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나의 문어 선생님>에 대한 감상.
문어는 오랜 역사 속 진화과정에서 단단한 골격과 껍질 대신 빠르고 유연한 몸을 지닌 현재의 두족류로 진화했다고 한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몸을 지키기 위해 대신 문어는 카멜레온과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뛰어난 위장술을 자랑한다. 그리고 문어의 지능은 강아지나 고양이 수준으로 몸통의 뇌뿐만 아니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8개의 다리로도 생각을 한다.
문어는 1-2년 정도로 매우 짧게 사는데, 마지막 3-6개월은 알을 품다 죽는다.
알을 품는 암컷 문어는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으며 알을 돌보고 알이 부화하면 기력이 다해 그 자리에서 죽는다.
그러면 부화한 문어들 중에 극소수가 살아남아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에 따라
다시 위장을 하고, 상어를 피하고, 사냥을 하고, 물고기들과 장난을 치며 살아간다.
그 누구도 가르쳐준적이 없지만, 그게 문어의 생이다.
영상에서 문어가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장면,
놀라 도망가서는 숨어버리는 모습
물고기들을 조련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광활하고 아름다운 바다.. 육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오묘한 해초 숲.
먼훗날 언젠가는,
문어도 죽고싶지 않지 않을까.
자식을 낳고 후손을 남기는 대신에 좀 더 오래사는 싱글라이프를 택하고 싶지는 않을까
희생하는 삶 말고, 배고프고 힘든. 예정된 3개월 말고
조금 더 맛있는걸 먹으며, 물고기들과 조금 더 놀며 시간을 보내고싶지 않을까?
지금 인간이 그런 것처럼.
그 똑똑한 문어는
삶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예외없이 짝짓기를 하고 알을 품다 볼품없이 죽는다.
새끼를 부화시킨 문어가 힘없이 온갖 잔해가 되어 부유하는 모습이 소름이 끼친다.
상어에게 쫒기면서 온갖 기지를 발휘하고 인간도 생각지 못할 상상력과 순발력으로 삶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을 보이던 문어가 낳아 기를 기쁨도 누리지 못할 새끼를 왜 그렇게 까지 하며 낳는 걸까.
본능에 따라 생각없이 그렇게 하는거라면, 언젠가 인간처럼 깨우치게 될수있지않을까?
내가 왜 희생을 해야하지? 나는 내가 더 소중해 !
문어를 보며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생각해본다.
인간도 필멸하는 존재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자손을 낳고싶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기형적이다.
종족 번식이 종의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나는 종의 바깥에 서 있는 아웃라이어다.
나뿐인가, 과거에는 아이를 낳는것이 여성의 유일한 의무이기도 했는데 현대에는 많은것이 달라졌다.
아이를 낳기보단 즐기며 사는 것을, 자손을 남기는 것보단 내가 다 쓰고 죽는 것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혹시 이마저도 예정된 진화의 과정일까?
지구를 지배하는 70억 인구에 대한 인구 제어 시스템. 거대한 지구의 계획.
아무튼, 문어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짝짓기를 하고 알을 품는지, 그리고 누구도 가르쳐준적없는 양육방식을 어떻게 그렇게들 예외없이 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문어 한마리가 이토록 인간의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