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빠질 뻔했던 사연
불과 얼마 전까지 인생이 술술 풀린다고 찰떡같이 믿고 있었던 나는 삶이 나에게 썩소를 띠고 날리는 무쇠팔 싸대기를 맞고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울먹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했고 가슴이 꼭 막혀 숨도 쉬어지는 것 같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건 내가 진짜 아파서 그랬던 거고 병원 약 먹고 정신을 좀 차리고 보니 진짜 뭘 어떻게 해야 각종 생활고지서를 내고, 품위를 유지하며 숨 쉬고 살아 있는 데 필요한 비용을 낼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전에 기사 쓰는 일을 하며 알게 된 분이 점심이나 사줄 테니 나오라고 해서 쭐레쭐레 나가서 요즘의 이야기를 하소연했더니 그저 빙그레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천천히 입을 떼셨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할게요. 스누피님(자주 이렇게 불리기도 함)의 경력이나 나이로 봤을 때 이제 이력서 쓰느라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쉽지 않을 거예요. 돈 버는 거야 똑같이 힘들지만 가능성이 낮은 일로 힘을 빼느니 뭐라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은 일에 시간을 할애해보는 건 어때요?”
그러면서 그 분은 내가 그간 여행자로 살아온 삶의 이력에 주목했다. 나의 경험이 여행 업계 쪽에서는 그마나 통할 수 있으니 그쪽으로 눈을 돌려보라고.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점이나 잘 가는 카페 같은 곳을 소개해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니 지원해보라는 구체적인 조언까지!
실제로 나는 한국으로 방문한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안내하는 일을 꽤 자주 해왔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포인트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며칠을 고민하고 서울 곳곳을 쏘다니고 취재를 다닌 끝에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서 제안했고, 몇 번의 수정을 거친 끝에 이제 최종 심사 단계에 이르렀다.
문제는 나에게 아이디어가 너무나도 넘치도록 많다는 데 있었다. 게다가 서울에는 내가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말이지. 심지어 서울 사람들조차 데려가면 신기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그런 곳들이 말이다. 만약 정말 이게 업이 된다면 매일 같은 곳만 가는 것보다 다른 곳도 적절히 섞어야 나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신이 나서 다른 투어 아이디어들도 제안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내가 평소에 무지하게 좋아하는 서오릉에 가는 투어였다. 물론 그냥 서오릉만 가는 것은 아니고 여기에는 영업비밀이라 밝힐 수 없는 재미있는 역사적 장소 두 군데가 포함되어 있는 투어였다. 투어를 제대로 기획하기 위해서 소요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날이 뜨거워지며 발길을 끊었던 서오릉을 방문했다.
그날 역시 37도에 이르는 폭염의 날이었고 나는 이미 한 시간 넘도록 걸어다닌 상태였다. 이미 수없이 다니면서 여기는 한 시간 걸리는 걸 아니 그냥 걷지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여지까지 왔는데 하면서 입장권을 샀다. 옆에 있는 박물관에서 1리터 물통도 가득 채웠다. 모기에게 헌혈할 수 없다며 벌레퇴치스프레이도 골고루 뿌렸다. 그리고 표를 내고 들어가 스무 걸음쯤 걸었을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초파리들이 한 마리씩 눈앞에서 얼쩡거리며 나를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그냥 손을 휘저으며 쫓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릉들이 있는 곳으로 깊숙이 걸으면 걸을수록 개채수가 늘었다. 화가 나서 박수 치며 십수 마리를 죽이는 것도 그때뿐 죽은 동료의 복수를 결의라도 한 건지 몇 배로 불어난 개체수가 돌아왔다.
