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愛, 로路, 소설小說 01 바르셀로나

_ 악몽

by Snoopyholic


3_


흙먼지조차 올라오지 않는 건조한 지대였다.

나무 한 그루도 없어 손바닥만 한 그늘조차 보이지 않고 말라비틀어진 꽃도 성난 가시만을 세운 체 그저 힘겹게 서 있는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너무 건조해서 땀조차도 솟구침과 동시에 증발해버렸다.

목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물이 어딘가에 있을 거란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땅 위에서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때문에 바닥에 물이 고인 것 같은 착시현상만 나타났다.


‘왜 이렇게 더운 거지? 한여름도 아닌데. 이 상태로는 오래 못 버틸 것 같은데. 이러다 길바닥에서 죽는 거 아냐?’


조심스럽게 주변에 까마귀나 독수리가 날아다니지는 않나 둘러봤다.

다행이다. 아직 죽을 때는 아닌가보다.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나는 힘겹게 태양 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 걸었다.

조금 뒤 멀리 지평선 위로 사람의 형체가 둘 나타났다.

처음엔 두 개의 점 같이 보이더니 점점 커지면서 형상이 나타나는데 꼭 제이미와 헤더의 모습 같았다.


이상하다. 그들이 왜 여기에 온 걸까? 나를 찾으러 온 걸까?


다가오는 형태가 점점 커지면 커질수록 나의 확신은 더해갔고 갑자기 그들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내 두뇌를 초고속으로 돌려댔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결론에도 도달할 수 없었다.

그냥 그들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결론짓고 나도 모든 힘을 쥐어짜 속도를 더해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확실하게 내 시야에 들어왔는데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제이미는 비참한 얼굴을 하고 앞만 응시했고 헤더는 옆에서 힘없이 그의 팔을 붙들고 걸었다.

나는 반갑게 말을 걸어보려 하지만 입 밖으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나를 바라봐달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모자를 바라봤다.

마침내 우리가 서로를 스쳐 지나는 순간 헤더가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고 볼에도 살이 하나도 없는 좀비와 같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너무나 놀란 나는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눈을 번쩍 떴더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아, 꿈이었구나.


아무리 꿈이었다지만 너무나 생생했기에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그런 기분은 떨치고 며칠 뒤면 시작될 스페인으로의 여행에 대한 흥분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아뒀던 돈과 제이미로부터 받았던 모든 선물, 고물 노트북, 쓰지 않는 카메라 등을 중고 웹사이트에 팔고 과외로 모은 돈으로 겨우 마련한 경비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래도 뭔가 기분이 찜찜하긴 했다.

이래도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 꿈에 나왔던 헤더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헤더?”

“세라구나, 잘 지냈니?”

“그럼요. 사실 저 곧 석 달간 스페인 가요. 가기 전에 목소리 들으려고 전화했어요.”

“스페인? 좋겠구나. 어디로 가니? 나도 어머니가 계셔서 남부지방에 대해선 좀 아는데.”

“저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고 북쪽에 있는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했어요. 800km나 되는 긴 길이래요. 그런데 헤더 목소리가 왜 그래요? 감기 걸렸어요?”

“뭐? 그 길은 혼자 걷는다는 이야기니? 부모님껜 말씀 드렸어? 분명 걱정하실 텐데. 목소리는……. 실은 나 암에 걸렸어.”

“네?”

“의사가 그러는데 몇 개월 못 산대. 내일부터 항암치료 하는데 그걸 하면 크리스마스랑 새해는 맞이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갑자기 눈앞이 노래졌다. 눈물샘에서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지만 헤더가 모르는 게 낫겠다 싶어 급하게 전화기의 아랫부분을 막았다.


“제이미도 알고 있어. 일이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네. 그래도 11월에는 돌아온다고 했어.”

“지금이 8월 말인데 11월에나 온다고요?”

“걔가 원래 할 일이 있으면 그렇잖니. 이제 난 포기 했다. 와준다고 하니 고맙지. 와서 함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으면 그걸로 난 됐어. 그나저나 사실 나 혼자 몰래 너희 둘이 잘 되라고 마음속으로 참 오래도록 기도했는데. 잘 안 돼서 참 안타깝구나. 제이미가 너를 처음 데려온 그 날부터 내 딸처럼 아끼면서 며느리 삼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어.”

“에이, 전 지금도 그 날과 똑같은 세라에요. 아 그나저나 뵙고 싶은데 어떡하죠? 스페인이고 뭐고 영국부터 갈까요?”

“무슨 말이냐, 나 때문에 그런 일은 하지 마라. 다녀와서 보면 되잖니. 그러잖아도 요즘 들어 네가 해주던 한국식 닭 가슴살 바비큐가 먹고 싶더라.”

“알았어요. 그럼 약속할게요. 스페인의 그 길을 다 걸으면 헤더에게 날아가 맛있게 요리해드릴게요. 그리고 우리 손잡고 예전에 거닐던 산책코스도 함께 가요.”

“그래, 그래.”

“그러니까, 암은 환자가 어떻게 마음먹느냐가 아주 중요한 병이에요. 꼭 각오를 단단히 하시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생각만 하셔야 해요. 아시겠죠?”

“알았다. 잘 다녀 오거라. 늘 조심하고.”

“네.”

“그럼 들어가라.”

“잠깐만! 헤더,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죠?”

“물론 잘 알지.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

“헤헤, 그래서 행복해요. 다녀와서 뵐게요. 스페인에서 또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뒤에는 좀 멍하더니 기분이 엉망진창이 됐다.

망망대해를 떠도는 색이 바랜 러버더키가 이런 기분일까.

키보드에 손을 놓았다 떼었다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차분하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제이미에게 엄마 곁으로 돌아가라는 이메일을 썼다.

보내기 버튼을 클릭하자마자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불도 끄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표류하던 러버더키가 어느 무인도에 겨우 가 닿은 기분.

한숨 끝에 여행일정을 떠올리며 어디쯤에 런던을 끼워 넣을지 가늠하다 보니 떠나는 사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몸을 누인 늦여름의 이불 속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to be continued.....



******* 이 글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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