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가헌 사진전 <그들이 있던 시간>
'함께 흐르면서 노래하자'는 뜻을 지닌 '류가헌'은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사진 갤러리입니다. 경복궁역에서 걷거나 마을버스를 타면 금방이에요. 저는 2018년 혼혈인에 관한 이재갑 사진전 <빌린 박씨>를 관람하면서 류가헌을 알게 되었는데요, 차분한 공간이 마음에 들어 이후로 뉴스레터를 받아 보고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이메일을 연 어느 날, 어린이들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보았어요. 기분이 환해지는 걸 느끼며 이번 전시에 다녀왔답니다.
<그들이 있던 시간>은 동시대에 사진가로 활동했지만 서로의 존재는 몰랐던 두 작가를 70여 년 만에 나란히 소환한 흑백 사진전입니다. 일본의 이노우에 코지(1919-1993), 한국의 한영수(1933-1999)가 그 주인공이에요. 이노우에 코지의 아들인 이노우에 하지메 씨는 대구사진비엔날레에서 한영수 사진을 접하고, 마치 아버지의 사진을 본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고 해요. 이후 한영수의 딸 한선정 씨에게 아버지의 사진집을 선물로 보내면서 사진가 2세들은 교류하게 되었고요.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어 관계를 이어 오다가 작고한 두 사진가를 조명하는 2인전이라니, 기획부터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만날 사람들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나란히 놓인 한일 작가의 사진은 참 신기할 정도로 유사해요. 소박한 거리 속 평범한 사람들이 간직한 이야기를 렌즈에 담아낼 때, 두 작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요? 이노우에 코지와 한영수 작가의 감각적인 연출 덕분에 당시의 분위기, 날씨,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 시청각을 아우르는 상상을 하며 즐겁게 전시를 즐겼습니다. 흑백 사진인 것을 잊을 만큼 인물의 표정과 동작에 생동감이 넘쳐요.
서로 공간적 배경은 다르지만 ‘어두운 시절’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미소들’을 담아냈다는 측면에서, 또한 조형미와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사진적 접근방식에서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닮아있다. - 보도의 글 중에서
특히 좋았던 사진 몇 점을 소개해요. 이노우에 코지의 <후쿠오카>는 아이에게 집중시키는 말끔한 구도가 멋졌어요. 어떤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면 주변이 아무리 시끄럽더라도 소음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이 사진을 보면서 그런 순간이 떠올랐어요. 떠들썩한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아이는 무얼 보고 있는 걸까요?
보자마자 "으아 귀여워라!" 하고 감탄한 작품입니다. (조용한 전시장에서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말해 버렸어요.) 아이의 들뜬 표정과 통통한 볼을 보세요. 사진 제목도 어쩜 <초등학교 신입생>이에요. 이보다 더 귀여운 제목이 있을까요.
다음은 한영수 작가의 사진입니다. 1950년대 서울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거리를 누볐는지 알 수 있어 흥미로웠어요. 한복과 양복이 섞여 있고 전차가 돌아다니는 서울 거리가 새삼스럽습니다.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은 패션에 역시 유행은 돌고 도나 봐, 하는 생각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담은 작업들이 빛난답니다. 제가 소개한 것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으니 흑백 사진 속 넘실대는 이야기를 찾아 류가헌에 가 보시길 권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 서울과 후쿠오카로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틈틈이 뉴스레터 40호 주제는 우리가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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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가헌 전시 중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던 한영수 작가님의 <서울>.
레터 발행 후 런던에서 내가 찍었던 사진과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별것 아니지만 왠지 반가운 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