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득 마흔 16화

브라보, 독고다이 마이웨이 나의 인생

개썅마이웨이

by Snoopy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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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유튜브에 빠졌다. 남의 동영상을 보느라 바쁘기도 하지만 내 동영상을 직접 만들어 올리느라 더 바쁘다. 사실 이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은 몇 년 됐다. 아니, 사실 되게 오래됐다. 여행 다니면서 이따금씩 영상을 찍기도 했던 것. 하지만 나는 영상보다는 사진과 글 쪽에 무게를 두고 살아왔던 사람이었기에 여행에서의 동영상은 몇 년 사이 흐지부지됐다. 그러다가 차에 대해서 깊게 심취하게 되면서 이 주제로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장애물은 많았다. 나는 예쁘지 않았고, 몸매는 눈사람이었고, 적절한 장비도 없었고, 그렇다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뭐 잘하는 게 있어도 멍석 깔아주면 도망부터 가고 보는 게 나라는 인간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몇 달 동안 연습한 동극부의 연극이 M본부의 프로그램에 방영되게 되었을 때도 자리 하나 맡아놓고선 촬영 이틀 전에 못하겠다고 발을 뺐고, 고등학교 때는 열심히 좋아하는 언타이틀의 히트곡(!) <책임져>를 일본어로 번역한 뒤에 라디오에 출연하겠다고 몇 차례 도전했다가 떨어져 실망한 뒤, 막상 작가 언니로부터 출연해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는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는 모호한 이유를 대며 거절(그것도 세 번이나!!!)했다. 우연찮은 기회에 주목 받아 성공한 사람들의 수많은 스토리가 널려 있지만 나는 그런 비스므레한 기회들이 포착될 때마다 도망치기에 바빴던 것.
생각해 보면 참 그런 일이 많기는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사랑하는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만한 ‘오빠들’과의 시간도 늘 그저 그들이 어린 내가 귀여워서 만나 밥 사주고 영화 보여주고 재미있는 곳에 데려가주고 했던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숱하게 세계를 떠돌면서 만났던 남자들! 조금만 더 그들이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아마 벌써 숱한 점쟁이들 말대로 애 둘 낳아 알콩달콩 예쁜 가족을 이루어 잘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지금도 그런 쪽에는 참 소질도 재주도 없어서 2년 전 마지막 전남친을 끝으로 솔로로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반대로 남들이 아무리 뜯어 말려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무슨 대가를 치르고라도 해내기 위해 애썼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글쓰기다.
(갑작스레 아련해지는 이 마음) 사실 내가 딱히 글쓰기에 발군의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독후감쓰기 상을 딱 한 번 받은 적이 있고, 어린이 신문 백일장에서 동상(전국의 다른 수천 명의 어린이들과 함께)을 타본 것이 수상 경력의 전부다. 호르몬이 퐁퐁 샘솟는 중고딩 시절에 시 한 소절, 낭만적인 편지 한 장 안 써본 이 있을까? (물론 요새 소년, 소녀들은 나랑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겠지만 아무튼 나 때는 그랬다.) 문제는 나는 그것을 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나는 글을 써서 먹고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찰떡같이 믿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어떻게든 글을 쓸 기회가 있으면 도전했고 운 좋게 잡지에 원고를 기고하게 되면서 역시 이것이 나의 길이구나, 더욱 확신하게 됐던 것. 여기에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성정까지 더해져 여행 다니며 글 써서 먹고 사는 삶을 열망하게 됐다.
문제는 곧 찾아왔다. 업계에서 이름 대면 알 만한 선배‘들’이 나에게 말했다.

“너에게는 재능이 없어. 그러니까 웬만하면 다른 사람까지 고생시키지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렴.”

