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렉스> <잘 봤다는 말 대신> <피스트>
짧은 러닝 타임으로 어떻게 관계의 끈끈함을 그려내고 있을까? 유대감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단편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똑같이 생긴 스타렉스와 두 명의 여자가 있다. 여자는 배우를 픽업해야 한다. 다른 여자는 픽업을 기다리고 있다. 둘은 서로의 역할을 착각한다. 이 스타렉스는 태워야 할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을 태우고, 그래서 타야 할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이 탔다.
처음 본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다.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내비치기 시작하는 두 사람은 배우라는 같은 꿈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각각 제작부 스태프와 성매매 업소에 일하고 있는 추현과 희라에게 꿈은 해갈되지 못한 목마름으로 남아있다. 둘은 도로 위에 세워진 스타렉스에서 연기를 시작한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을 너무 잘해서 진짜 괜찮아 보이는데 아는 사람이 보면 괜찮지 않은’ 연기. 대사는 “성희야, 난 생각보다 괜찮아.”
도로 위에서 발을 구르고 서로를 마주 보며 “성희야, 난 생각보다 괜찮아”를 끊임없이 외치는 추현과 희라가 있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을 너무 잘해서 진짜 괜찮아 보이는데 아는 사람이 보면 괜찮지 않은’ 추현과 희라의 “생각보다 괜찮아”라는 외침은 서로를 위로하고 또 우리를 위로한다.
“저는 그 잘 봤다는 말이 진짜 너무 애매해요. 그 애매한 게 나빠요.”
독립영화 감독인 새벽과 민정은 극장에서 마주친다. 둘의 관계는 ‘애매하다’. 알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 말하자면 안부를 묻기 위해 ‘영화 잘 봤다’는 말을 하게 되는 사이다. 민정의 잘 봤다는 말을 들은 새벽은 불편해진다. 영화는 잘되지 않았고, 자신도 그걸 알고 있으며, 무엇이 ‘잘’이라는 것인지 알 수도 없다. 상호 간 불분명한 이 애매함이 낳는 기분은 무얼까? 새벽은 마냥 화낼 수도 없다. 민정을 경계하던 새벽은 불안과 불평을 터놓고, 둘은 잘 봤다를 대체할 표현들을 찾아가며 돈독해진다.
<잘 봤다는 말 대신>은 '잘 봤다'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많은 입 발린 말들을 호명한다. 그렇게 ‘퉁치는’ 말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솔직함을 나눌 때,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우리가 나눌 때, 우리는 언제든지 아군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닐까? 서로의 사정을 더 잘 알수록 그래야만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퉁치고 있는 여타 많은 말에도 대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언어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표현들을 되짚어보게 하는 14분의 짧은 영화.
한 강아지가 있다. 쓰레기통 주위를 배회하며 먹이를 찾던 강아지를 한 남자가 거둔다. 강아지는 매일 포식하며 축제 같은 날들을 누린다. 남자가 주는 기름진 음식에 강아지는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데 웬걸, 남자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고 그녀의 선호 때문에 강아지는 싫어하는 채소를 먹어야 한다. 사료에 매일 올라오는 허브. 강아지는 난리를 피운다.
어느 날 주인은 다시 정크 푸드를 먹게 되고 강아지 역시 신이 난다. 그러나 이 맛있는 걸 먹는데도 자신의 기분과 달리 주인의 얼굴은 슬퍼 보인다. 스파게티 속 허브를 보는 주인의 눈빛. 강아지는 허브를 물고 여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여자가 돌아오고, 강아지는 그토록 싫어하는 허브를 먹는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여자는 이제 채소 요리 대신 고기 요리를 더 많이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누군가를 위해 맞춰갈 때 우리의 유대감은 깊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