는 과도한 조세를 부과하여 자영업자들의 등골을 빼먹었던 사회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사회민주당은 그녀가 엄청난 인세를 받는 작가라는 둥, 계산법 하나 잘 모른다는 둥 비난하였으나 그녀는 사회 정의와 공평, 공정을 요구하는 '정치적 발언'을 하는데 주저할 줄 몰랐다.

그녀에게는 민주주의란, 공동체가 다 함께 공평하게 권력을 공유하고 행사하는 것이다.라는 사회민주당에 맞설 강력한 대의병분과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고독을 즐긴 작가였지만, 아무리 입을 틀어막아도 불의에 항거해야 한다는 생각, 아무리 위험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사명감, 책임감이 작품 속 요나단의 입을 빌려 수도 없이 말해진다.


카일은 묻는다. 편안하게 살면 안 되는가? 적을 왜 죽도록 놔두지 않고 살려주었는지?

요나단이 말한다. "어쨌든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법인데, 만일 그걸 하지 않으면 쓰레기처럼 하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작품의 도입에서부터 끝까지 형 요나단이 동생 카일에게 초지일관 각인시키는 이 문장은 독자 누구에게나 큰 울림이 된다. 편안한 삶보다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곧 인간이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이다. 존재의 이유는 의외로 어렵지가 않았다. 오히려 명확하고 단순해서 힘이 빠진달까?


그녀의 존재의 이유가 드러나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내 이름은 삐삐롱스타킹』이 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오랜 세월 고착돼버린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씩씩하고 용감한 남자아이가 아닌 씩씩하고 용감함도 뛰어넘는 천방지축 말괄량이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참하고 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 선구적인 동화 작가의 작품이 출간된 이후로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아이는 아이다우면 되는 대상으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유머와 위트라는 약간의 장착을 곁들이면 잘못된 고정관념도 바꿀 수 있다는 문학의 힘과 쾌거가 느껴진다.


꽤나 신기하면서 동시에 낯설었을 이 작품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고정관념을 깼음은 물론, 압도적인 찬사로 린드그렌이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녀가 종종 정치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글 근력도 주었다. 수상자가 되어 발언할 기회가 되었을 때 그녀는 수상소감을 빌미 삼아 그간 계획했던 정치적 발언들을 줄줄이 읊어댔다. 아동 체벌과 학대 금지를 주장하는 수상소감을 한 다음 해에 스웨덴은 전 세계 최초로 아동학대 금지와 부모 체벌 금지 법안을 공포했고, 동물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하라는 주장에 따라 린드그렌 법 역시 제정되었다. 린드그렌은 그녀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만하게 바꾸고자 노력한 작가였다.


스웨덴 장편소설인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는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과 철학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아동문고라기에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숙고가 느껴지는 이 대서사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한 작가가 걸어온 생의 흔적과 같아서일까? 위대함 이전에 따듯함이 느껴진다.

어떤 훌륭한 도덕 교과서도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 한 권의 책만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쉽고 명확하게 알려 주지는 못하였다. 성장하고 나이 들면서 후일 스스로에게 칭찬할 말만큼 후회될 일들도 많이 하느라 그동안 나는 사자왕 형제를 잊고 살았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잃고 살았는지 기억하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펼쳐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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