참 이상도 하지. 대개 그런 말을 들으면 심각해지기 마련인데 나는 그야말로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매일 열심히 글을 썼다. 그렇게 계속한 결과 첫번째 책과 두번째 책도 낼 수 있었다. 마침내 다시 몇 년 뒤에는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너한테 재능이 없는 건 아니야. 다만 너 만큼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을 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오히려 기뻤다. 재능이 ‘없다’에서 ‘보통이다’ 정도로 올라오기까지 약 15년의 시간이 걸렸으니 앞으로 한 15년 더 꾸준하게 글을 쓰면 이제 ‘많다’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 번째 책을 냈고, 네 번째 책을 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시 유튜브로 돌아와보자.
나는 더 이상 나에게 핑계대지 않기로 했다. 그냥 무조건 시작하기로. 그렇다면 왜?
사실 최초의 이유는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였다. 내가 지금 여기에 구구절절 읊어대지 않아도 현재 나의 상황은 굉장히 비참하다. 책은 팔리지 않고 소설가가 되고 싶어 십 년이 넘도록 노력했지만 등단은 아직이고 그렇다고 번듯한 직장이 있나(떼인 임금은 아직도 4개월째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구겨져서 살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나도 인간이고 심장이 뛰는 한은 살아 있어야 할 의무가 있다. 기왕 살아 있다면 기쁘게 살아 있고 싶었고, 나에게 기쁘다는 건 무언가 창작한다는 것과 동일한 일이므로...... 여태 글은 아무리 써도 크게 인정 받지 못했으므로 한번쯤 외도를 해보자 싶어서 시작한 게 유튜브다.
아마 여전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가 이제 뻘짓은 관두고 돈이 되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돈 되는 일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이다. 나에게 사업을 시작할 만한 자금이 있기를 한가(심지어 대출이라도 받을라고 해도 무직 예술가가 빌릴 수 있는 돈은 굉장히 미미하며 그 미미한 돈에 엄청난 이자가 붙는다), 취업하자니 나이는 많은데 발군의 경력이 없다. 그저 글나부랭이를 조금 쓸 줄 알고 차에 대해서 꽤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었고 여행을 꽤 많이 한 덕분에 다양한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가 있을 뿐. 이런 것에 가치를 두고 기꺼이 월급을 주려고 하는 회사는 딱히 없었다. 있다고 한들 이력서를 내봤자 주로 나이에서 잘렸다(고 생각된다. 매니져들은 자신보다 고령의 부하직원을 두고 싶지 않아할 테니까). 만약 내가 그 길을 걸을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선배들의 충고 혹은 제안을 뼈에 새기고 글쓰기는 그만둔 채 직장을 찾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 아니었기에. 따라서 결국 도돌이표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생존할 수밖에 없는 거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창작밖에 없는 셈.
어쨌든 요즘 유튜브를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잠을 자는 것이 나으니까. 동영상 촬영이라든지 편집이라든지 모두 나에게 생소한 일이었기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대신 글을 쓰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조금 소홀해지긴 했지만 이건 새로운 창작활동을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하는 대가라 여기고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몇 가지 꽤 놀라운 일도 생겼는데 그건 다음 기회를 빌어 글을 쓰도록 하겠다.
결론은 요즘은 유튜브하는 덕분에 신이 난다는 것이다. 구독자 0명에서 출발해서 55명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토록 닿고 싶어하는 1000명이 되기까지는 사실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겠다. 10년 된 블로그 이웃이 350명이 안 되고, 5년 정도 한 인스타 역시 팔로워가 450명이 안 되니 딱히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이 나고 기쁘다. 내가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것이. 또한 나로서는 신문물인 영상을 다룬다는 것이 나의 마인드 세팅까지 바꿔주고 있다.

“좋은 일 있어? 얼굴 좋아 보인다!”

내가 요즘 제일 많이 듣는 인사다. 이게 내 팔자인가 싶다. 사람들이 다 그만두라고 재능이 없다고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가장 좋았고, 갑자기 잠시 그걸 멈추고 세상이 요구하는 삶에 맞추기 위해 눈치보며 애쓸 때 가장 불행했다. 나는 더 이상 쭈그러들지 않으려고 한다. 나란 사람은 무언가를 창작하는 때 가장 나답다. 걱정하지 마시라. 그렇다고 식음을 전폐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강의 제안이 들어오면 감사히 받아들여 열심히 준비해서 열성을 다해 강의를 하고, 편집이나 교정 일도 열린 마음으로 하고 있으(너무 이따금 들어올 뿐)며, 에어비앤비 트립도 좀 더 잘 팔릴 만한 아이템을 구상해뒀고...... 이 모든 일이 즐거워진 것도 다 내가 뭔가를 창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그림으로 버텼는데 올해는 유튜브네. 아마 이게 몇 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어서 더 그럴 거라는 생각.
난 나라는 사람이 그저 미풍에도 과하게 흔들리고 각종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약한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뒤돌아보니 지독하고 고집스럽게 나만의 길을 걸어왔구나 싶다. 인생이 100세라면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쉰 중반쯤엔 글쓰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가 있을 것이므로 계속 쓰는 것만이 나를 구원할 것이다. 유튜브? 채널이 커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떤가, 10년쯤 지난 어느 날 옛날옛적 만든 에피소드를 틀어놓고선,

‘어머, 저때만 해도 나 정말 젊고 예뻤네!’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기쁨은 오직 내가 꾸준히 여태 그래왔듯이 내 길을 걸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리라.
그러니 나의 길을 가자. 바람이 불 땐 흔들려주고 비가 내리면 피해주고 그러면서 건들건들 걸어가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렇게 독고다이 마이웨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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