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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임시보호를 하기 위한 각오.

나의 사랑하는, 하지만 고쳐야 하는 문제가 있는 임보견 조앤

by 인생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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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의 양면같은 임시보호


10kg 남짓의 믹스견 조앤은 올해 1월 15일에 우리 집에 왔습니다. 제3번째 임보견이죠. 적어도 제겐, 임보는 언제나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안락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유기견의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인 동시에, 입양까지는 할 수 없는 여러 이유들을 스스로에게 정당화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많은 임보자들이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리고 그중엔 한없이 선하고 존경할만한 이유들만 있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사실 스스로 입양까지 할 만큼의 책임감이나 희생정신은 없기 때문에,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하는 정도입니다. 또 반려견을 돌보면서 제가 얻게 되는 수많은 행복과 뿌듯함이 있으니, 사실상 등가교환이라고 볼 수 있죠.



제가 살린 3마리의 생명은, 가끔은 벅찰 정도로 뿌듯하고, 더 나아가 제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앞서 데리고 있다가 미국으로 보낸 2마리의 강아지가 미국땅의 광활한 대자연을 누리며 평생가족과 함께 하는 모습이 종종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면, 그걸 보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하게 될 만큼 신나는 일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임보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죠.



조앤과의 만남


다시 조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첫 사진처럼 천사 같은 조앤도,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이렇게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여느 유기견이 그렇듯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있었고, 피부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게다가 조앤은 어미견이었습니다. 4마리의 새끼들을 거닐고 돌아다니다가 구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미견은 원래 유기견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습니다. 나이가 많고, 예민하고, 각종 질병에 더 취약한 상태가 많기 때문에 안락사 1순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유기견인지 처음부터 들개였는지 알 수 없는 개들을 굳이 왜 인간 세상에 들여 철창 안에 가두고 시한부 삶을 선고하는지 이해가 안 갈 때도 있었는데, 그 모든 게 이해가 되는 사진이었습니다.


조앤은 그래도 운이 좋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첫 번째 임보자님을 만나 뽀송한 반려견으로 거듭나고, 모든 게 낯설었을 조앤에게 산책 매너나 기다려 훈련, 앉아 등 기본적인 것들을 모두 훌륭하게 훈련을 해놓아 아주 젠틀한 반려견 상태였습니다. 임보자님 개인 사정으로 임보를 종료하게 되었지만, 그 덕에 저는 조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정말 불순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미 누군가가 좋은 반려견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아이였고, 너무 예쁜 생김새로 금방 입양도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2달 정도의 임보기간을 생각하고, 조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20230116_091413.jpg 조앤의 첫날.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자기 침대를 알아보고 올라가 졸았다.


그냥 너무 귀여운 노랑 우비 조앤

조앤은 실제로, 여러 면에서 좋은 반려견이었습니다. 타고난 성격이 온순하고 친절한 천사 같은 아이라 산책도 100점, 집에서 말썽도 부리지 않고, 사람 음식에 욕심을 내지도 않고, 어른 아이 다른 강아지 할 것 없이 모두 둥글둥글 잘 지내는 성격천재견이었습니다. 100% 실외배변을 하는 습성 때문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에 최소 2번 산책을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게으른 저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약 2달간 이곳저곳 조앤과 함께 다니며 행복한 추억들이 쌓여갔습니다. 집에서는 장난감도 거의 가지고 놀 줄 모르고 오직 산책에만 행복한 표정을 짓는 조앤을 위해 최대한 많은 곳들 데리고 다녔고, 조앤의 기쁨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지만, 지금생각해 보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20230430_164553.jpg 양평에 캠핑 놀러 간 조앤
B612_20230115_131645_525.jpg 최애 사진. 남편과의 케미가 돋보인다.


임시보호를 쉽게 내어 주는 선행정도로 생각했다면 오산


그렇게 2달이 흘렀지만, 조앤의 입양소식은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코로나가 끝나면서 반려견 입양 자체가 현저히 줄었고, 조앤의 경우에는 10kg 정도의 중형견으로 국내에서는 너무 큰 그냥 '시골견'이고, 해외 입양을 가기엔 너무 작은 그야말로 애매한 크기였던 겁니다.


