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로맨틱 바르셀로나
7_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거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
많은 사람들로부터 말로만 들었던 그의 위대한 ‘작품’을 나의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의 감동이란 정말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신기하다’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막상 내가 직접 그가 만든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니 확실히 다른 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던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양한 색채와 상식을 완전 깨부수는, 기이하나 아름다운 건물의 장식들은 내 온 몸의 말초신경까지 자극하는 에너지를 내뿜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이 모든, 도무지 과학적이라고 보이지 않는 가우디의 ‘작품’이 사실은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거친 뒤에 지어졌다는 사실이었다.
하긴, 사람이 이용하는 공간인 건물을 과학의 적용 없이 마구잡이로 지을 수는 없는 일.
가우디는 많은 사람이 채택하는 인위적인 직선이 아니라 자연에 가까운 자연을 도입하기 위해 건축에 과학을 이용했다.
알베르토와 바르셀로나에 있는 그의 ‘작품’들을 순회하면 할수록 ‘이 사람은 천재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말년에는 서른한 살 때부터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득 안고 짓기 시작했다는 성가족교회(Temple de la Sagrada Familia)의 작업에 매진하다가 맥없이 그리 빨리 달리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한 전차에 치어죽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비통함이 가득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얼마나 작업에 매진해서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지 이 일흔넷의 대가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허름한 시설들을 전전했단다.
장엄함과 신비로움에 기가 죽는 가족 대성당이야 열외로 치고, 외계인들이 지은 것이라고 해도 믿었을 듯한 까사 바뜨요나 이런 멋진 건물에 살았던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던 까사 밀라 같은 곳도 좋았지만 이 미친 천재가 바르셀로나에 남긴 유산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구엘공원(Parc Güel)이었다.
이미 두 번이나 그곳에서 가우디가 창조해낸 이상한 곡선의 향연 속에서 길을 잃고 즐거워했다.
다른 곳들에 대한 궁금함도 있었지만 자꾸만 그곳으로 발길이 향했던 것.
그래서 알베르토를 끌고 세 번째로 그곳을 찾았다.
공원에는 우리 말고도 길을 잃은 즐거운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았다.
어떤 사람은 악기를 가져와 음악을 연주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그냥 햇살 아래 늘어져 낮잠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가이드였다.
공원 내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했던 자그만 십자가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알베르토의 옆모습이 조각 같다고 생각하다가 혼자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왜 웃어?”
“이것 봐, 내 발 밑에 바르셀로나가 있잖아.”
“그러게, 여기 되게 근사하다.”
“어떻게 구엘 공원에 한 번도 안 와봤을 수 있어?”
“나 사실 다른 곳도 다 오늘 처음 가봤어.”
헉, 이런 충격적인 고백이라니.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여러 번 가본 것처럼 말해?”
“꼭 뭐든 직접 가보고 해봐야 아는 것은 아니지. 그리고 그냥 언젠가는 가볼 수 있겠지 생각하다 보니 딱히 안 가진 거지. 누가 지었던 지나다니며 보는 건물이고 언제고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공원이니까. 너도 이 도시에 평생을 산 사람이라면 날 이해할 수 있을걸?”
“하긴. 나도 서울의 모든 관광지를 가본 건 아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의 공원에는 오는 거지. 여행에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 언젠가 서울에 가면 그때는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나 넓은 공원이 있으면 다 들어가 보고 싶을 거야. 그땐 네가 나랑 다니면 되지 뭐.”
정말 그런 날이 있을까?
네가 서울로 오고 너와 함께 서울을 탐사하는 날이 있을까?
묻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왠지 지금의 행복에 찬물을 끼얹을 것 같아 삼켰다.
바쁜 일이 끝난 알베르토는 다른 사람 같았다.
가장 먼저 퇴근 시간이 다섯 시로 빨라져 나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좋아했지만 그건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활달한 성격인 알베르토의 다양한 친구들이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저녁시간이면 다국적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저마다 들고 온 국적이 불분명한 요리를 차려놓고 스페인 와인을 마시며 국적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모든 사람들이 많은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 깜짝 놀랐고 자신 있게 그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역시 삶이란 건 좀 더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숙제다.
친구들이 오지 않는 날이면 사회복지를 중점에 둔 지역발전에 특히 관심이 많은 알베르토의 손에 이끌려 가난한 사람, 창녀, 같은 사회 소외계층이 사는 곳에 가보기도 했다.
