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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Feb 18. 2016

사랑을 주는 게 어색해요

정말?

연애상담

저는 사랑을 잘 주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은 나에게 정말 잘 하는데,
저는 왠지 그 사람에게 만큼은 더 부끄러워져서
점점 소홀해져요.



것은 흔한 연애 상담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20대가 겪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잘 주고 / 받지 못하겠는 것.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비단 연인 관계에만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랑을 잘 주고받지 못한다는 건, 이를테면 대인관계에도 적용될만한 꽤나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왜 사랑을 주는 것이 어색한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의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 왜 어색할까? 상대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서? 내 마음이 어떻게 전해질지 그 반응이 무서워서? 거절당할까 봐? 모두 다 옳다. 필자는 이런 반응들의 기저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필자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사랑을 잘 주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발생하는 감정. 그 감정을 잘 정제하여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A Good Reads, Eric Wallis (1968~), Oil on linen


"나는 너를 사랑한다" 혹은 "나는 너를 좋아한다" 같은 감정은 저절로 발생한다. 물론 상대가 어느 정도 그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었고, 본인이 그 환경 아래 잘 녹아들게 반응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저는 감성이라는 자연 발생적인 현상 때문이다. '이게 사랑인가?'하는 촉의 민감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게, 내가 여지를 줬기 때문인 거야?"하며 화들짝 놀라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감정이라는 건 머리로, 수치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조차 나의 역치를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느끼는 감정과 전달하는 감정은 다르다. 감정을 전하기만 반복하는 존재는 (자신이 방식대로) 사랑받지 못하면 언젠가 지치게 마련이다. 주는 사랑은 그 원천이 고갈되면 끝이다.

내게, "사랑은 충분히 많이 받았으니까 그 원천은 풍성한 것 아닌가요? 많이 사랑해주면 주는 만큼 사랑 받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해주기 바란다. 그리하면 나는 '받는 사랑'과 '느끼는 사랑'이 다르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A woman with hat, Eric Wallis (1968~), Oil on linen


받는 사랑과 느끼는 사랑


잠깐 차에 넣는 기름(Oil)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기름은 원유(Crude oil)를 정제한 결과다. 원유는 어떻게 가열하냐에 따라서 용도에 맞는 기름으로 변한다. (원유는) 도로에 깔리는 아스팔트가 될 수도 있고, 항공기에 들어가는 등유가 될 수도 있다. 사랑에 적용해 보자. 받은 사랑은 원유에 대응한다. 이것은 우리가 상대를 유혹해서 얻어낸 사랑일 수도, 어쩌다 발견한 유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원유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독점할 수 있다는 것 정도다. 사랑에도 정제가 필요한 이유다.

받은 사랑과 느끼는 사랑은 다르다. 받은 사랑은 당신이 느끼는 감정 상태일 뿐이며, 감성의 영역 그 밑바닥에 원유 상태로 있다. 느끼는 사랑은 원유를 가열하여 이성의 영역으로,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한 번 감정으로 순환시키는 행위다. 앞서 말했던 일부 20대 친구들은 사랑을 감상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때문에 정제할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어디서 감동을 받고, 어디서 사랑을 느끼는지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포인트를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다. 알 수도 없다. 그렇지만 언어로 표현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야기를 확장해 보자. 가끔 우리의 인간관계가 어렵게 느껴지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내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번 더 증류해서 곱씹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미디어는 우리 입에 항상 말초적이고 원색적인 감정을 떠먹이고 있고, 우리는 자극적인 것들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생각의 증류탑은 그 가동 시간이 줄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가상 세계의 감정이고 인간관계는 현실 세계의 일이다. 현실에서 괴롭고 싶지 않다면 생각의 증류가 필요하다.


'Macro 번역채널'님게서 번역해주신 버즈피드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 때#Buzzfeed>


물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즐겁게 살 수 있다. 미디어와 인터넷만으로도 충분히 놀 거리가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살을 맞대며 사는 것에는 평생 초짜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며 살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소통 없이 앞사람과 더불어 사는 건 불가능하다.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았으면 좋겠다. 서로 실수하고, 많은 사람을 용서하고, 또 어떤 날은 미워했으면 좋겠다. 무미건조한 세상이라면 필자는 좀 슬플 것 같다. 필자의 주변에 사랑을 잘 느끼고, 또 잘 정제하고. 그래서 서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The Book, Eric Wallis (1968~), Oil on linen, 4x4


받은 사랑을 찬찬히 생각해보자. 인과를 계산하는 대신, 내게 지어준 미소를, 건네받은 물건을, 적어준 문구를 찬찬히 음미해 보자. 그리고 그냥 한 번 사랑을 건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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