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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근나 Jun 25. 2024

이별을 그린 사랑들

<연애의 온도> <연애 다큐>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어떤 로맨스 영화가 동화같은 사랑을 그린다면, 어떤 로맨스 영화는 이별을 그리기도 한다. 이별의 모양을 사랑으로 그린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연애의 온도


© <연애의 온도> 2013 노덕


<연애의 온도>는 3년간 비밀로 사내 연애를 해오던 동희와 영이의 헤어짐으로 시작된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없다는 듯이, 이들의 헤어짐은 절절할 정도로 ‘구리다’. 서로의 SNS 염탐하기, 돈 갚으라고 독촉하기, 선물 부숴서 돌려주기. 이들은 사랑했던 만큼 서로의 미운 점을 잘 알았다.


미워서, 어쩌면 상대의 그 미운 점이 지독하게 신경 쓰이는 동희와 영이에게 남아있던 것은 애정이었을까? 둘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소중함을 되새기다가 재결합하게 된다.


“왜 싸웠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걔가 뭐라 그러고 또 내가 뭐라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헤어짐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헤어짐의 이유들. 재결합 이후 함께 간 놀이공원 데이트에는 둘 사이의 미묘한 긴장이 스민다. 서운함을 말할 수 없는 영이와 불편함이 티가 나는 동희.


이별은 그런 거였다. 서로가 서로를 어느 정도 알지만 또 얼만큼은 모르는, 그래서 갈등이 생기지만 헤쳐 나가기엔 조심스러운 관계. 잔잔하게 밀려오는 긴장을 해소하지 못하면 관계는 끝난다. 사건 같은 이별이 어딘가에는 있는 법이지만, 때론 이별만큼 자연스러운 일도 없는 것이다.



연애다큐


© <연애다큐> 2014 구교환 이옥섭


실수로 깨뜨린 도자기 값 때문에 내키지 않지만 헤어진 연인과 영화를 찍는 하나. 전 남자 친구와 ‘연애 다큐’를 찍으며 이전의 감정이 살아나는 듯하지만, 교환의 가족 앞에서 ‘인연’을 부르며 엄청난 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온다.


“너랑 다시 사귈 순 있지만 가족을 만나고 싶진 않아.” 결국 전처럼 돌아갈 순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는 교환에게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보내고 교환은 열심히 이어 붙인다. 그러나 깨진 도자기는 깨진 도자기일 뿐. 열심히 이어 붙인 깨진 도자기에는 못생긴 자국들이 남는다.


영화는 말한다. 이미 깨진 것과 가까스로 이어 붙인 것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은 금방 다시 깨져버린다는 것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2021 도이 노부히로

생기 있는 꽃다발이 시들어버릴 때까지,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인연이 되는 일은 놀랍도록 환희로운 일이지만 그 환희는 개인의 삶에 스밀수록 옅어진다.


키누와 무기는 서로를 위해, 평생 함께하기 위해, 같이 잘 살기 위해, 먹고사는 일에 뛰어든다. 모순되게도 서로를 위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소홀해지게 된다. “혼자 있는 외로움보다 둘일 때의 외로움이 훨씬 외롭다.”


미움의 뜨거움조차 식어갈 때, 끝이 다가온다. 둘은 활짝 핀 꽃다발 속 꽃 같았던 때를 함께 추억한다. 이젠 시들어버린 꽃들을 미련 없이 보내주듯, 둘은 서로에게 한때의 아름다운 기억이 되기로 한다. 참 사랑했었고 그러니 잘 지내. 사랑이란 이름으로 시작해서 추억으로 남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꽃다발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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