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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헤현 Jul 23. 2024

여름과 가족, 치유와 상실

<남매의 여름밤>  <바닷마을 다이어리> <보희와 녹양>

여름이 한창이다. 땀, 햇볕, 뜨거운 바람과 습한 공기, 그럼에도 고유의 청량함과 싱그러움이 있는 계절. 여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특유의 정취가 있는 것 같고, 오늘 소개할 세 편의 영화는 그 정취를 따라 가족 안에서의 상실과 치유를 그려낸다.



남매의 여름밤


©️ <남매의 여름밤> 2020 윤단비


옥주와 동주 남매의 여름방학은 이사로 시작된다. 남매가 아빠와 도착한 할아버지의 2층 양옥집엔 세월이 흔적이 깃들어 있다. 몸이 좋지 않으신 할아버지는 어쩐지 어색하고 새롭고도 오래된 공간은 익숙하지 않다. 사춘기를 겪는 옥주에게 이 이사가 마냥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옥주도 동생 동주도 이 집에서의 일상에 적응해 간다.


영화는 명확한 설명이나 자극적인 사건 없이 한 가족의 여름을 비춘다. 동주는 누나에게 장난을 친다. 옥주는 동생의 장난을 무시하다가 반말에 화를 내고, 동주는 할아버지와 무료하고 안온한 하루를 보낸다. 거실 마룻바닥에 누워 여름의 햇볕을 느낀다. 아빠는 짝퉁 신발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옥주는 엄마를 그리워한다. 고모가 찾아오고, 다 같이 저녁을 먹는다. 웃고, 고민하고, 가벼운 짜증을 나누고, 불편한 문제들-할아버지의 병세와 재산 상속 등-을 얘기한다. 이렇듯, 영화가 그리는 한 가족의 일상은 여름을 닮았다. 무덥고 꿉꿉하고 높아지는 불쾌지수만큼 예민해지는 날들이 이어지다가도, 햇살의 반짝임에 충만함을 느끼는 날들이 있고, 습한 기운의 바람마저 문득 쾌청하게 느껴지는 하루가 이어지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집으로 돌아온 옥주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소파를 바라보다 목 놓아 울고 만다. 깊은 속내를 얘기해 본 적도 어마어마한 추억이 있지도 않건만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짧은 며칠들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과 내게 떨어질 돈을 교환해 생각하는 이기심이 우리 안에 있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우리 집을 미워하고, 떠나간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다 같이 둘러앉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울고 웃었던 여름날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가족을 위로하고 이제는 사라진 가족을 기억하게 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네 자매가 만난다. 함께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는 바람을 피워 자신들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배다른 동생 스즈와 조우한다.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는 여자는 스즈의 어머니가 아니다. 아버지가 또다시 재혼해 스즈에게 생긴 새어머니. 새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을 챙기기 바쁘고, 조문객의 인사를 스즈에게 미룬다. 아빠라는 의지할 구석이 사라진 스즈는 자기 집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돌아가는 기차에 오른 언니들은 그날 처음 본 스즈에게 묻는다. “같이 살래?” 스즈가 말한 적 없지만 언니들은 알았다.


세 자매가 살던 가마쿠라로, 네 자매가 되어 돌아온다. 넷은 자매가 되기를 선택한 적 없으나 같이 살기를 선택했다. 그리하여 네 자매는 가족이 된다. 잘 알지 못했던 서로가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떠나간 아버지이지만 각자가 가진 아버지와의 추억을 나눔으로써, 무엇이든 담담해 보이던 스즈가 비로소 마음을 보이며 울음을 터뜨릴 때 그들은 비로소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여름으로부터 시작한 세 자매의 일상은 네 자매의 여름으로 이어진다. “여기가 네 집이야. 언제까지나.” 영화는 자매들의 연대를 통해 가족으로부터의 상처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치유한다.



보희와 녹양


©️ <보희와 녹양> 2019 안주영


보희와 녹양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소꿉친구다. 녹양에게는 엄마가 부재하고 보희에게는 아빠가 부재하다. 보희는 어느 날 사고로 죽었다는 아빠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아빠를 찾기로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꿈인 녹양은 카메라를 들고 보희를 따라나선다.


“나는 엄마 얼굴은 알아. 엄마 기억은 하나도 없어. 넌 아빠를 찾으면 말 걸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 그게 부러워서 따라다녔어.” “넌 그래도 누가 널 버리진 않았잖아.” 상실과 결핍이 서로를 가로지르지만 녹양과 보희는 서로의 ‘결핍’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겪으며 성장해 간다. 버스를 타고 골목길을 오르기를 반복하며 아빠의 흔적을 찾는다. 둘의 여정이 담긴 녹양의 카메라에 여름의 녹음이 가득 찬다.


결국 아빠가 자신을 떠나게 된 이유를 알게 된 보희,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여름의 녹음만큼 가득 채워진다. 녹양이 있었기에, 가족도 지인도 아니고 그저 사촌 누나의 남자 친구일 뿐이지만 그들과 눈높이를 맞춰 준 성욱이 있었기에, 홀로 선 보희가 이룩한 세계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마음의 빈자리를 필름의 조각으로 채우고 싶었던 녹양이도 마찬가지다. 둘은 온전히 섰고, 그래서 함께 있다. 가족보다 더 가족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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