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Last days in Ho Chi Minh City
기적처럼 만난 이 신혼부부와 반나절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그들은 늦은 오후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다고 했다.
혼자서 다니다가 누군가를 만나 함께 다니는 것도 즐거웠다.
이들이 조사해서 알아낸 맛집에도 가고, 벤탐 마켓에서 쇼핑도 하고.....
혼자 저렴한 여행을 해왔던 나로서는 꿈도 못 꿔볼 레스토랑에 가서 음식을 먹었는데 여럿이 가니 여러가지 음식을 시켜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들의 탁월한 선택 덕분에 아주 맛있고 거나한 한 끼를 치러낼 수 있었다는. 역시 베트남이 음식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것 같다.
내가 언젠가 그 나라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미식여행이 될 터였다.
먹고 걸어서 소화시키고 또 먹고 또 걷고 또 먹고.........그렇게 있다가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더랬다.
시장에서는 빈티지한 베트남 다구 세트와 커피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한 베트남 커피를 좀 샀다.
그러는 동안 점점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그들을 호텔까지 배웅했다.
정말 너무 너무 고맙고 한국 가면 바로 찾아가겠다고. 결혼 축하하고 잘 살라고.
그리고 다시 혼자 이 길인가 저 길인가 헤매면서 그 와중에 쇼핑도 해가면서 겨우 호텔로 돌아왔다.
마침 예쁜 리셉션 언니가 퇴근을 준비중이었다. 나에게 저녁 먹었느냐 묻는다.
아직이라니까 짐 갖다놓고 같이 나가잔다.
악질 하노이 호텔 이야기를 듣고 언제나 나를 안쓰럽게 바라봤던 그녀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밥집이라며 나 혼자서는 전혀 들어갔을 리 없는 아주 작고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생선 좋아하냔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한참 동안 그녀와 그녀의 영국인 남자친구의 연애 스토리와 석 달 뒤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국제 연애는 쉽지 않구나...문화적 차이....장거리 연애....사랑으로의 극복....그런 말들이 오갔다.
결혼하면 영국에 가서 살게 될 텐데 두렵다는 말을 솔직하게 해줘서 놀랐다.
드디어~ 눈앞에 요리가 등장~ 그리고...으아............................ㅠㅠ
맛있었다.
밥을 먹으며 기적 같았던 신혼부부와의 만남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막 박수를 치며 놀란다.
어쩜 그런 일들이 너에게는 잘만 일어나느냐며 웃었다. 그런 뒤 어제 못 만났네, 어젠 뭐했어 물어보기에 친절한 베트남 현지인들네 집에 초대되어 점심을 먹는 등 너무 좋았다고...장례식에도 가봤고...미주알 고주알....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왜 그래? 표정이 안 좋아."
"야, 너 절대 다시는 그렇게 아무나 따라가지 마!!!!!!!!!!!!!!!! 너 진짜 큰일나!!!!!"
"아니야, 되게 친절했어. 밥도 얼마나 맛있었다고. 비록 여동생은 못 만났지만."
"너처럼 그렇게 그 집으로 자발적으로 가서 있는 돈 없는 돈, 카메라, 귀중품 다 털리고 시 외곽에 버려지는 관광객들 이야기 못 들어봤어?"
"에이, 설마. 전혀 그런 험악한 분위기 아니었어. 밥 맛있게 먹고 날 데려다줬는걸."
"야, 그 아저씨한테 총 있었다며!! 그거 꺼내서 너한테 겨누면 너 어쩔라고 했어?"
그녀가 정색+불같이 화를 내서 그랬는지 그녀의 말이 진짜면 어쩔 뻔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왠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으로 돌아와서는 아까 혼자 다니다가 들른 마트에서 산 와인 한 병과 안주거리 치즈를 꺼냈다.
나름 나의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는데 딱히 지난 밤처럼 홀로 클럽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냥 보내는 것도 슬플 것 같았으므로....또한 베트남의 와인은 어떤 맛인지 궁금했으므로....
한 병을 야금야금 비우며 다시 나의 일기장의 페이지들은 까만 글씨로 뒤덮여갔다.
병이 다 비워지자 나는 까만 방에서 천장의 가로등 주황 불빛 위로 분주히 움직이는 도시 그림자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잠들었다.
이번 베트남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아침. 이른 시간에 벌떡 일어났다. 서울로 돌아가는 밤비행기까지는 하루가 거의 통째로 남아 있었다. 눈을 껌뻑거리며 문득 그간 내가 관광객이라는 직무에 충실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도무지 여기서 유명하다는 어떤 명소에도 들르지 않았다. 그저 하릴없이 골목이나 길가를 누비며 사람을 구경하거나 빨래를 들여다보다가 사진을 찍었을 뿐. 배가 고프면 아무데나 들어가 사람들이 많이 먹는 것 같은 것을 먹고 얼음 맥주를 마시고 카페에 들어가서 더위를 식히며 일기를 끄적거렸을 뿐.
어쨌든 마지막 날이니 한번쯤은 제대로 된 관광객이 되계기로 하고 여행책자를 뒤적거리며 계획을 세워봤다.