콧구멍으로 아슬하게 지나가고 눈으로도 세 마리 정도 들어가서 혼자서 손 휘저으며 소리 지르며 다른 한 손으로는 벌레를 빼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물이라도 마시려고 하면 혹시라도 내 입 속으로 들어올까 두려움에 떨었고 폭염 속에서 내 심장은 날뛰었고 아무리 숨이 가빠도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예전에 호주에서 그렇게 했다가 파리를 삼킨 경험이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얼음생수통이 녹을 때 방출하는 물을 흡수라고 가져온 손수건을 풀었다. 그리고 그걸 무한대 표시 모양으로 마구 흔들었다. 마치 이소룡이라도 빙의한듯 쌍절곤 휘두르듯 돌리기도 했다. 초파리들은 계속 늘어났고 내 귓가에는 붕붕거리는 파리떼의 날갯짓 소리가 울려댔다. 팔이 아파 혹은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손짓을 멈추기라도 하면 즉시 지름 2밀리미터 정도의 시커먼 벌레들이 내 몸으로, 카메라로 들러붙으려 했다.
귓속으로 들어간 초파리가 알을 까서 부화하는 경우도 있다는,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 몸서리를 치며 다시 손수건을 무한대 모양으로 휘두르며 전진했다.
‘이 파리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여기로 누군가를 데리고 올 수는 없다.’
는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그 누군가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진 속의 그곳은 너무나도 평화롭게 보였다. 파리들이 나를 에워싼 모습을 셀카로 남겨볼까 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고 크기가 작아 렌즈 스피드가 그들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영상으로 남겨두긴 했다.)
그러니까 이 긴 산책은 내가 누군가에게 사진으로만 보여준다면 무슨 일을 겪었을지 전혀 알 수 없을 아주 평화롭고 고요한 왕릉 사이로의 산책인 것이다.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을 하고 만원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에어콘 바람을 쐬니 그제야 아까 내 모습을 누가 봤으면 배꼽을 잡고 웃었겠다는 생각이 스윽 지나갔다. 이를 악 물고 오만상을 찌푸린 채 마음속으로만 괴성을 지르며 팔을 무작위로 휘두르며 걸음을 옮기다가 갑자기 그럴싸한 풍경이 나오면 멈춰서 자못 심각하게 사진을 찍고 다시 미친 사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는 모습이라니.
다음 날 눈을 떴는데 양 어깨가 빠질 것처럼 아팠다. 전날의 추억이 남긴 선물이군, 생각하며 하루를 살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에 버스 속에서 어제의 모습을 그려보자 하고 그리다가 내리는 정거장까지 놓칠 뻔하게 한 게 저 그림이다.
계절만 바뀌면 그럴싸한 코스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며 그토록 열심히 기록하고 짜서 제안했지만 이 코스를 운영하려면 관광통역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있느냐는 메시지를 받았다. 전에 가이드를 해보고 싶어서 알아봤는데 쉽지 않아서 포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가이드와 관광통역사는 또 조금 다른 거라서 토익 등 공증된 시험 점수가 있으면 쉽게 시험을 치를 수는 있는 것 같았다. 아쉽지만 이 코스는 잘 아껴뒀다가 자격증을 획득하면 실행하는걸로. 일단은 몇 개의 다른 아이디어도 있으니 그걸로 승부해보려 한다.
이번에 초파리떼들로 톡톡이 산책의 뒷면을 체험했듯 내가 현재 어떻게든 살기 위해 도전 중인 이 일 역시 반드시 뒷면이 존재할 것이다. 적어도 그 뒷면을 인지하고 마음을 단디 먹으면 좀 낫지 않겠는가?
서오릉에서 나와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언제 그랬냐는 듯 파리들이 싹 사라졌다. 그러니까 그들은 어느 지점에서는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 계절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듯이. 어쩌면 지금의 내 삶도 파리떼를 쫓기 위해 양 팔을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파리들은 내 목구멍으로 직행하거나 귓속에 알을 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구간을 벗어나면 파리들도 다 사라지겠지. 그리고 지금처럼 웃으며 회상하는 날도 반드시 오리라, 고 믿기로 했다.
인생이라는 건 여름이 끝나면 반드시 가을이 오는 자연과는 달라서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분명하게 알지만, 그런 작은 희망이 고통스러운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기에.
덧_ 벌레퇴치스프레이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