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Ellie my love so sweet
다카야마는 출장으로 간 길이었어.
거긴 종일 취재 다니느라 오래도록 걸어다니가 역시 취재 때문에 들어간 중정이 아담하고 예쁘게 가꿔진카페였고.
난 친절한 직원의 추천을 받아 그곳에서 인기 있다는 말차와 와라비모찌 세트를 주문했어.
쌀쌀했던 날씨 때문에 추웠는데 직원이 기다리는 동안 마시라고 물 대신 가져다운 따뜻한 호지차를 후후 불어가며 마셨거든. 일하는 중이었지만 동시에 선물처럼 주어진 나른한 휴식이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아마 그때였을 거야 내 귀로 그 노래의 선율이 흘러들었던 건.
다만 익숙한 레이 찰스의 목소리가 아니라 가녀리면서도 호소력 짙은 일본 여성 보컬의 노래여서 좀 놀라긴 했어. 나중에 알고 보니 레이 찰스가 일본 노래를 리메이크 한 거였더라구. 들어보니 가사도 다르더라.
"울린적도 있어, 냉정하게 대할 때면 더 말야.
곁에 있고 싶은 기분이면 된 거야. 나에게는 이것으로 마지막 Lady
Ellie my love so sweet.
우리 둘이 만약 사랑이 식어서 눈이 마주쳐도 냉담해져 다른 이에게 말 못한 채 추억만이 다가와
침묵만 남는다면 사랑이 끝난 거겠지.
Ellie my love so sweet."
그런데 말이야 누가 일부러 일시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꼼짝도 할 수 없더라.
점원이 내가 주문한 차와 와라비 모찌를 내 앞에 세팅해주는데도 난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지.
"좀 더 웃어봐 Baby, 천진하게 On my mind.
좀 더 봐봐 Baby, 멋있게 In your sight.
눈물의 날들은 끝났어. Ellie my love so sweet...Ellie my love so sweet."
내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어.
곤란한 일이었지.
누가 보면 와라비모찌를 먹는 것이 그렇게 감동적인 일일까 생각하며 웃을지도 모르겠다고,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어.
하지만 너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의 조각들이 끈질기게 떠올라 나의 마음을 휘저어놓고 말았지 뭐니.
CD 플레이어가 있는 하얀색 도요타 기억 나?
우리가 레이찰스의 Genius Loves Company를 자주 틀었던 것도?
그중 네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Ellie, my love였잖아.
"Smile for me, won't you, baby Forever you'll be on my mind Drink with me won't you baby We're gonna make it right this time There's no one else like you Anything you want, I'll do Ellie, my love so sweet Ellie, my love so sweet..."
이 부분이 나오면 둘이서 동시에 목청 높여 따라 부르고 깔깔거렸지.
그게 재미있어서 반복해서 들으며 도착한 곳이 다카야마였잖아.
우리의 여행 패턴은 다른 여행자들과 조금 달랐어.
사진 찍기 가장 적합한 해뜨는 시간과 해지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지.
나머지 시간은 잠과 식사, 사진 찍을 곳을 물색하는 것으로 채워졌고.
이미 너무 늦게 도착해서 호텔에 체크인 하고 짐만 던져놓은 뒤 저녁을 먹고 둘이서 손을 잡고 관광객이 빠져나간 거리를 거닐며 새벽에 어디에서 사진을 찍으면 좋은 스팟을 가늠했었잖아.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어디로 여행하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우리들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말도 안 되는 설정과 귀여운 억지가 웃겨 깔깔 웃음소리가 어두운 골목으로 퍼져 나갔던 밤이었어.
와라비모찌는 참 맛있더라.
달콤하고 젤리와 떡을 합쳐놓은 듯한 질감에 흑설탕과 콩가루의 풍미가 더해져 더할나위 없는 조화를 이루더군. 그것만 있었다면 너는 그저 그렇다고 평가했을 테지만 거기에 얹어진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한 스쿱 때문에 너도 굉장히 좋아했을 거야.
카페엔 일본어로 엘리 마이 러브가 아직도 흐르고 있었지만 이제 내 머릿속에는 레이 찰스의 노래가 흐르더구나.
"너의 마음을 고통 속에 내버려둔 채 떠난 적이 있었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떠났다 돌아오곤 했네
결국 내가 발견한 건 이 세상에서 행복하지않으리란 것
네가 내 곁에 없다면.. 엘리, 나의 달콤한 사랑
내 심장이 나에게 도망치라고 말했지
난 이제 이 먼 곳에
밤에 널 안을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럼 나는 따뜻하고 밝은 아침에 일어날 수 있겠지
내 사랑 엘리, 너무나도 달콤하지"
그리고....
