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인생의 짐과 배낭의 무게와의 역학관계
탱글탱글 새까만 씨가 촘촘히 박힌, 내 얼굴보다 커다란 해바라기는 아주 좋은 간식거리였다.
늘 말려서 짭짤하게 조미된 것만 먹어보다가 아직 물기가 있어 연한 해바라기 씨를 먹어보니 맛이 천지차이! 싱싱하고 노란 꽃잎이 아직 달려있는 쪽이 훨씬 고소하고 맛있었다.
새로운 간식을 발견했다는 희열에 손가락이 시꺼메지는 것도 모르고 연신 해바라기 씨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렇게 싱싱한 해바라기 씨를 먹을 수 있게 해바라기를 심고 가꾸어준 농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그런 그들의 농작물을 이렇게 제멋대로 따서 먹는다는 사실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발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몇 개의 도시들을 지났다.
도시는 모두 아담한 사이즈에 저마다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만 같았다.
오래된 석조건물에는 빨래가 널려있거나 아름다운 꽃들이 강한 색깔을 자랑하며 자태를 뽐내고, 마을 사람들은 간간히 나와 꽃들에게 물을 주거나 이웃집사람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재미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다(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부에노스 디아스(Buenos dias: 스페인의 아침인사)’를 외쳤다.
어떤 마을은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가 고즈넉이 사람들을 반기고 어떤 마을은 비탈진 산에 지어져 지나려면 건물이 옹기종기 모인 좁은 길을 오르락내리락해야만 하기도 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사실은 소냐와 마이크와 함께 이 모든 곳을 그냥 급하게 지나쳐야만 했다는 것이다.
비탈길에 자신과 함께 늙어가는 낡은 의자에 앉아 파이프를 물고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거나 그냥 편하게 아무데나 걸터앉아 축제가 다가왔다고 만면에 함박웃음을 띄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을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조금은 슬펐지만 그래도 소냐 커플과 움직이는 것이 더 좋았기에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열심히 움직였다.
햇살과 푸른 하늘에 행복해하고 소냐로부터 풍선과 달에 대한 귀여운 스페인 동요를 배우며 천 년 동안 사람들이 걸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오후가 지나고 점심 먹은 것이 탈났는지 아니면 땀 흘린 해바라기 밭주인의 저주였는지 몰라도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내 등에 매달린 가방이 시체처럼 끔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는 화장실도 어떻게 대충 숨어서 볼일을 볼만한 장소도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아나콘다가 내 몸을 조이기라도 하듯 몸에 달린 가방이 나를 옥죄어 숨을 쉴 수 없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뱃속에서는 화산이 폭발 직전이었다.
격렬하게 요동치며 불가피한 분출이 임박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식은땀도 모자라 오한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구역질이 나올 것도 같았다.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 그 자체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가방을 벗어버리고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 도착한 마을에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 다음 장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생략하겠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몸이 급 호전됐고 마음의 평정도 되찾아갔다.
참 사람이라는 것이 간사하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몸이 괴로워지자 세상만사가 고통으로 가득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더니 그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다시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기다니. 정말 순간순간 이렇게 마음이 바뀌니 인간을 만족시킨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직접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아도 누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면 대단하겠지? 세상을 다 가진 것과 버금가는 힘일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이상 사실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자신을 맑게 하는 훈련을 통해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떠한 생명체들이 촉수나 더듬이를 통해서 바깥세상에 대해 감지할 수 있듯 우리는 자신을 맑게 하는 훈련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완벽하게 파악까지는 아니어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산티아고에서 내가 가진 이 모든 질문의 대답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해가 늘어질 무렵에도 우리는 목표로 정한 마을에 당도하지 못했다. 배낭이 어깨를 짓누른다는 느낌은 둘째 치고 이제 발이 더 이상 걸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요술이라도 부려 이 배낭을 조그맣게 만들어서 주머니에 쏙 넣어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라, 괜찮아?”
“아니.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발이 걷기를 거부하려고 해.”
“하하, 내 발들도 그래. 그냥 발들을 설득해. 너희들이 아무리 그렇게 앙탈을 부려도 뇌가 멈추는 걸 허락하지 않을 테니 그냥 고통과 친하게 지내라고 하면 좀 기분이 나아져.”
“내 뇌도 멈추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뇌에겐 너의 친구 고뇌가 찾아왔는데 어쩜 그렇게 매몰찰 수 있냐고 따져. 따뜻하게 대해주자고. 정말 아무리 괴로워도 우린 목적지까지 가야해. 이런 땐 고통이랑 고뇌랑 친해지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세라 너는 가방을 비우도록 해봐. 네가 매고 가기에는 너무 무거워.”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밖에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이야. 이따가 배낭 속을 잘 살펴봐. 분명 네가 이 길을 걷는 데 필요 없는 물건들이 들어있을 거야. 배낭을 비우지 않으면 이 길을 걷는 내내 고통과 고뇌가 너를 방문하게 될 거야.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과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건 좀 우울하지 않아? 배낭이 가벼우면 발걸음도 가벼워진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에 있어 고통과 고뇌가 친구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생관계인 그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늘 그들과 함께이고 싶지는 않으니 그들을 가끔씩만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성당이 아름다운 오래된 도시인 것 같은데 발이 너무 아파서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았다. 겨우 찾아간 알베르게에서는 사람이 다 찼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매몰찬 이야기만 들었다.
어제는 성스럽고 근사한 밤을 보냈는데 오늘 갑자기 그곳에서 동떨어진 현실세계의 단단한 벽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 떨떠름해졌다.
그럼 그렇지, 어제는 정말 특별했던 거야.
겨우 힘들게 들어간 다른 알베르게에서 침대를 잡은 뒤에는 짐을 줄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정말 필요한 것만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상한 것들도 많았다. 한참을 고심 끝에 내일 부쳐야할 짐들이 결정됐다. 비누도 반으로 자르고 많은 사람들이 버리라고 했지만 긴 머리 때문에 포기할 수 없던 트리트먼트는 가벼운 플라스틱 병으로 옮겨 담았다.
문제는 그렇게 짐을 덜어냈는데도 나의 배낭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 비해서 여전히 무거웠다는 사실이다. 얼핏 누군가 이 길 위에서 배낭의 무게는 그 사람이 지은 죄와 비례한다는 소리를 한 것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인생을 살며 지은 죄가 크기는 한가보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이 무게만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이 내가 책임지고 짊어져야 할 내 인생의 무게였으므로.
to be continued.....
******* 이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