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한다.
다만 씨네필 수준으로 매니악하게 보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또 다만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을 때만 이벤트식으로 극장에 가는 편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영화관에서 팝콘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봐야 하는 영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로지 쿠키 때문에 엔딩 크레딧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엔딩 크레딧으로 영화의 시간을 되짚어 보는 사람이다.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기약 없는 재개봉을 기다리는 사람이면서 OTT의 홈 무비를 주저 없이 즐기는 사람이다. 어떤 날엔 단편 영화를 보고 감독을 검색하고 그가 장항준 감독이 말하는 “영화하는 학생들 중에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인지 확인하곤 한다. 그러다 어떤 날엔 자본이 꽉꽉 들어간 텐트폴 영화를 상관 않고 본다. 아는 사람이 몇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찾아서 보면서도 영화의 계보라는 영화들은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대학에서 처음 프랑스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그 이상한 영화가 끝나자마자 내용을 되짚어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영화를 여전히 반쯤 이해했건만,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영화는 여전히 그 영화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영화가 나오는 많은 수업을 들었다. 어떤 수업에선 영화로 경제를 읽었고 어떤 수업에선 유럽 역사를 읽었으며 어떤 수업에선 중국 문화를 읽었다. 어떤 수업은 영화산업을 알아보았고 어떤 수업은 독립영화로 세상을 보는 거였다.
그러는 동안 영화제에 자원봉사를 두 번이나 했지만 그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자원봉사자 오리엔테이션에서 보여주는 영화를 제외하곤 한 편도 보지 않았다. 하여간 프랑스 영화만큼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아무래도 그때부터 나는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대학은 진작 졸업해 버렸고 이제 내가 봐야 해서 보는 영화는 없다. 오로지 내 선택으로 영화를 본다. 기록한 영화가 100편이 되었다. 그중 적잖은 분량이 코로나19의 집콕 기간 동안 기록되었다. 보았지만 기록에서 누락된 것들까지 머릿속에서 꺼내어 세 편의 영화를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하려 한다. 아마 가벼운 글일 것이다. 어쩌면 이 프롤로그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