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세라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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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나흘 정도면 익숙해진다는데 나로서는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나의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계속 길을 걷는다.
왠지 입이 심심한데 뭐 먹을 게 없을까 생각하며 걷는다.
그럼 신기하게도 곧 복분자를 잔뜩 단 나무라든지 잘 익은 아몬드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나타난다.
물이 다 떨어져 가는데 어디 물 나오는 곳 없나 생각하면 5분 뒤에 급수대가 나타난다.
혼자 걷기 심심해서 누군가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어디선가 순례자가 나타나고 혼자 걷고 싶다고 생각하면 다시 혼자가 된다.
아차, 깜빡하고 식량을 챙기지 못했다.
바가 있는 마을까지는 아직 많이 걸어야 하는데 이 배고픔은 어떡하나 하는 고민이라도 드는 순간이면 근처에 앉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던 누군가가 자신에게 여분의 재료가 있으니 함께 식사하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난생 처음 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로 내 인생과 이 길 위에서의 축복을 빌어준다.
범죄와 우울한 뉴스가 난무하고 누구를 믿어야 할 지 몰라 언제나 불안에 떨어야 했던 내가 원래 속했던 세상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 길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물론 그런 행복한 순간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자주 찾아오는 행복에 기고만장해질 즈음이면 무거운 가방과 발에 끊임없이 생겨나는 물집, 벼룩, 마음에 드는 동반자와의 헤어짐, 악천후 같은 문제도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마치 인생은 행복으로만 이루어져있지 않음을 각인시키기 위한 일종의 경보장치 같았다.
특히 지금 내게 닥친 악천후의 경우 몸의 어딘가가 마비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고 배낭은 비에 젖어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까지도 사실 현실세계에서는 자주 일어날 확률이 없는 고통이 아니던가!
이건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럼 이것은 ‘세라 쇼’이겠군. 여태껏 내가 지나온 광활한 포도밭도, 오래된 돌로 지어진 건물이 남아있는 도시도, 많았던 성당도, 보드랍고 파란 잔디로 가득했던 공원도, 징그럽게 종일 내리던 비도,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던 진흙길도, 아니 중세부터 사람들이 걸었다는 이 길 자체가 사실은 세트고 나와 함께 걷는 중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세라 쇼’를 위해 연기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럼 내가 여태껏 겪었던 이상한 현상들이 한꺼번에 설명된다.
그림자가 사라진다든지, 그림자들이 모이는 바에 간다든지, 집시 여자가 이상한 예언을 한 것이라든지, 알베르토와의 로맨틱한 시간들까지 다. 그러니까 애초에 내가 한국을 떠나 스페인으로 온 순간부터 ‘세라 쇼’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
한 여자가 자신의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질 거라 믿으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기다린다. 그러나 둘이 만난 지 삼 년째 되는 날 날아든, 직장에서 새롭게 만난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약혼자로부터의 이별통보!
이후 그녀는 매일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하며 무엇인지 모르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인생에서 완벽한 남자를 놓쳤다고 괴로움에 젖어 알코올을 벗 삼아 매일을 폐인처럼 보낸다.
이는 분명 옳지 않기에 그녀는 그라는 존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강렬했던 사랑 탓에 자꾸만 소금을 뿌려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만 되풀이한다.
다행이 그녀 역시 인간인지라 이제 그런 자학상태를 멈추어야 한다고 깨닫는다.
자신을 버린 남자와의 관계에서 생긴 업보를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우연히 중세로부터 이어져 온 한때 잊힌 줄 알았던 스페인의 신비한 길을 발견한다.
예전에 이곳은 종교적인 의미로 순례자의 길이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자아에 대해 뒤돌아보고 성찰하는 인생의 순례길이 되어, 순례를 무사히 마친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그들의 인생에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된 곳이다.
그녀는 그곳이 자신의 고뇌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는 원인모를 확신에 사로잡혀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구매한다.
자, 과연 그녀는 정말 바람대로 업보를 청산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신 분은 지금 바로 ‘세라 쇼’에서 확인하십시오!
그럴싸한 한편의 광고 같지 않은가? 나라도 이런 쇼가 있다면 꼭 보고 싶을 것이다.
주인공 여자를 고난에 빠뜨리기 위해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았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침엽수림을 통과하며 상쾌하게 걸을 수 있었을 길이건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 덕분에 침엽수림을 양쪽으로 가르는 석회질의 모랫길을 걸어야만 했다.
윗도리는 그나마 방수 바람막이를 입었지만 우산도 판초도 없었기에 모자, 바지, 신발, 양말, 속옷 모두 축축해져 불쾌했다. 손가락은 목욕탕에 오래 있다 나온 것 마냥 퉁퉁 불고 쪼글쪼글해졌다.
보나마나 신발 속의 발가락도 그 모양이겠지.
팔에 점점 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발의 고통은 점점 심각해졌지만 야속하게도 기나긴 아이보리 색의 모랫길은 끝은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함께 걷는 누군가가 있어서 위안이 됐다.
악천후라 그런지 이 조건 속에서 세 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은데 우리 일행 이외의 사람은 단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어딘가에 들어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중일 거라 생각하니 서러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옛날 사람들이 왜 자연을 신격화까지 해가며 숭배하게 됐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자연에 대한 지식의 축적이 거의 없던 원시시대에는 자연이 부리는 날씨의 변덕을 예측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그놈의 날씨 때문에 동물을 찾을 수 없다거나 힘겹게 시작한 농사가 망해버리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이렇다보니 원시인들은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정하고 최대한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함으로서 그들에게 풍족한 수확물을 가져다주십사 하고 빌었던 것이지.
이후 차츰 과학이 발달함으로서 날씨는 신에서 극복의 대상으로 전락했지만, 각종 과학이 동원된 첨단 장비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도 첨단과학을 배경으로 태어난 장비가 없다면 자연이 내리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했던 옛날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거지.
춥고 축축하고 힘이 들어서인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슬슬 ‘세라 쇼’ 따위는 관두고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마음 약한 생각들이 슬슬 고개를 디미는데, 마침내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알베르게의 문을 열자마자 며칠 째 계속 마주치는 독일인 부부가 물에 빠진 생쥐마냥 떨고 있는 나를 꼭 안아줬다.
무릎 때문에 머물러야 했던 알베르게에서 내게 따뜻한 수프를 주었던 슬로베니아 커플도 서둘러 따뜻한 차를 마시면 좀 나아질 거라며 가지고 왔다.
겨우 계단을 올라가 침대에 짐을 풀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몸에 물기를 닦아내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조금 제정신이 돌아왔다.
거기에 비었던 위장까지 채우고 나니 이제는 살 것 같았다.
식사 후에는 종일 힘든 길을 함께 걸은 일행과 스페인 북쪽 지방의 독주라는 로하를 마셨다.
자꾸만 마시라며 잔을 채워주는 바텐더의 친절 때문에 딱 한 잔만 마시려던 계획은 어긋나버렸지만, 처음에는 싸하게 톡 쏘는 맛으로 시작해서 뜨겁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위장을 덥히고 혀의 돌기에는 달콤함을 남기는 로하의 기운이 ‘세라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꼭 산티아고까지 가서 지금 그녀가 짊어진 지난 사랑의 업보를 청산하고 돌아간다는 ‘세라 쇼’의 원래 계획은 한동안 지켜지게 됐다.
to be continued.....
******* 이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