잠든 네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훔친 것,
이 여행이 끝나면 우리가 헤어지리라는, 그리고 아주 오래도록 다시 만날 수 없으리란 쓸쓸한 예감,
나의 마음이 고통의 불구덩이에서 타오르리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여행을 그만둘 수 없으며, 어떤 것으로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결론에 대한 무기력감,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겨 꼭 쥐고 있던 내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말았어.
쌉쌀한 말차를 다 마시고 취재를 마친 뒤 바로 밖으로 나왔어. 그날의 일정은 모두 소화했지만 좀 걷고 싶었거든.
하지만 이제 어디를 가도 기억이 끈질기게 따라붙었어.
너랑 손 잡고 건넜던 다리, 너와 새벽에 삼각대를 들고 분주히 오가며 너는 너의, 나는 나의 사진을 찍었던 오래된 거리, 네가 웃기는 표정으로 포즈를 취해서 사진을 찍어줬던 동상, 함께 엘리 마이 러브를 흥얼거리며 바라봤던 강....너의 목소리, 네가 웃을 때 왼쪽 눈이 좀 더 작아지던 것, 커다란 네 손의 촉감.....
갑자기 밀려드는 모든 기억에 미칠 것 같았어.
사실 너와 내가 서로의 인생에서 멀어지게 되면서 들을 수 없게 된 노래가 몇 곡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엘리 마이 러브였어.
다카야마로의 출장이 잡혔을 때도 너를 떠올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단속해두었건만....일본어로 된 그 노래를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지.
그렇게 계속 걷다가....
우리가 묵었던 호텔을 발견하고 말았어. 그때는 새로 지어서 엄청 번쩍거리던 외관이었는데 세월은 어쩔 수 없나봐. 벌써 허름해 보이더라고. 들어가볼까 하다가....내가 정말 맛이 갔구나, 싶어서 말았어.
대신 내가 뭘 맞닥뜨렸는지 알아?
단고집이었어. 여든 다섯이 된 할머니가 육십 년도 넘게 딱 하루 빼고 문을 열었던 그 집 말이야.
네가 잠든 틈을 타서 나 혼자 다카야마를 산책했잖아.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던 네 표정이 참 귀여웠는데.
이제 할머니는 안 계셔.
2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내가 하루도 안 쉬고 그렇게 오래도록 이 일만 하면 지겹지 않느냐고 여쭤봤었는데 할머니가 나에게 그때 그랬거든. 젊어서 먹고 살 일이 막막해 시작한 장사였는데 힘들어도 매일 이 일을 하니까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어나고 아이들도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고 자기의 인생도 더 빛나게 됐다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기는 매일 가게를 열 거라고.
지금은 며느리가 그 일을 이어받아 그냥 또 그렇게 매일 가게를 열고 단고를 만들어 팔아.
언젠가 다카야마에 다시 가게 되면 그때 찍은 할머니 사진이랑 이번에 찍은 사장님 사진을 뽑아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참 좋아했을 텐데.
정처없이 걷다 보니 다시 오래된 건물들이 빼곡한 그 길로 돌아왔어.
너는 너대로 삼각대를 설치하고 나는 나대로 삼각대를 설치하고 셔터를 눌렀던...
아직은 관광객이 들이닥치지 않아 적막한 기운마저 느껴지던....
나는 어디가 좋을까 혼자 그 길 어딘가를 서성이며 엘리 마이 러브를 흥얼거렸지.
"나를 위해 웃어줘, 그래주지 않을래, 자기
당신을 영원히 내 마음에 간직할 거야
나와 함께 한잔하자, 그래주지 않을래, 자기
이번엔 제대로 할 수 있어
어디에도 당신 같은 사람은 없어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하겠어
엘리, 나의 사랑, 너무도 달콤하지
엘리, 나의 사랑, 너무나도 달콤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혹은 부를 때마다 엘리가 나이길 바랐어.
네가 나에게 노랫말처럼 말해주길 바랐어.
우리가 여행의 끝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언젠가 다시 만나 한잔 기울이며 다시 시작하게 되길 바랐어.
내가 아니라면 너의 엘리는 누굴까, 알 수 없는 미지의 누군가를 질투했어.
지금 생각하면 참 부질없는 일이었는데 그땐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어.
출장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그때 우리가 들었던 CD를 꺼내어 틀었어.
더 이상 아프지 않더라.
그리고 지금 다시 그 노래를 들어.
이렇게라도 너에게 다카야마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끝까지 들어줘서 고마워.
.......안녕.
***
Songwriters: KEISUKE KUW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