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순례자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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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의 길에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매우 단순해진다.
우선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많다는 것은 무거운 배낭을 의미하고 무거운 배낭은 곧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의 근원이 커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가졌다는 사실은 분명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바에서 좀 더 근사한 와인을 마시는 데는 일조하겠지만 오직 그뿐이다.
움직이는 데 실용적이지 않은 옷들은 불필요한 짐에 속하게 되므로 누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얼마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고 반짝이는 감각으로 자신의 신체를 아름답게 돋보이게 할 수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일과도 단순하다.
대기업의 CEO이든 노동판의 막노동자이든 모두 똑같이 아침에 눈 뜨면 준비를 마치고 목표한 거리를 걷기 위해 길로 나선다.
길에서는 노란색 화살표나 조가비 표식을 따라 걸으면 된다.
그래서 아무리 방향감각이 없어도 이곳에서는 길을 잃기가 쉽지 않다.
혹시 길을 잃어도 만나는 누구나에게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말만 하면 방향을 가르쳐 줄 것이다.
배가 고파오면 그때그때 자신의 형편에 맞추어 끼니를 해결한다.
목표만큼 걸었다면 알베르게를 찾는다.
알베르게에서는 빨래를 하고 저녁을 해결하고 잠자리에 든다.
다시 눈을 뜨면 얼마간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이상 같은 하루의 반복.
따라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고민은 식당에서 제공하는 순례자를 위한 메뉴를 선택할 때 어떤 음식을 먹을지 결정하는 정도다.
물론 날씨가 너무 덥거나 심하게 비가 내리거나 몸이 아플 때는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아, 혹시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다면 과연 이 사람과 얼마나 같이 갈 수 있는지 결정해야하는 문제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정말 그게 다다.
나머지 고민들은 만약 빨래가 마르지 않았는데 어떡하지 정도의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고민에조차 순례자들은 단순해서 명쾌한 답을 날린다.
“여분이 없으면 그냥 입어. 걸으면서 체온으로 말리면 되지 뭐.”
또한, 이 길의 특성 중 하나가 목표지를 정해놓고 하는 주된 일이 걷기뿐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직장, 가족, 각종 공과금 등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생각해야 하는 순례자 이전의 일상에 비하면 거의 무한대로 늘어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순례자의 길이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자기 고찰의 방법이기에 좋든 싫든, 길든 짧든 누군가와 함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면 또 어떻게든 서로의 인생에 대해 정보를 주고받게 된다.
무슨 마법의 가루라도 뿌려져 있는지 사람들은 이 길 위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젖힌다.
평상시였다면 꺼내기조차 힘들었을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내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산티아고로 향해 걷는 동안 꽤 여러 차례 제이미와 나, 그의 어머니 헤더, 한국에서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제이미 건의 경우 반응이 매우 뜨거웠는데 역시 파혼이란 어디에서든 인생에 커다란 상처를 안기는 절차인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을 생각해 정신 차리고 세상에 널리고 깔린 좋은 남자를 만나라는 결론.
제이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모두 안타까워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죽어가는 마당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를 찾지 않는 제이미는 역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에서의 나에 대한 대답도 비슷했다.
아무리 문화적인 배경이 다르다고 해도 과거는 과거일 뿐......
부모님도 마음도 상처 입었을 것이므로 시간을 주고, 타인이 기대하는 나의 삶이 아니라 내가 진정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진로를 정할 것.
그러고 보니 헤더에게 오래도록 연락을 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참 이상하게도 막상 전화를 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도 동전이 없거나 이미 시간이 늦어버렸다거나 바쁘거나 힘들다는 핑계로 통화를 미뤘다.
죄책감이 찾아왔다.
혼자 길을 걸을 때 왜 난 죄책감으로 그 문제를 마무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혹시라도 나쁜 소식이라도 듣게 되면 어떡하나 두려워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자꾸 되뇌어보지만 다른 한편에서 만약 그렇다면 어쩔 거냐고 물어오기라도 할 때면 견딜 수 없이 괴로워졌다.
하지만 현실을 직면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다음 마을에서 공중전화를 찾게 된다면 꼭 헤더에게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다짐했다.
어쩌면 제이미도 나와 같은 심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왔을 때 마주하게 될 그녀의 모습이 자신이 기억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봐 두려운 거겠지.
우리가 사귀는 동안 그는 자주 내가 아니었다면 자기는 늘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만 믿었을 거라고, 내 덕분에 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아졌다며 고맙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내게 왜 자신이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었다.
다만 제이미가 4살 때 헤더가 그의 생부와 이혼하고 곧 양부를 만나 결혼함으로써 이후 제이미가 17살이 되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헤더와 양부 슬하에서 난 동생과 자랐는데 그 혼자만 다른 성을 썼다는 사실 정도만 안다.
그는 내게 언제나 자신의 생부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 양부에 대한 말은 병적으로 꺼리곤 했는데 이를 통해 나는 어렴풋이 어쩌면 그가 어머니의 이혼과 양부와의 결혼에 대해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니면 어머니로부터 학대라도 받고 자란 것일까?
아니다, 따뜻하고 인자한 에너지로 넘치는 헤더를 보면, 얼마나 제이미를 사랑했을지 쉽게 느낄 수 있으므로 그 경우는 열외로 친다.
양부의 경우는 우리가 사귀기 시작했을 무렵 헤더가 그와 이미 헤어진 상태라 그에 대해서는 헤더를 통해 조금씩 들을 수 있었을 뿐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
만약 내 추측이 맞는다면 양부와 새로 생긴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라는 존재를 내 덕에 찾은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접하게 된 그녀의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검진결과가 그에게는 심각한 충격이었으리라.
아무리 그래도 시기가 시기니만큼 헤더에겐 제이미가 절실히 필요하다.
내가 보낸 이메일이 부디 그에게 경종을 울려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면 좋을 텐데.
모든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제이미와 헤어져 이제는 남이라는 사실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사람의 곁으로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기에 나 또한 나에게 누군가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 설사 그것이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힘든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곁에서 내 어깨를 감싸주고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누가 보아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의사로부터 암 말기 치료불가 진단을 받은 위급한 상황인데다가 이 시기를 놓치면 그 사람을 남은 평생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단지 자신이 두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외면하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떨어진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공중전화를 찾아 헤더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메시지를 남기라는 그녀의 녹음된 목소리만 들려왔다.
잘 지내시냐고, 스페인에서 쾌유를 기원하며 열심히 걷고 있다고,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시라고, 아주 많이 보고 싶다고, 늘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죄책감은 누그러졌지만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의 그늘은 아직 그곳에 불안하게 드리워져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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