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고 Feb 21. 2016

죽음이 행복에게

필립 시모어 호프만(1967-2014)을 기억하며

립 시모어 호프만(Philip Seymour Hoffman)은 2년 전 세상을 떠났다.(1967-2014) 친구들과 데이빗 보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그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필자가 그의 죽음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는 뉴욕 자택에서 숨졌다. 경찰에 의하면 필립은 욕조 안에서 바늘이 팔에 꽂힌 채로 발견됐다고 한다. 그의 자택에서는 마약 1만 달러어치와 가열된 흔적이 있는 수저가 나왔다. 들리는 바로는 그는 큰 풍채와 영화에서 맡는 역할들과는 다르게, 여리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마약은 22살 이후 끊었다고 했다. 그러나 호프만은 다시 한 번 마약에 손을 댔다. 재활치료를 마친지 23년 만이다.



그의 꽉 찬 필모그래피와 장황한 설명으로 죽음을 추도하는 대신에 이번 포스팅에선 그가 죽기 2년 전에 했었던 인터뷰를 번역했다.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그의 행복에 대한 고백이 독자분들께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사이먼 크리츨리(Simon Critchley, 진행자, 이하 사):
행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하 필):
저는 즐거움(Pleasure)은 행복(Hapiness)과 같은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행복을 느끼지만 즐거운 사람은 아니거든요. 저는 너무 진중해요. (저는) 즐거움을 주는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카페인 과다 섭취에, 슬픈 사람이죠.


음... 그래서 저랑 '즐거움'이란 단어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요. 최근에 저는 이런 제 모습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생각 끝에 얻어낸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요.

최근에 저는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생각 끝에 얻어낸 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저는 종종 자신을 돌아봐요. 그냥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행복한가?' 또는 '내가 (행복을) 눈치채지 못하는 건 아닐까?' 같은 것들을요. 매우 간단한 질문이죠. 그런데 이런 질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던지면 대부분 "저는 잘 모르겠네요" 같은 대답이 돌아와요. 대부분 모르겠다며 대화는 끝이 나죠. 당신에게 물어도 그럴 거예요. 물론 자기 자신에게 물어도 그 끝은 "잘 모르겠다"예요.


(저를 한번 돌아보자면) 저는 자식이 셋 있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제가 자식들이랑 같이 있을 때, 특히 아이들이 서로 잘 지낼 때는 행복해요. 사이가 좋은 셋을 보면 행복감이 들어요. 이럴 때 저는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하겠죠. 왜인진 모르겠지만요.

표면적인 이유는 알죠. (그들은) 제 자식들이니까요. 그렇지만 이건  일부일뿐이고요. 지금은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할 시간이에요. 왜 그들을 보는 게 행복한지 대답할 수 없어요. 모르니까요.


왜 자식들을 보는 게 행복한지 대답할 수 없어요. 모르니까요.


한참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 이상한 감정이 마음속을 기어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 감정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들어오면 그 이후론 사랑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어요. 그 이상한 감정은 제가 어릴 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요. 그리고 지금 아이들의 모습과 제 어릴 적 모습을 비교하게 해요.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지만 저는 누리지 못했던. 그 시기를요. 저는 갑자기 슬퍼져요.

그런 기분이 들면, 기존에 있던 행복감과는 다른 생각이 들어요.


"이게 당신의 결점이에요"

"당신의 부적합한 모습이에요"

"당신의 무능함이에요"

"이건, 당신의 무력함이고" 등등.


절망적인 생각이 연쇄적으로 반복돼요. (부정적인) 감정 하나가 다른 하나의 감정을 계속해서 깨워요. 행복은 이러한 생각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퇴장합니다. 저를 낙담시키는 생각이에요. 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실망하고, 힘이 빠지죠.

많은 사람들이 말해요. "인생은 짧다"고요. 뭐 그런 말 있잖아요. "인생은 짧고, 시간은 없고" 같은 것들. 뭐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아요.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점점 빨리 흘러요. 저는 과거가 길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과거는 사라지지 않아요. 왜냐면 우리는 '기억'을 떨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뇌 속에서 과거가 차지하는 공간은 점점 커지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이, 미래가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이유는 과거의 기억과 자꾸만 비교하기 때문이고, 머릿속에 현재와 미래가 차지할 공간이 점점 작아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점점 더 자라는 과거가 현재의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과거가 현재의 행복을 건드리는 건 찰나의 순간이죠.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건 어려운 거예요. 자칫하면 찰나의 순간에 행복을 날려버릴 수 있어요.




우리가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는 과거의 기억과 자꾸만 비교하기 때문이고, 머릿속에 현재와 미래가 차지할 공간이 점점 작아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행복감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아요.


사:
만약 우리가 행복을 추구한다면 말이죠. 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당신과 같이 슬픔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는 걸까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필: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고전 명작은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해요. 정직해요. 그래서 이런 책을 읽는 동안 "오 신이시여, 저는 저 상황에선 절대 살 수 없을 거예요"같은 상상을 할 수 있어요. 저는 그게 명작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비극이 책 속에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요.


독자들은 비극을 보면서 상대적 안도감을 느껴요. 누군가가 겪은 비극을 (책을 읽으며) 느끼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직접 겪지 않아도 되는 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당신은 감사하게 돼요. 역겹고 잔인한 현실은 저기 종이 안에 있어요. 그게 '기억'으로 남는 거죠.

이런 명작들의 가치가 오늘날 제가 배우가 된 이유기도 해요. 만약 제가 배우가 아니었다면 여러분은 저를 통해서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었을 거예요. 이것은 저를 통해서 여러분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같이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런데 당신,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마음이 궁금해지잖아요. 저도 그래요, 그리고 전 이 방에 있는 모두가 (이것을) 궁금해할 거라고 확신해요.

그런데 당신,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마음이 궁금하잖아요. 저도 그래요. 저는 연기로 주인공의 마음을 그려요


저는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요. 배우가 된다는 것은 실제로 극 중 역할이 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배우를 한다는 건 그들을 '아는' 거예요. 그들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거죠.


오늘 뭔가 명상시간 같네요. 그쵸? (웃음)


말 나온 김에, 당신이 매일 명상을 한다고 상상해보죠. 만약 (당신이) 정말로 명상에 집중한다면 명상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될 거예요. 명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당신은 이런 고백을 하게 될 거예요.


내가 여기 있어요. 숨, 목소리, 삶.
이게 현실이군요. 무서워요


이런 감정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느끼는 거예요. 반대로 말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과정인 거죠.


사:
그래서 행복이란 뭐죠?So, Happy?


(일동 웃음)

필:
오, 이런. 제가 저기 관객석에 앉아서, 저기 앉은 필립(화자)을 보고 있다고 해 보죠. 그러면 관객인 저는 "아아, 저는 이 방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에요. 제가 만약 게스트로 무대 위로 올라 가면 아무 말도 못 하겠죠. 그러니까 저기 있는 사람은 정말 대단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근데요 모든 사람은 한 번쯤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성찰한 경험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자리에 누가 올라와도 저처럼 말할 수 있어요. 제가 오늘 행복에 대해서 한 얘기를 굳이 들을 필요 없다는 뜻 이예요.


(인터뷰 끝)


유투브 'Blank on Blank'의 Philip Seymour Hoffman on Happiness, PBS 스튜디오, PBS 스튜디오


필립 시모어 호프만(1967-201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Thumbnail Info: <롤링스톤> 표지, 2014년 2월 27일

매거진의 이전글 한 서울대생의 유서와 자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