오전에 앤틱 거리를 구경한다. 나는 앤틱을 좋아하는 여자니까.
오후에 유명하다는 동물원을 구경한다. 왠지 모르지만 동물원이 꼭 봐야 할 관광지 목록의 번호 하나를 꿰차고 있었으니까.
앤틱 마켓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가격이 어마무시했다. 딱히 정말 작정하고 뭘 사야겠다고 간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냥 구경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기이한 일이 있었다.
신나서 마구 쏘다니며 물건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서너 명의 무리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와, 그 신발 예쁘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혹은 이것은 데쟈뷰인가....
"응?"
"신발 예쁘다고. 어디에서 샀어?"
"아.................저기......................서울에서...............나 한국사람이야."
"어머, 정말? 실은 우리는 지금 친척을 방문 중인데 말이야, 내 조카가 곧 한국으로 간호원으로 들어가거든.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데 좀 알려주지 않으련? 점심이라도 먹으면서 말이야. 그 애 집이 여기서 멀지 않아. 차로 5분만 가면 돼. 같이 가지 않을래?"
나는 내 귀를 의심했으며 정말이지 그들이 나에게 진실을 말하기를 바랐다.
"어쩌지? 내가 시간이 별로 없는데. 혹시 3시쯤 시내의 어디에서 만나면 안될까? 그때라면 만나줄 수 있어."
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더니 다양한 핑계를 대며 즉시 가서 만나는 것만이 가능하다면서 나를 어떻게든 데려가려고 했다. 나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여행 잘해."
사라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혹시라도 내가 저들을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으슥한 곳에서 만났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그리고 호텔의 아름답고 친절한 그녀의 말이 맞았구나, 나는 잘못하면 총에 겨눠지는 대상이 됐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하노이에서 그 모든 일을 당하지 않고 지갑에 돈이 여전히 넉넉히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 모든 사기와 질 나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호이안의 홍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총구에 놀라 겁에 질린 채 내 모든 것을 내놓고 어디엔가 버려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던 것이다.
저주라고, 지독한 불운이라고만 생각했던 그간의 일들이.....즉, 하노이의 저주가 결국 나를 위험에서 구해준 셈이었다. 새옹지마, 전화위복 같은 말들이 사람의 일은 참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서 도리질을 치며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던 시클로 타기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 친절해 보이는 시클로 기사를 불러 세워 흥정을 마치고 동물원으로 향했다.
동물원은 그냥 평범했다. 다만 코끼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장점?
심지어 사육사 아저씨가 내가 맘에 들었던지 사진을 찍게 해주기도 했다. 아까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기에 마구 기뻐하며 사진을 찍었다. 슬쩍 돈 달라면 어쩌나 긴장했는데 아저씨는 자기 사진과 내 사진을 보며 해맑게 기뻐해주고는 나를 고이 보내주었다.
성당, 우체국......동물원을 끝낸 뒤에는 다른 스포트들도 하나씩 클리어해나갔다. 우체국이 특히나 아름다워서 한참을 넋을 놓고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우체국에서는 나에게 편지도 보냈다. 대체 언제 그런 것까지 썼담? ㅋㅋㅋㅋ 그 편지 나한테 잘 도착했는데 나는 아직도 안 뜯어봤다는. 아마도 언젠가 베트남에 다시 가게 된다면 짐 싸면서 한번 읽어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의 저 우체국은 맥도날드가 들어오는 등 예전의 아름다움을 많이 잃고 상업화 된 것 같던데....
안타까운 마음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서였는지 정말 발에 불이 나도록 다닌 것 같다.
호치민이라는 도시는 뭐랄까....하노이와 비교할 수 없이 이미 발달한 곳이었다.
멀쑥하고 깔끔하고....그러면서도 베트남 특유의 정취도 간직하고 있는 곳.
하지만 역시 베트남의 얼굴은 어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노이의 손을 들을 것 같기는 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호텔. 체크아웃하며 예쁘고 상냥했던 그녀의 결혼을 미리 축복해줬다. 거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끝까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그녀가 잡아준 믿을 만한 택시를 탔다.
친절한 기사는 쉴 새 없이 떠들며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창밖에는 그렇게 많이 보았던 오토바이들이, 이번 휴가의 마지막 도시 호치민이 멀어지고 있었다.
나의 파란만장했던 베트남에서의 열흘도 함께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맞이한 새벽은 내가 열흘 동안 꾼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그날 아침 나는 바로 다시 출근했다.
정말이지 베트남에 다녀왔다고 확인시켜주는 건 카메라 메모리에 남은 사진들과 사무실에 향긋하게 퍼져 나가는 다람쥐 커피의 향기뿐......
the end
덧_
다음 날 바로 달러로 환전해서 기적 같았던 만남의 주인공에게 돈을 되돌려줬다.
가족들은 내가 보낸 문자를 하나도 못 받았다고 했다.....그 문자들은 어느 우주를 떠돌고 있는 것일까...
부디...제발....베트남 여행 갈 때는 몇 시간을 반드시 투자해서 공부를 하고 가시라는 이야기를 덧붙이며....정말 끄읕!!!
이 험난한 여정을 끝까지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