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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보 Dec 07. 2019

인연

글쓰기 모임의 멤버 한 분이 쓰신 '내가 다쳤던 이야기'를 읽다가 나에게도 있었던 골절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 출근 전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욕실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넘어지면서 어깨를 바닥에 부딪쳐 쇄골뼈가 골절되었다. 깁스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어서 8자 붕대로 어깨를 단단히 고정하고 생활해야 했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한두 달 지내다 보면 뼈가 붙을 거라 했다.


며칠 뒤 대망의 소개팅을 앞두고 있었는데 상심이 컸다. 친구가 주선해주기로 한 소개팅 상대는 친구 회사의 회식 자리에 놀러 갔다가 이미 눈 인사를 한 번 나눈 사람이었다. 호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어서 이번 소개팅은 성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우스꽝스럽게 붕대를 한 채로 만날 수는 없었으므로 회복될 때까지 소개팅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때 우리 사무실에는 갓 입사한 남자 직원이 하나 있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투리가 심했고, 유행 지난 패션은 여직원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마침 그의 대학 선배가 우리 팀에 있었던 까닭에 그 직원은 우리 팀에 거의 매일 찾아왔다.


방탄조끼 같은 8자 붕대를 걸치고도 스스럼없이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또 오셨냐, 뼈는 잘 붙고 있냐, 서로 안부를 물었다. 경상도 남자는 무뚝뚝하다고 하던데 이 사람은 여자들과도 곧잘 어울리는 수다쟁이였다. 순박한 성격에 아재 개그도 당당하게 던지는 기개가 있었다.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농구장도 가고 하면서, 사무실에서 시시덕거리던 관계는 어느새 사내 연애로 발전했다.


처음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동기들과 선배들과 어울려 허구한 날 저 신입은 억양도 패션도 남다르다고 놀려댔었는데, 느닷없이 그 사람과 사귀기로 했다고 선언할 수가 없었다. 비밀 유지에 만전을 기했지만, 엉뚱하게도 사내 메신저 개발자가 우리 둘 사이에 오간 데이터량이 유독 많은 것을 보고 눈치를 챘고 회사엔 자연스럽게 소식이 알려졌다.


아침마다 쇄골의 안부를 묻던 수다쟁이 청년과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주중에는 생활력 강한 남편과 아내로 살고, 주말이면 일주일 동안 겪었던 자잘한 일들까지 털어놓고 대화하는 술친구가 된다. 오래되어 기억도 가물가물한 닳고 닳은 과거 에피소드도 자주 등장한다. 이제는 우정으로 산다고 농담을 할 만큼 알고 지내온 시간이 긴 우리는 여전히 심심하면 서로의 흑역사를 하나씩 들춰내며 즐거워하는 가장 평범한 부부로 살고 있다.


엄마가 도둑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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