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愛, 로路, 소설小說 02 카미노 데 산티아고

_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과 인생 경영과의 역학관계

by Snoopy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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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공기가 진한 남색을 띌 때 나선 길에는 어제 비의 여운이라도 되는 듯 안개가 깔렸다.

뿌려야 할 물을 이제 다 쏟아 남은 물이 없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다행스럽게도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어제 하도 악천후에 당해서 그런지 평소라면 상쾌하다고 느꼈을 아침의 시원함이 오늘은 서늘함으로 다가왔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세상 만물이 분홍색 구름 아래서 자신의 색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에는 몸통 깊은 곳에서부터 열기가 올라왔다.

부담스러워진 겉옷을 벗으려고 잠시 멈추어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아까는 어두워서이기도 했지만 앞만 보고 가느라 살펴볼 기회가 없던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왼편으로는 황금빛으로 변한 들판과 커다란 나무라는 그물에 물고기처럼 걸린 태양이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지평선 위에 마을의 낮은 스카이라인이 걸려 있었다.

가장 높은 것이라곤 소박한 성당의 종루.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쉬운 순간이라 카메라를 꺼내 한 장의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배낭을 멨다.



한동안 수월한 평지여서 얼씨구나 했는데 길이 점점 오르막으로 변했다.

변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어제의 비덕분에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서 튀어 오른 진흙이 달라붙어 바지며 신발이 금세 더러워졌다.

꼭 팜플로나에서 출발했던 첫날 같았다.

그나마 그 때보다 낫긴 했다.

그땐 달라붙은 진흙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무거워진 발을 바닥에서 떼어 한 걸음 옮기는 것 자체가 힘들었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첫날 만났던 소냐와 마이크는 지금쯤 어디를 걷고 있을까?

그들과 함께했던 대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들은 내게 어떻게 서로를 찾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확고한 사랑이란 진정한 자아의 모습으로 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찾아오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이라고 했지.

그들과 갑작스럽게 헤어진 뒤로는 로빈과 로베르토가 있었고 이제는 롭과 딕이라는 영국인 청년 둘과 고락을 함께하며 걷는다.

하지만 나보다는 나이 어린 사내 녀석 둘이라 그런지 허심탄회한 대화는 나눠보지 못했다.

그래서 유난히 소냐 커플과 로빈 일행이 그리웠다.

그리움에 젖어드는 것도 잠시.

견딜 만하게 기울어지던 길이 확 가팔아져서 길을 오르는데 숨이 턱턱 막혀 죽을 지경이 됐다.

솔직히 배낭을 벗어 던져버리고 오를 수만 있다면 이 정도의 오르막쯤은 가뿐하게 올라줄 수 있었을 것이다.

배낭의 무게가 인생에서 지은 죄의 무게와 비례한다는 말이 확 와 닿았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슨 큰 죄를 지어서 배낭이 무거운 걸까?

평소에 남들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느니 내가 상처받고 말겠다는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렇다면 혹시 죄를 지어 놓고도 뭘 잘못 했는지 모르는 무지함의 죄인가?

좀처럼 의문이 풀리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듬성듬성 하늘색이 보일락 말락 할 회색하늘.

평소에는 답답하다고 생각했을 터이나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고마웠다.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빈약한 나무들만 듬성듬성해서 그늘도 없었을 길을 뙤약볕 아래서 걸어야 했다면 심각한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을 게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골고다 언덕을 무거운 십자가를 진 채 올라야하는 예수를 떠올렸겠지.

적어도 내게는 가시면류관도, 채찍질을 가하는 로마병사도, 힘겹게 끌고 올라간 십자가에 매달려 산채로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 끔찍하게 처형당할 일도 없음을 감사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 참 잔인하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어떻게 사람을 산채로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아 놓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하긴 그렇게 먼 옛날도 아닌 단두대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피가 영험하다는 미신 때문에 단두대 앞에 피를 받기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구경꾼들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나도 인간이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오싹해진다.

힘겹게 오른 오르막의 끝은 안개가 자욱한 평지였다.




전방에 큼지막하게 세워진 십자가가 보였다.

다행이 사람을 매달기엔 빈약해서 처형의 용도로 그곳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 단순하게 나처럼 힘겨운 오르막길을 오르며 예수를 떠올린 사람이 많아 누군가 세워놓은 것이 아닐까.

독실하게 종교를 믿는 사람이었다면 그 십자가에서 예수가 우리를 위해 고통 받으며 흘린 피를 기억하라는 의미를 읽어냈겠지.

주변에는 성경이나 찬송가에 자주 등장하는 ‘어린 양’들도 방목 중인지 어슬렁거렸다.

신비하게 안개에 휩싸인 십자가와 풀을 뜯는 양들이라, 어느 교회 현관에 걸려 있을 법한 한 장의 근사한 풍경화 같았다.

일단 꼭대기에 오르자, 쭉 내리막이었다.

