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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opyholic Jan 20. 2024

주문

육체노동의 나날들_02

사람들은 뭔가 물건이 필요할 때 각자의 핸드폰 속 어플리케이션을 열고 들어가 손가락 몇 번을 움직여 주문을 끝낸다.

시스템 속으로 들어간 주문은 가장 적합한 지점을 선택해서 주문 이행을 촉구한다.

고객의 신호음 “빠라바밤빠밤”이 매장에 울리면 크루들은 픽업해야 하는 물건을 할당받아 토트라 불리는 바구니 번호를 지정해서 시스템에 있는 순서대로 물건을 담으면 된다.

물건 담기가 끝나면 포장대로 와서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서 물건들을 분류, 포장해야 한다.

포장이 끝나고 라이더들이 가져갈 수 있는 상태까지 만들어주는 그 모든 과정의 시간이 측정된다.

시간이 늘어지면 즉시 캡틴이 방송을 시작한다.

주문이 밀리고 있다고, 시간이 늘어지고 있다고, 더 빨리 움직여달라고.

그럴 수밖에 없다.

당시에 이들은 주문에서부터 물건을 받기까지 15분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걸고 광고를 하고 있었으니까.

15분 뒤에 받을 생각으로 2리터짜리 옥수수수염차를 두 개, 세제 한 통, 핸드크림 한 개, 그릭요거트와 벤앤제리 아이스크림을 주문한 사람은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그 주문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매장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서 물건을 바구니에 넣어야 하고 냉장칸과 냉동칸까지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것을.

토트는 아주 무거워져 있고 안전화의 철판 아래의 내 발이 비명을 아무리 질러대도 나는 속도를 늦춰서는 안 된다.

크루들의 전체 평균 기록이 나 때문에 느려지는 일이 생기면 그것도 민폐가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은 늘 찾아온다.

춥디 추운 냉동칸에서 물건을 찾을 수 없어 헤매는 동안에는 식은땀이 나는 동시에 꽁꽁 얼어붙는 경험을 하게 된다.

끔찍하게 무겁고 힘든 주문을 감당해야 할 때 늘 눈을 질끈 감고 내게 주문을 외우곤 했다.

’주문만 끝나면 늦어도 30분 이내로 모든 것이 배달되는 이 편리한 걸 사용하는 고객이 나일 수도 있다.‘

사실상 이보다 편리한 게 또 있을까. 나는 이 일을 하며 자주 고객들이 부러웠다.

가만히 앉아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해결되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그렇게 쉽게 내 인생의 모든 고민도 해결하고 싶었다.

피하고 도망치고 그렇게 계속 밀리고 밀려 도착한 곳이 이곳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나를 숨 쉬게 한 건 식은땀도 얼어붙게 만드는 냉동칸에 있을 때 함께 달려와 물건을 찾아주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이곳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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