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득 마흔 13화

아, 더워 죽겠네

녹는다, 녹아

by Snoopy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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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나날이다. 다들 날도 더운데 잘 지내느냐고 묻는다. 문득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나도 자문해봤다. 나의 대답은 단순했다.

‘잘은 개뿔, 너무 더워 죽겠다.’

이미 몇 해 전부터 1994년의 기록적이었던 더위와 비교하며 폭염 기록이 갱신되고 있다고 다들 호들갑을 떨었다. 나도 한 삼 년쯤 전에는 정말 더위에 충격을 받았는데, 그 이후에는 그래도 그럭저럭 적응해가며 버텨 나갔다. 원래부터 더위보다는 알레르기 반응까지 보이는 추위에 약한 것이 나라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의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힘들다.
아랍의 사막에서도 멀쩡했던 피부가 이제는 수포를 쏘아 올리며 햇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기에 강렬한 태양에 노출되는 부위 전체에 반드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으면 외출할 수가 없게 됐다. 증상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아주 작은 수포들이 솟으면서 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하거든.
사람들이 열대야라 잠 자기 힘들다고 마구 불평들을 쏟아낼 때도 더워서 땀을 흘리며 일어나기는 해도 왜 잠을 못 자거나 설칠까 생각했는데 올해부터는 나도 그 불면의 대열에 참여하게 됐다. 전기세 폭탄이 두려워 에어콘을 밤새 틀고 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부터 살고 봐야 하지 않겠나.
문제는 아무리 그래도 그 요금을 감당할 수 있는가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데 난 사실 올해 여름을 사무실에서 시원하게 보낼 예정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월 베이스로 급여를 받으며 뭔가 일을 도모하게 됐던 것이다. 신은 내가 팔불출마냥 너무 좋아했던 것이 꼴보기 싫었던 걸까. 급여가 지급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굉장히 불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거의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버텼지만 그 끈이라는 것이 겉으로만 멀쩡했을 뿐 속은 썩은 동앗줄이었던 것. 프로젝트 시작 5주 만에 중단을 통보 받았다. 줄은 끊어졌고 나는 추락하고 말았다.
그 추락의 끝은 고열이었다. 38도가 넘는 열이 밤새도록 떨어지지 않았다. 남들은 열대야로 뜨거운 기운과 싸우고 있었다면 나는 홀로 어둠 속에서 덜덜 떨면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한 줄기 바람에도 화들짝 놀라며 추워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군가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그야말로 눈꺼풀까지 아팠던 건 이번이 처음.
겨우 겨우 몸을 일으켜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숨은 쉴 수 있으세요? 코 점막이 너무 많이 부어서 이 정도면 숨 쉬기 힘드셨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한동안 내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앞으로 이 일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시장은 어떤 성격을 가졌는가, 여기에 또 어떤 좋은 사람들을 같이 참여하게 이끌어서 이 프로젝트를 더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따위를 걱정하느라 숨도 못 쉬었다면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걱정조차 기쁨이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기쁨은 의심과 걱정으로 변해갔다. 이 일이 진행되고 있기는 있는 걸까, 나는 왜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프로젝트의 시장이 있기는 있는 걸까, 왜 혼자서 방정맞게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동참해줄 수 있는가의 여부부터 물었을까,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일까. 왜 약속한 입금은 이행되고 있지 않은가. 숨 죽인 채 묻지도 못하고 애만 태웠던 시간들.
그게 다 내 몸 안으로 기어 들어와 활활 불타 올라 내 몸이 불덩이가 되었던 거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독한 약을 처방해줬고 비록 열과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나는 그 약을 먹기만 하면 맥을 못 추고 바닥과 물아일체가 된 채 잠들곤 했고 깨어 있는 시간에는 그야말로 대장 내시경을 앞둔 사람마냥 장을 깨끗하게 비워댔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또 동시에 이 고통을 대가로 입금을 받게 되어 더 이상 노무사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어진다면 좋겠다는 기도를 담기 시작했다.
맙소사. 정말이지 이 더위에 내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고서야!
이러다 영혼까지 항문으로 빠져나가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겨우 이성을 되찾아 병원에 문의하니 항생제의 부작용으로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결국 약을 조정하고 설사약도 같이 처방 받았다.

“더운데 잘 지내세요?”

아니오, 잘 못 지냅니다.
정말 죽을 것만 같습니다만. 또 그렇다고 죽지는 않으리란 것도 알 것 같네요. 어쨌거나 열이 내렸고 나는 다시 살 만 하다는 생각이 들고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러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요. 아무리 태양이 나를 녹이겠다는 기세로 타올라도 나는 눈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니까요. 다만 우리 마음 단속 단디 합시다. 폭염과 열대야는 한동안 우리를 떠날 것 같지 않으니 우리가 현명하게 버틸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제발 제때 입금이 됐으면 좋겠군요. 뜨거운 기운에 자꾸만 잠을 방해받는 밤엔 이제 에어컨을 켜고 잘 생각이거든요. 요금 폭탄을 맞더라도 저 또한 한국전력공사에 입금만 해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꽈.
에어컨이 빵빵한 카페로, 몰로 갑시다. 돈 쓰기 싫으면 도서관도 나쁘지 않아요.
……

나의 뜨겁고 숨 막히는 여름을 암울하게 감쌌던 어둠의 기운도 훠이, 훠이~~~!!!
아울러 당신의 여름이 안녕하기를 기원하며 오늘은 이만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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