그런 와중에 조앤의 유일하면서도 치명적인 문제, 분리불안은 끊임없이 우리 부부를 괴롭혔습니다. 조앤은 집에 혼자 두기 어려운 아이입니다. 처음 조앤을 데려오고 1달 정도부터는 종종 집을 비우고 외출을 했었는데, 집에 돌아오면 꼭 뭔가 하나가 망가져 있는 일이 잦았습니다.

예쁘게 깎아놓은 발매트

길게 설명하진 않겠지만 저도 원래 예정되어 있던 해외 출국 일정이 있어 2달 반 정도 지난 시점에 임보를 종료하고 약 3주간 다음 임보집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입양을 아직 못한 아이의 임보를 임의 종료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는데, 달리 방도가 없어 좋은 임보자를 구해 넘겼었습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환경 탓인지 조앤의 불안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급기야는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입국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앤을 다시 집으로 데려왔었습니다. 다행히 저희 집으로 돌아와서는 빠르게 다시 안정을 찾았지만, 분리 불안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큰맘 먹고 남편 사줬던 페라가모 목도리 ㅠㅠ


이 상황에서 저는 조앤을 위해 그냥 혼자두지 않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이직 전 휴식을 갖고 있는 중이었고, 저 역시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를 다녀 집을 비울 일이 거의 없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외식도, 부부의 오붓한 데이트도 없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조앤을 혼자 두지 않는 것은, 사실 아주 수동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혼자 두지 않는 것은 그냥 옆에만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거였고, 조앤의 불안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케어해 주는 걸 계속 미룬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스스로 조앤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힘들어졌던 모양입니다. 나는 이 아이를 살리고 먹이고 행복하게 해 주고, 나름 나의 많은 걸 희생하며 요 몇 달간 모든 삶을 이아이에게 맞춰서 살고 있는데, 왜 얘는 나를 힘들게 하고 입양도 못 가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미치자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시보호, 그 무서운 책임


그렇게 어영부영 5개월이 흐르고 또다시 기관에서 입양 소식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지 얼마안 된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조앤을 차에 태우고 남편과 일을 보러 가고 있는데, 당장 다음 주부터 회사를 출근하는 남편이 집을 둘 다 비워야 하는 날에는 조앤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딱히 대책도 고민도 없던 저는 순간 움찔하며 '유치원 보내야지 뭐..'라고 했습니다. 조앤은 이미 몇 번 불가피한 상황에 유치원을 갔었고, 갔다 올 때마다 조금씩 더 안 좋아지는 게 관찰되었기 때문에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유치원마저 보낼 수 없다면, 정말 답이 없었습니다.


그 무책임한 대답을 시작으로 남편은 저를 혼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대비도 안 하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 남편의 말에 저는 발끈하며, 지금 나도 너무 스트레스받고 있고, 훈련을 안 한 것도 아니고 틈틈이 강형욱 유튜브 보며 훈련도 해보고 나름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라며 변명을 늘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옹졸하게도 부부 공동책임을 운운하며 그럼 자기는 뭘 했냐며 억울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이럴 거면 조앤을 다른 임보집으로 보내고 평생 다시는 임보를 하지 말라고 하고, 그렇게 하기 싫다면 제대로 대책을 세워서 실천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강아지를 이뻐할 줄이나 알았지, 진짜 꾸준한 노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분리분 안 강아지를 훈련하는 건 너무나도 오래 걸리는 일이고, 강아지도 저도 지치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대로라면 입양을 간다 한들 비행기를 어떻게 탈거며, 가서는 그 가족들에게 어떻게 이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조앤은 근거 없는 불안감에 언제까지 시달려야 하는 걸까요.


남편 말이 상처는 되었지만 틀린 말이 하나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저는, 너무 뒤늦지만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그리고 열심히 분리불안 훈련을 하고, 나아지기 전까지 불가피하게 집을 비울 때는 우선 조금 비싸더라도 방문 돌봄 서비스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제대로 된 훈련을 하기 위해 방문 훈련사 서비스도 신청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실 방문 훈련사 서비스는 너무 비싸기도 하고, 절대 그 값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같은 유튜브 시대에, 강형욱이나 설채현 같은 초전문가들이 하는 조언을 공짜로 들을 수 있고, 그걸 보고 몇 가지 해본 게 효과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너무 어려운 일',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신반의하며 훈련사 서비스를 받았고, 결과적으로는 제게 아주 큰 도움과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여긴 왜 자꾸 어떻게 기어올라가는 건지... 위험하게 ㅠㅠ





훈련사께서는 방문 후 조앤을 살펴보고, 저희를 인터뷰하고는 조앤이 분리불안보다는 고립장애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기도 진단하셨습니다. 특정인이 사라졌을 때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그냥 혼자 있는 것 자체에 더 불안함을 느끼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계속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려는 모습이 들개 출신 반려견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앤은 저나 남편 둘 중 누가 사라져도 불안해했고, 어떨 때는 둘 다 집에 있는데도 불안해했으며, 우리가 있는 방문을 긁는 게 아니라 현관문을 긁었습니다. 또 집에서도 자꾸 높은 곳에 가려고 기를 쓰고 애를 썼습니다.