보일듯 말듯했던 파란 하늘이 이제는 세력을 넓히고 구름 속에 숨어있던 뜨거운 태양도 머리 위로 떠올랐다. 오랜만에 보는 눈부신 파란 하늘이 반갑기도 하고 오르막길보다는 내리막길에 조금 더 자신이 있는 나는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었다.

그런데 내리막길의 끝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회색빛의 공장지대였다.

산티아고를 향하는 길 위에 오른 뒤로 처음으로 만나는 공장지대라 그런지 넓은 공간 이곳저곳에 들어서서 높은 굴뚝 위로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이 솔직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세라, 책에서 보니까 앞으로 10km정도는 이런 지대가 계속될 거래.”

“정말? 난 이런 길을 통과하는 건 별론데.”

“그러게. 롭이 그러는데 이 근처에 버스정거장이 있대. 거기서 버스를 타고 가자.”

“그래? 그래도 될까? 걸어서 가야 하는 순례길이잖아.”

“누가 그런 원칙을 정해뒀대? 성 야곱이 복음을 전파하던 시절에는 자동차나 버스 같은 게 없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을 뿐이라고. 기억 안 나? 우리 비 오던 날에 쉬어갔던 바에서 그 덩치 큰 바 주인이 하던 말. ‘성모마리아를 걸고 이야기하는데 성 야고보도 저렴하고 편리한 버스 시스템이 있는 줄 알았다면 그렇게 무식하게 걸어서 이 길을 가지 않았을 거라고!’ 그 때 너도 크게 웃어놓고선.”

“기억나. 그 아저씨가 아마 그 시절에 우리가 가진 교통수단이 있었다면 야곱이 훨씬 많은 사람을 복음의 길로 인도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잖아. 그렇긴 해도, 아무리 꺼림칙한 길이라도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라면 무조건 감수하고 통과해봐야 하는 것 아냐?”

“세라 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롭 말도 맞아. 피할 수 있는데 굳이 맞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물론 이런 길을 통과해보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만 사실 이런 길은 영국 공장지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길이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나 내일 새벽에 버스 타고 공항에 가야하잖아. 그냥 빨리 도착해서 마지막 날은 여유롭게 지내고 싶어.”

“어떡할래? 나와 딕은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어. 세라 너도 꼭 버스를 타라는 건 아니야. 마음에 걸린다면 걸어서 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손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단지 버스를 타느냐 마느냐의 문제 때문에 이렇게 고민이 된 적은 처음이었다.


“버스 탈래.”


고민 끝에 올라탄 버스에는 우리 말고도 다른 순례자들이 꽤 보였다.

바르셀로나에서 팜플로나로 가는 버스 이후 탈것을 타본 것이 얼마만인가!

탈 것인가 말 것인가 걱정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감격만 남았다.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 무엇보다 걸었으면 2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리를 이 버스가 15분 만에 주파해서 나를 목적지에 내려줄 것이라는 사실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면 어느새 내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걷는 걸음의 속도로 맞춰져 있던 것이다.

그렇게 느리게만 걸어 다니다가 배낭은 옆에 모셔두고 편하게 앉아 빠른 속도로 달리는 버스 맛을 보니 그 맛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정신없이 돌아가는 빠름의 일상이 싫어서 느림을 택했다.

처음에는 바쁘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인식이 만연한 세상에 이렇게 멋지게 느려져도 괜찮은 길이 있을까 감동했지만 슬슬 느림이 지겨워지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버스를 타니 오랜만에 다시 만난 빠름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쭉 산티아고까지 갈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빠르게만 지나치기엔 아쉬운 수많은 풍경들이 나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다시 기꺼이 느림의 길로 돌아갈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철저히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

힘든 오르막을 오르면 쉬운 내리막이 나오고,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다가도 문득 둘러보면 피하고 싶은 쓸쓸한 풍경 속을 걷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경도 악천후 속이라면 지옥 같이 느껴지기도 하며 쓸쓸한 풍경도 함께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풍경과 사람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이들을 지나갈 것인가에 대해 선택한다.

내가 매일 조금씩 산티아고로 다가가는 길 위에서 무심하게 해나가는 과정이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탄생과 죽음이 있듯 이 길에는 출발과 도착이 있다.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경영할지 선택해야 한다.

이 길을 걷는 사람도 어떻게 얼마만큼의 속도로 걸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인생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 길 위에서 개인은 육체와 정신의 한계와 싸우며 산티아고까지 도달하기 위해 걷는다.

배낭에는 꼭 필요한 것만 넣고 불필요한 무게를 주는 물건은 빼는 것이 좋다.

과도한 가방의 무게는 신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고 숙지한 채 살아야 한다.

중심이 잡혀있지 않으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쉽다.

이 길의 좋은 점은 걸으면서 배낭에 무엇이 꼭 필요하고 필요 없는지를 깨닫고 어떤 속도로 이 길을 걷는 것이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가를 알게 함으로서 자기 인생의 중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해준다는 데 있다.

흐음, 이것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로 향하는 오래된 순례자의 길로 몰려드는 큰 이유 중에 하나로군!


to be continued.....


******* 이 글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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