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愛, 로路, 소설小說
02 카미노 데 산티아고

_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고

by Snoopyholic

이후 3일은 말 많고 요리를 잘 하는 이태리 청년 로베르토와 성격이 활달해서 많은 순례자들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주는 매력 만점의 키위(뉴질랜드 사람) 아가씨 로빈과 걸었다.

내가 처음으로 로빈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양말만 신고 자갈이 가득한 흙길을 걷는 중이었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으니 발에 물집과 상처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신발을 신을 수 없다고 했다.

‘고행을 위해서’ 같은 무서운 대답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더니 그녀도 따라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발바닥에 신발 깔창을 대고 양말을 신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다행이 이는 그녀의 고통을 많은 부분 덜어주었다.

그때부터 함께 걷게 된 우리는 힘들면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길 위에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행복하다고 소리치거나 서로 아는 노래를 합창하며 걸었다.

한때 재즈 보컬이 꿈이던 그녀의 노래 소리는 참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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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는 로빈과 함께 걷기 시작했던 첫째 날 머물게 된 알베르게에서 만났다.

그는 영락없이 머리를 진갈색으로 염색하고 약간 살이 찐 브레드 피트였다.

로빈과 안면이 있는 사이어서 함께 차린 만찬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지 결혼하자고 농담했더니 이미 그렇게 제안하는 여성동지가 많았는지 낄낄거리더니 나에게 줄을 잘 서서 기다려보라고 받아쳤다.

밀짚모자를 쓰고 정말 중세 시대의 순례자가 짚고 다녔을 것 같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그의 이태리 예찬은 언제 들어도 유쾌했다.

우리 셋은 마치 삼총사처럼 죽이 척척 맞아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호흡으로 산티아고로 향해 진군(?)했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응원해주고 함께 쉬기도 하고 인생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각자 다른 문화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며 달라서 흥미로운 서로의 문화에 대해 배우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또한 모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참 묘하게도 그게 꼭 내 인생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마다 다른 문화 속에 살고 있지만 모두 사랑에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해하다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아파하고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같았다.

어떠한 의미에서든 일상으로부터 조금은 떨어져서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택했다. 산티아고에 닿으면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은 채 무거운 가방과 뜨거운 태양, 어떤 때는 퍼붓는 비와 씨름하며 길을 걷다가 서로의 존재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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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완벽한 우리의 호흡을 누군가 시기했던 것인지 사흘째 알베르게를 잡고 로베르토의 특식 해물 리조토와, 만찬을 함께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푸짐한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한껏 흥에 겨워있는데 무릎에서 이상한 신호를 보내왔다.

사실 전날부터 미약한 신호는 있었지만 이렇게 강력해진 건 처음이었다.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신체와 깃털처럼 가벼운 배낭을 가지지 않은 이상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 위에서 무릎, 근육, 물집, 인대 등의 문제는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겪게 되는 문제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꽤 잘 알았다.

내가 문제를 고백하자마자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약과 파스를 들고 오거나 자신만의 특별 마사지 요법 같은 문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직접 약을 발라주고 마사지를 해주고 파스를 붙여줬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별 차도가 없으면 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다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일 아침이면 말끔하게 낫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도 간절하게 그렇게 되길 바랐다.

여태껏 물집 말고는 별다른 문제없이 잘해오지 않았는가!

로빈과 로베르토에게는 긴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매일 일정거리를 걸어야만 산티아고에 계획한 날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약 병원이라도 가게 된다면 더 이상 그들과 함께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건 정말 싫었다.

소냐와 마이크 커플 이후로 오랜만에 마음 맞는 일행을 만났는데, 어떻게든 그들과 함께 산티아고 땅을 밟고 싶었다.

침낭 속에 몸을 집어넣고 누우려는데 와인에 기분이 좋아진 로베르토가 오더니 나와 로빈을 와락 안더니 잘 자라며 뺨에 굿나잇 키스를 해줬다.

부디 내일 아침에는 멀쩡해져서 이들과 함께 길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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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하려고 침낭에서 빠져나와 첫 번째 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토록 간절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내 무릎에 정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팔이 견딜 수 없이 가려워서 봤더니 오른쪽 팔뚝이 정체불명의 붉게 부어오른 반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피부조직 아래가 오염되어 솟아오른 것 마냥 혐오스러워서 팔을 잘라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팔과 다리가 이런 반점으로 뒤덮여서 걷는 순례자를 본 일이 떠올랐다.

그럼 혹시 이건 전염병이 아닐까?

모든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어때, 세라, 무릎은 좀 괜찮아? 어머, 팔! 벼룩에게 물렸구나!”

“벼룩?”

“응,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많다보니 벼룩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내가 우선 가려움을 완화시키는 크림을 줄 테니 이걸 발라. 약국에서 팔을 보여주면 아마 약도 줄 거야.”

“고마워.”

“그리고 오늘 알베르게에 가면 무조건 옷과 침낭을 다 빨아. 슈퍼에 가면 벼룩 방지 스프레이가 있으니까 그걸 다 뿌리고. 그보다 무릎은 좀 어때? 걸을 수 있겠어?”

“모르겠어, 로빈. 한 걸음 한 걸음 딛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가방이 없어도 이 모양인데 가방까지 매면 어떨지......”

“정말 문제가 있는 모양이네. 어쩌겠어, 병원에 가봐야지. 로베르토가 스페인어를 좀 하니까 병원이 어딘지 몇 시에 여는지 알아보자.”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퉁명스러웠던 오스피딸레로에 따르면 병원은 알베르게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세 시간 후부터나 영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혹시 병원이 열 때 까지만 이라도 이곳에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일반적으로 알베르게는 아침 8시까지 비워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선은 짐을 싸서 나왔다.


“로빈, 로베르토, 이제 너희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해.”

“무슨 말이야, 세라! 병원에 들렀다가 함께 가야지.”

“아니야. 병원에 가자마자 기적적으로 나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분명 며칠은 쉬라고 할 거야. 너희들 오늘 30km 걸을 거라고 했잖아. 그럼 오후 늦게까지 걸어야 하는데 나랑 병원에 가면 너무 늦어.”

“그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많이 생각해봤어. 그리고 내린 결론이야. 얼른 가, 그동안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는지 몰라. 사실 누구보다 너희를 보내기 싫은 건 나라고.”


갑자기 우리 모두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서로에게 길고 따뜻한 포옹을 해줬다.


“세라, 넌 정말 멋진 아이야. 비록 우리가 먼저 출발하긴 하지만 무릎이 완쾌 되는대로 빨리 걸으려고 노력해봐. 그럼 우리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럴게. 너희들이 많이 그리울 거야. 무사히 산티아고까지 도착하길.”

“너도. Buen Camino."


나는 아픈 무릎과 함께 아침의 황금빛 햇살만 가득한 오래된 도시의 광장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분명 어제 로빈 일행과 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로 활기찼던 이곳이 이렇게까지 쓸쓸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병원까지라도 같이 가달라고 할 것 그랬나 싶기도 했지만 나 때문에 그들의 일정이 늦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많이 슬프긴 해도 그들을 보내야할 때인 것이다.

운이 좋아 길이 허락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과 함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아니다.

적어도 이 단계에서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따위의 경우는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to be continued.....


******* 이 글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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