거기 숨는다고 안 보이진 않아...

조앤의 노력, 나의 노력


현재 우리는 훈련사님의 설루션을 받아 크게 두 가지를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우선 불안한 생각이 들 땐 켄넬을 찾아가 안전가옥으로 느낄 수 있도록 훈련할 것.

그리고 산책 시간을 줄이고 불편자극을 줘서 밖이 안보다 좋은 곳이라는 인식을 바꿔줄 것.


그리고 조언에 따라 조앤을 관찰할 수 있도록 펫켐도 설치를 했습니다.


훈련은 확실히 고됩니다. 쉽게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산책을 나갈 때도 이제는 모든 걸 통제해 신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당분간 조앤의 즐거운 표정을 보기도 힘듭니다. 이제는 밤에 잠도 따로 자고, 재택근무를 할 때도 꼭 방문을 닫아놓고 합니다. 그러면 혼자 남은 조앤은 한없이 낑낑거리고 문을 긁고, 뭔가를 망가뜨리려는 걸 반복합니다. 그러면 저는 또 일을 하다가, 새벽에 잠을 자다가 나와 조앤을 엄하게 혼내고 켄넬로 넣어 칭찬을 해주며 간식을 주고 돌아옵니다. 또 켄넬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훈련도 계속 반복합니다. 아주아주 천천히, 조금씩 시간을 늘려 조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조정합니다. 제가 욕심을 부렸다가 조앤이 다시 불안해하기 시작하면 모든 건 0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이 고된 일을 하기가 귀찮고 싫어서 저는 지금까지 조앤을 방치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임보는 절대로 생명을 건져 올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말 책임감 있고 존경할만한 임보자들은 끊임없이 임보견을 훈련시킵니다. 곧,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평생 가족에게 영영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훈육에 충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까지 좋은 임보자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조앤은 거실의 켄넬에서 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넣어주면 바로 나오고를 반복하더니, 어제부터는 감동적 이게도 켄넬에 머무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는 느낌입니다. 똑똑한 믹스견 조앤은 한번 알려주면 확실히 학습이 빠릅니다. 조심성이 많고 착한 성격, 정말 천사가 맞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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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은 이제 조금씩 나아질 거고, 그러면 우리 부부는 조앤을 조금씩 혼자 두기도 할 겁니다. 그러면 조앤은 켄넬 안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며 우리를 기다리겠죠. 그리고 곧 있으면 조앤의 켄넬은 비행기에 실려 평생 가족을 찾아가게 될 겁니다. 영원한 행복을 누려 마땅한 조앤의 엔딩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도착한 캐나다 땅은 조앤이 좋아하는 푸르른 자연과, 사람이 많은 대가족, 그리고 넓은 마당에 수영장까지 있는 천국이겠죠.


저는 조앤을 그 길로 보내기 위한 중간다리 역할로서 좀 더 충실하려고 합니다.



사랑해, 천사 조앤


반려견과 관련된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주인이 죽으면, 천국의 문 앞에 그간 돌봤던 반려견들이 모두 마중을 나온다고요. 먼 훗날 제가 정말 죽게 되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조금 기대가 될 것 같습니다.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안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저는 벌써 나올 가능성이 있는 강아지가 5마리나 됩니다. (어릴 적 반려견 2마리 포함) 천국의 문 앞에서 다섯 댕댕이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벅찬 감동이 올라옵니다. 거기에 하염없이 앉아 미안했던 일 고마웠던 일들을 말하고 함께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거기서 이 임보견들의 평생가족들을 만나 담소를 나눌 수 있다면. 죽는 걸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사후가 그렇다면 두려운 일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천사 조앤. 조앤이 평생가족 찾아가는 그날까지 우리 열심히 화이팅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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