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사진은 남자 둘의 누드가 아니다, 허브리츠 생애와 누드 이야기
본 포스팅은 허브릿츠 2편 [마돈나를 춤추게 한 사진가]의 다음 포스팅입니다
3편: 허브릿츠의 생애와 누드 사진
2016.2.5 - 2016.5.2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F
주최: 디투씨
협력: 허브 릿츠 파운데이션Herb Ritts Foundation
협찬/후원: 코바나컨텐츠 / 네이버
Male bude with tumblewood, 1986 (왼쪽)
Neith with tumbleweed, paradise cove 1986 (오른쪽)
그리스 신화 다프네를 표현한 누드 작품이다. 큐피드의 애정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다프네는 에로스가 쏜 증오의 화살을 맞고 달아난다. 한참을 달아나던 중 지친 다프네는 아버지에게 월계수로 변하게 해달라고 청한다. 다프네는 그 자리에서 월계수 나무로 변하게 된다.
이 사진은 모하비 사막에서 촬영했다. 허브릿츠는 과거와 현재의 모호한 경계를 추구했고, 짧은 유행과 예술의 영원함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했다.
허브릿츠의 누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해석한 작품들이 많다. 그는 르네상스 회화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그는 80년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브루스 웨버Bruce Weber와 더불어 누드 사진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누드는 메트로 섹슈얼리티를 끌어내는 작품이 많다. 평론가들은 다각도에서 인체를 분석하고 작품 구성에 강약을 주어 추상적인 누드의 세계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한다.
흡사 남성 두 명이 서로를 끌어안은 사진처럼 보이지만 위 모델은 남자 모델인 토니이고, 아래의 인물은 여성인 미미이다. 남성의 체격을 가진 여성 보디빌더로 허브리츠는 그녀를 통해 성별의 모호함을 표현하길 원했다. 메트로 섹슈얼리티의 표현이다.
절묘하게 미미의 목젖을 가렸다. 여성의 허리 라인과 종아리 곡선은 상대의 허벅지에 절묘하게 맞아들어간다. 허브릿츠는 일부러 여성보다 작은 체구의 남성을 모델로 세웠다. 여성의 메트로섹슈얼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모델 카란 알렉산더Karen Alexander 가 숄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콘택트 시트에는 얼굴이 나오지만 교묘하게 크롭(자름) 함으로서 감상자가 얼굴보다는 육체의 선과 숄의 질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허브릿츠는 1980년과 90년대에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다. 6년 뒤, 그는 마돈나의 <트루 블루> 표지로 극적인 성공을 거둔다. 1989년에는 허브릿츠가 찍은 나오미 캠벨 누드 사진이 롤링스톤지에 실린다. 이 사진은 2007옥션에서 $190,000에 낙찰된다.(한화 약 2억 4천만원) 그는 1992년에는 고르바초프와 이세이 미야케, 마이클 잭슨을 찍는다.
80년대 허브릿츠는 상업사진과 누드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균일한 간격의 그림자지만 여성의 몸에 드리워진 장막은 마치 앵무조개의 황금비 무늬 같다.
Neith with Shadows (Front), Poundridge, 1985 (왼쪽)
Neith with Shadows (Rear), Poundridge, 1985 (오른쪽)
허브릿츠는 1994년에 피렐리 달력을 촬영한다. 이 달력은 전 세계 정치인이나 왕족에게 배포하는 달력 집으로 세계적인 배우와 사진작가가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6년에 보스턴 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에는 25만 명이 넘는 사람이 그의 사진을 찾는다. 같은 해 나오미 캠벨과 함께 앱설루트 보드카를 촬영한다. 이후 앱설루트 보드카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술이 된다.
1999년 허브릿츠는 두 번째 피렐리 캘린더를 제작한다. 같은 해 12월 11일 까르띠에 재단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크게 연다. 이 전시는 밀라노를 거쳐 로마까지 이어진다.
허브릿츠는 누드 사진에서 근육을 비틀거나 다른 어떤 대상과의 비교 또는 대조를 통해 피부의 질감을 극대화하는데 집중한다. 허브릿츠는 물, 흙, 그림자와 같은 자연물을 사랑했다. 그가 나고 자란 엘에이와 캘리포니아 자연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말리부, 포인트 듐, 팜엘 미라주, 산타모니카 피어와 같은 장소는 허브릿츠가 가장 사랑하는 촬영지였다.
1989년 허브릿츠는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다. 2002년 12월, 벤 에플릭과 <베니티 페어> 3월호 화보를 찍다가 강한 모래바람 때문에 모든 스태프가 병을 앓게 된다. 에이즈로 인해 면역력이 약했던 그는 폐렴 합병증으로 그 해 12월 26일 엘에이 병원에서 사망한다. 그의 나이 50세의 일이다.
1편에서 언급했듯 사진 한 장의 힘은 강력하다. 사진은 두 시간짜리 영화를 단 한 장으로 압축하는가 하면, 한 사람의 평생을 한 장면에 함축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사진 한 장은 한 편의 시(詩)다. 허브릿츠의 시는 짧지만 강렬하고, 또 부드러웠다. 에이즈로 생을 마감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이번 전시로 아름답게 회고될 수 있는 것은 카메라 뒤에 서서 피사체를 최고로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열정과 노력 때문일 것이다.
Fin.
1편: [마돈나를 춤추게 한 허브릿츠전]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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