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득 마흔 11화

저기 없어서 참 다행이야

이제 한적한 게 좋아

by Snoopy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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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외부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창밖의 풍경을 틈새로 노려보며 갈아타는 버스에서는 앉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 문득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리한 까치발과 몇 번의 목 꺾기 신공 발휘 끝에 목소리의 주인공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맙소사, 그녀였다.


30대 초반만 해도 나는 걸핏하면 클럽에 가서 밤 새도록 춤을 추거나 친구네 집 파티에서 흥청망청 와인과 맥주병을 비워대곤 했다. 딱히 꼭 그래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니다. 그때만 해도 그 일들을 함께할 수많은 동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 그룹의 규모는 한번 모였다 하면 최소 열 명에서 최대 스무 명 안팎 정도로 꽤 컸다. 멤버도 일정하지 않았으니 그룹 자체는 훨씬 컸더랬다. 모임의 특성상 고정멤버라든지 조금 더 친해진 사람들끼리의 소그룹 등으로의 세분화 같은 것이 일어나긴 했지만 늘 반가운 얼굴들이었고 직접 대화를 통해서든 간접 소식을 통해서든 서로의 인생에 대해서 인지하며 지내왔다.


그러다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만나는 횟수가 줄고 떠나는 멤버도 생기고 하더니 이제 드물게 SNS로 올라오는 소식을 접하는 것 말고는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어린이 시절부터 다양한 모임에 적을 두어왔던 나로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또 그렇다고 우리가 절연했다거나 한 건 아니었기에 참 반가웠다. 강력한 자석에 이끌리듯 수많은 승객들을 헤치고 그녀 앞으로 끌려가 인사를 건넸다. 반응은?


두말 하면 잔소리, 서프라이즈~!


버스에서 반가운 말들이 오고 가다가 환승해야 하는 정거장이 같다는 걸 알게 된 우리는 언제 이렇게 다시 만날지 모르니 식사라도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사람으로 북적이는 국숫집에 마주앉았다. 후루룩 후루룩 지난 십 년의 시간들이 입 속으로 들어가는 면발처럼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우리들의 테이블 위로 지나갔다. 그렇게 몇 마디 말로 십 년을 요약하고 있자니 시간이 얼마나 빛의 속도로 빠르게 지나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신기했던 건 정말 딱 십 년 전쯤 나만 슬그머니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멤버들이 공중분해되듯 흩어졌다는 점이다. 아무리 궁금해도 SNS조차 하지 않는 친구들에 대해서는 소식을 전혀 알 길이 없어서 슬펐다.


“그런데 우리 그때 진짜 재미있지 않았냐?”


“장난 아니었지. 너 기억 안 나? 첫차 기다린다고 그렇게 시끄러웠는데도 밥말리에서 잠들었잖아.”


“그냥 택시 타고 집에 가서 쉬면 되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왜긴, 밤새 같이 있는 게 재미있었으니까 그랬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끄럽고 사람 북적거리는 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구나 싶어 아련해졌다. 이제 더 이상 클럽에서의 밤샘 같은 건 절대 하지 않는 우리는 편안한 소파와 침대가 우리를 반기는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신기하게도 같은 노선인데 그녀가 좀 더 먼저 내릴 예정이었다. 그 버스 노선은 홍대 앞을 지나는 거였는데 그 안에서 내다본 금요일 저녁 무렵의 홍대는 인파로 바글바글했다. 당연하지, 불금인데. 아마 9번 출구는 나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것이고 그 옆 건물로 나오는 구멍을 아는 사람들은 그쪽 사정이 낫길 바라며 이동 중이겠지. 이젠 다들 아는지 거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을 테지만. 거리는 인파로 가득하고 낯처럼 환하게 불이 켜져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약속으로 친구를, 연인을 만나 돌아다니느라 바쁠 테지. 거리에 사람이 바글바글할수록 아드레날린이 치솟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멀찍이 떨어져 보고만 있어도 어우, 소리와 함께 몸서리가 쳐졌다. 같은 곳을 바라보다가 부르르 내 몸의 진동을 느낀 그녀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본다. 우리의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동시에 외친다.


“와, 우리가 저기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버스에서 내리기 전 그녀는 집에 넷플릭스를 설치해두었으니 날 잡아 잠옷 챙겨 놀러 오라고 했다. 정말 그래야겠다. 비록 홍대앞에서 수많은 인파들과 함께는 아니지만 마흔에게도 밤 늦도록 흥미진진한 미드 영드 보며 친구와 강냉이라도 씹으며 긴 수다를 떠는 즐거움은 누릴 힘은 남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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