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왔다. 그날이. 매년 잊지도 않고 돌아온다. 거 참 각설이도 아니고.
생일.
내가 세상으로 태어난 날이라는 의미가 있는 날. 어렸을 때는 엄마가 그야말로 뻑적지근하게 큰 상을 펼쳐 아이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고 나는 상석에 앉아 축하를 받으며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네. 내가 한 것이라곤 그냥 매일을 신나게 살아온 게 다였는데, 나를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키우고 몸을 찢는 고통을 감당하고 키워낸 건 사실 엄마였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가지고 오는 선물을 열어보는 기쁨이 있었던 날이었다. 서양의 관습대로 애들이 있을 때 선물을 뜯었는지 아니면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은밀하게 나 홀로 기쁨을 맛보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의 성향을 생각하면 후자였을 것 같다.
십대가 되고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과 어울리게 되고 다른 지역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부터는 날을 잡아서 만나는 날짜를 달리해가면서까지 생일을 보냈다. 생일이 방학에 있는 덕분에 생일이 있는 달은 그날을 기점으로 매일이 잔치였다. 맙소사. 그랬네. 정말 매일이 잔치였다. 생일축하 노래를 들으며 케이크를 몇 번이고 먹었(촛불도 참 많이 껐다)고, 선물을 받았고, 벅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잠들었다. 그땐 그냥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툭하면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고 고집불통이었던 막가파 십대가 뭐가 예쁘다고 다들 그렇게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써주었던 건지.
이십대 삼십대를 지나면서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게 됐다. 문득 생일이 부담스러워져 될 수 있으면 외국에서 생일을 보내고자 했다. 다섯 해 정도는 성공했는데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인간관계가 협소해지고 점점 폐쇄적인 삶으로 변하면서 생일도 그냥 그저 그런 날이려니 하고 지나가게 됐다. 지구 온난화로 매해 계속 뜨거워지는 날씨 때문에 그간 어마마마께서 무심코 끓여 올리던 미역국도 이제 오이냉국으로 대체되었다. 애인이라도 있었으면 둘이서 기분이라도 냈겠지만 뭐 그걸 위해서 갑자기 하루 동안 애인을 어디서 꾸어 올 수도 없는 일이다. 그나마 가족들이 이런 내가 안쓰러운지 꼭 케이크를 챙겨준다. 그런데 올해엔 케이크만 사오고 초가 없는 거다.
“초는?”
“네 개를 꽂아야 하나 어쩌나 싶어서 그냥 안 챙겨왔어.”
“뭐야, 소원은 빌어야 하는데. 그리고 네 개가 뭐냐, 이제부터는 초 한 개만 꽂는 거야!”
그러니까 가족들도 내가 마흔이라는 사실에 움찔했던 것 같다. 작년엔 서른아홉 개를 꽉 채워 꽂으며 낄낄거렸던 것 같은데 초가 네 개라는 사실에 자못 숙연해진 게 아닐까. 나는 괜시리 겉으로는 우당탕 거렸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심경으로 티캔들 하나를 찾아 불을 붙인 뒤 케이크 위에 살포시 올려두었다.
(그림에서는 현실을 반영하여 네 개로 그렸다.)
엄마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당신도 모르게 내 이름 대신 조카의 이름을 입에 올렸고 애아빠가 된 동생이 그걸 정정해줬고 올케는 내가 촛불에 소원을 비는 사이 조카의 목소리를 빌어 내게 인생의 동반자가 생기게 해달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빌었다. 내 소원은…… 으음…….. 비밀이고, 후 불어 촛불을 끄면서는 이제 이렇게 내 생일에 내가 초를 끄게 되는 것도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조카는 더 자랄 것이고 얘기를 듣자 하니 모든 생일자의 초를 끄는 건 그 집의 어린아이들의 몫이 되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수십 번 다시 불을 붙여줘야 한다고 하니 말이다.
문득 외국에 사는 생일이 비슷한 친구가 타임라인에 ‘삼십대의 마지막’ 생일이라며 올린 게 떠올라 부러운 마음이 아주 잠깐 들었다가 도리질을 쳤다. 그 녀석이야 그 문화 속에서 살고 있으니 서른아홉을 맞았지만 주구장창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나는 올해 엄연히 마흔의 생일을 맞은 거다. 내 서른아홉의 생일은 작년이었고, 이 땅에 존재하는 아홉수의 법칙 때문인지 몰라도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 시간을 견디고 지나온 거다. 그러니까 마흔의 생일을 맞이한 지금이 나는 더 마음에 든다.
이제부터는 나라도 내 생일을 격하게 축하해주기로 했다. 결국 이 생 동안 좋든 싫든 끝까지 끌고 가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바로 내 자신이니까. 내가 나에게 잘해야지 누가 날 챙기겠는가. 이런 나의 강력한 의지가 전달됐는지 하늘에서 선물도 내려줬다.
(그게 뭔지는 차후에 공개할 날이 있을 것이다.)
벨기에 다크초콜릿을 썼다는 케이크는 적당히 달콤하고 부드러웠고, 이제 정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의 막이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찌질하던 내가 세련되어진다거나 몰랐던 재능이 발굴되어 두각을 드러낸다거나 돈벼락이라도 떨어질 거라고 믿는 건 아니다. 그냥 이렇게 조용히 계속 나인 채로 나답게 인생을 조화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 뿐. 더 화해하고 더 넓은 시야로 더 너그럽게 살고 싶다.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생일을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노 작가님. 내년까지 또 잘 살아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