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는 매달 한 권씩 공통 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남기는 문화 활동이 있다. 2023년부터 시작해서 이제 3년 차로 이어오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나는 한 달에 한 권씩 읽는 사람까진 아니었으나, 이런 강제성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결국 습관이 되어 가끔 한 달에 두 권을 읽기도 한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받은 게 아니라면 되도록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으려 한다. 무엇보다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읽고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고, 그러니 행동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나의 에너지를 빼앗기고, 분산시키는 듯한 부정적인 느낌까지 들곤 한다.
왜 그럴까? 그런 류의 책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이끌어낸 나만의 철학이 아니라 남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저자에게는 잘 통하는 철학일지라도 나에겐 아니다.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전문성이 담긴 책이 아니라면, 남이 전문성을 잘게 잘게 씹어 먹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저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준이 아니라서 괜한 반항심에 그럴 수 있다.
2024년 공통 도서 중에서 다시 책장에서 꺼내어 몇 번이고 읽고 싶은 책들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해 놓았는데, 그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고전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고전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 읽더라도 다르게 해석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맛이 있다. 읽을 때마다 나를 착- 가라앉고 영적인 에너지를 모아 수렴하게 만든다.
2024년 최고의 책은 싯다르타이다. 데미안을 읽고 나서 헤르만 헤세의 다른 작품인 싯다르타를 접했다. 여운이 깊어 올해 공통도서로 추천했고 팀원 모두가 읽게 되었다.
귀족인 부모의 품을 떠나 고행을 떠난 싯다르타가 그 과정에 수많은 깨달음을 얻지만, 나이가 들어 결국 아들에게 자신이 부모에게 당했던 경험을 그대로 주는 장면이 나온다. 싯다르타는 이 경험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누구도 내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 내밀고 강제할 수 없다. 그건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는 부모의 삶이 있다. 자식은 자식의 삶이 있다. 부모는 보살펴주고 싶고 자식은 보살핌 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진정한 ‘인간’ 이 되기 위해선 그것을 떨쳐내 버리고 나의 기준대로 덕을 쌓고 살아야 한다. 나는 현재 부모가 아니지만 부모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파장은 2024년에 어떤 울림 보다도 크고 깊었다. 그래서 싯다르타를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