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쉴 새 없이 숨을 내쉬고 들이키며 살아간다.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수만 번의 호흡. 들이키는 숨과 함께 네 개의 계절이 나에게로 들어온다. 손끝으로 발끝으로 온몸 곳곳을 돌아다니는 숨을 따라 여름의 찌는 듯한 습도가, 겨울의 메마른 건조함이, 봄과 가을의 기분 좋은 청량함이 내 것이 된다. 어디 계절뿐이랴 온갖 날씨들도 이름 모를 꽃송이까지 모든 게 나의 것이 된다. 나의 숨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해서 다시 잠자리에 드는 늦은 밤이 되기까지 하루를 살아가는 것. 별일 없는 그 무난한 하루가 참 좋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에 두 손 들어 아니, 두 발까지 모두 들어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난 살아있지 않은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무섭다. 불안하다. 내가 숨을 쉬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에 대해 또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숨을 쉬지 않을까 겁이 난다. 원래 내 안에 존재하던 삶에 대한 의지가 집착이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걸까. 두려움을 느끼고 불안에 떠는 내 모습에 또다시 불안함을 느낀다. 불안에 불안을 겹쳐서 높다란 성이 되고 있다. 하루를 마치고 잠에 들고는 내일 깨지 못하면 어떡하지,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데 이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텐데, 난 엄마 아빠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사라지면 난 누구에게 위로받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남편이 없는 삶은 내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삶인가. 불안은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 구덩이가 된다. 호기심에 어두운 우물 구멍을 바라보다 발끝이 들려버리고 균형을 잃고 결국 그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된다. 난 그렇게 계속 추락 중이다. 깊고 깊은 구덩이 속으로.
언제부터 내 곁에 죽음이란 존재가 들러붙었는지 모르겠다. 뉴스 속 끊이지 않는 사고 소식. 평소와 다름없이 길을 걷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묻지 마 범죄를 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픈 사람들, 아픈 아이들. 하나하나 나를 집어넣어 본다. 내가 아프고, 내가 사고가 나고, 내 사람들이 남겨진 상상 속의 세계에 나를 던져버린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갈래갈래 찢어진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수록 더 깊은 우물 속이다.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삶은 결국 죽음으로 향한다. 불변의 법칙임에 틀림없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다가올 죽음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다다를 끝만 바라보며 하루를 살아가진 않는다. 죽음으로 가는 발걸음일 테지만 그 한 발자국마다 각자의 별빛을 수놓기 위해 매일을 살아간다. 나 역시 그럴 것이고. 혹시 난 '죽음'이란 존재와 친해지기 위한 단계 아닐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단둘이 만나는 자리에선 너무나도 어색한 사이였던 것이다. 이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선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사라지게 해야겠지. 미운 존재이지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만 하는 그런 친구. 불안을 가져다주는 죽음이 아니라 건강한 일상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걸 온몸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떨어지고 있는 우물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너무나도 좋다. 행복을 이루는 ㅎ조각들을 모으는 나의 하루가 너무나도 좋다. 계절이 변하는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것도,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도, 나의 공간에서 나의 취향을 알아가는 것도. 좋아하는 것이 계속 계속 늘어난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난 오래도록 숨을 쉬고 들이마시고 싶다. 나는 살아가고 싶다 지금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