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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Jan 16. 2024

'이 일'에 지원하시겠습니까?

육체노동의 나날들_01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나의 모친은 새벽에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를 잠결에라도 들으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도 했다.

각각 다른 사람들이건만 그들이 그런 마음을 전한 뒤 덧붙이는 말은 하나같았다.


"너 처럼 재능 많은 애가 왜......"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내가 재능과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됐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내게 굉장한 재능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든 먹고 살고는 있었을 테지.

시장에서 원하지 않는 재능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부산물을 일구지 못한다.

숨 쉬며 살아가는 데만도 돈이 드는 이 세상에서 그건 정말 치명적인 약점.


아차, 소개가 늦었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다. 내 이름을 건 책이 세 권 출간되었고(공저를 포함하면 네 권),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글을 팔고 있다.

여행과 차와 차 문화 및 예술에 대해 다룬 책들이다 보니 그걸 바탕으로 몇 가지 강의를 하기도 했다. (가장 근사했던 강의 장소는 국회)

최근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도시양봉으로 꿀벌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이와 관련된 강의도 했고. (꿀벌 강의의 경우 과천과학관이 제일 멋졌음)

이제 막 삼천 명 가까이 되는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이 있고 최적화된 블로그니까 팔 생각 없냐는 쪽지가 매일 열 통 넘게 오는 십 몇 년 된 블로그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가난한 작가나부랭이일 뿐이다.

어떻게든 작품활동과 강의만으로 내 삶을 꾸려나가보려 했지만 현실의 벽은 단단하고 높았다.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텼지만 기본적인 생계조차 스스로 꾸려나가는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변한 세상에서 새로운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양한 분야에 이력서를 내봤지만 역시 나이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당연히 나이 성별 학력 관계 없이 뽑는다고들 표면적으로는 말하지만.....

거기에 휴학생도 가능하다 덧붙인다면 확실히 20대 초반일수록 좋다는 이야기.

39세 이하라고 못박아 주는 곳은 오히려 고맙다. 괜히 기력 낭비해가며 자기소개서 쓸 필요가 없으니.

그럼 나이를 안 밝히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이력을 설명하다 보면 결국 나이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쨌든 철옹성 같은 나이의 장벽을 느끼며 좌절하던 중 발견한 구인공고.

누구든 지원할 수 있고 다 열려 있다는 그런 느낌이 왔고 그렇다면 나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새벽 3시, 그날도 이력서를 열네 곳에 보내고 지친 마음으로 본 그 마지막 공고에 연결된 링크로 타고 들어가서 지원 폼을 작성했다.


지원하시겠습니까?


'네'를 클릭하자마자 전화기로 지원해줘서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시스템이 보낸 것이겠지만 아무리 이력서를 보내도 어떤 피드백도 받지 못해온 나에겐 그 문자에서 왠지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로부터 며칠 뒤, 면접 일정이 잡혔다.

백 통이 훌쩍 넘는 이력서를 보낸 후 처음으로 보게 된 면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면접에 임했다가 일을 그르치거나 망쳐서 지옥에 떨어진 기분으로 나오면 어떡하지 와락 걱정이 되어 '이 일'을 해본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꽤 여러가지 이야기들과 경험담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취합해본 결과 쉽기만 한 일은 아닌 듯했다.

그래도 되기만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은 분명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 일을 놓치면 큰일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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