놀라웠던 것은 내가 주로 아침과 낮에 혼자 시간을 보냈던 쇼핑센터가 즐비하고 관광객을 유혹하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미로, 피카소, 달리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미술관, 박물관 등으로 가득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중심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닿을 수 있는 곳에 그곳들이 포진해 있었다는 것이다.
어디에든 팽창과 개발이 경계를 넓힐수록 그 바로 바깥에는 이렇게 어두운 곳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입에서 쓴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음침한 분위기에 눌려 무섭기도 했지만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이라도 전해주고 싶어 누군가를 쳐다보려고 하자 알베르토는 그들의 눈을 함부로 똑바로 쳐다보지 말라고 조언해주면서 이제는 삶의 터전조차 위협받아 벼랑으로 몰린 사람들이라며 동정의 시선은 오히려 그들의 화를 돋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럼 나는 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산책이 지루해질 즈음이면 하늘이 본격적으로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알베르토와 나는 즐거운 바르셀로나의 밤 문화 세계로 빠져들었다. 우선 스페인의 저녁식사 시간은 오후 8시 30분 이후에 시작된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메뉴는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앞의 광장 근처의 케밥집에서 파는 치킨케밥이었다.
그 집은 다른 곳과 달리 케밥에 사용되는 빵을 직접 구웠다.
두툼하면서도 먹기 좋게 구워진 빵 위로 맛있는 양념이 잘 베어져 익은 닭고기와 신선한 야채를 얹고, 그 위로 소스를 뿌린다.
적당한 크기로 오므려서 종이에 둘둘 말면 먹을 준비 끝.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우리는 턱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줬다.
첫입을 크게 베어 물고 서로 우물거리는 모습을 쳐다보며 키득거리기 위해서였다.
웃음보가 터지기라도 하면 터져 나온 음식들을 치우느라 꽤 낭패였을 테지만 다행히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다.
간단하게 케밥이든 집에서 요리를 해먹든 차려입고 나가 먹는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이든 기분이 동하면 음주로 이어졌다.
어떤 밤은 현대미술관 광장에서 다른 스케이드 보더들이나 외국의 배낭여행자들 사이에 끼어 앉아 건들거리는 청춘에게 벌금이나 법적 제제로 본때를 보여주려는 경찰의 눈을 피해 스릴 있게 와인이나 캔맥주를 마셨다.
어떤 밤은 재즈 바에 늘어져 앉아 칵테일을 마시며 공연을 보거나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을 들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밤은 몇 백 년은 족히 된 것 같은 오래되고 허름한 선술집에 앉아 알코올이 70~90%가 되는 압생트를 마신 밤이었다.
바에서 압생트를 주문하면 바텐더는 잔에 노란 액체를 따리주고 각설탕과 생수 한 병을 내줬다.
그러면 사람들은 고흐, 헤밍웨이를 비롯해 19세기의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는 이 술을 취향에 따라 각설탕을 넣고 물과 희석해서 마셨다.
작은 술집은 예술가들의 술을 마시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우리도 구석 한 귀퉁이에 겨우 자리를 잡고 우리 나름의 인생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목소리를 높였다.
알코올의 기운을 빌어 기분이 훨씬 좋아졌는데 잠은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갈 곳은 단 하나, ‘디스코떼까(스페인어로 클럽)’다.
음악에 맞춰 밤새도록 춤을 췄다.
그야말로 몸이 탈진 직전의 상태에 이르면 밖으로 나오는데 서서히 동이 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게 이 부분인데, 해 뜨는 걸 보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여흥을 이어가고자 새벽 6시부터 정오까지 문을 여는 클럽으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세상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알베르토에게서 처음 배운 말이 달콤한 ‘뽀스뜨레’였기 때문인지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간은 후식처럼 나긋하고 여유로웠다.
‘알베르토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는 삐죽이 솟아오른 생각을 떨치려고 고개를 격렬히 저었다.
그와의 키스는 언제나 달콤했고 때때로 그가 내게 스페인어로 읊어주는 사랑의 시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감미로웠다.
참 오랜만에 내가 아름답고, 누군가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며 행복했다.
그러니까, 그냥 그걸로 된 거다.
to be continued.....
******* 이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