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무게

by 서효봉

오늘 아침은 유난히 피곤해 헤롱헤롱 댔다. 일어나긴 했지만 멍한 상태로 잠시 앉아 있었다. 주변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이런저런 뉴스를 살핀다. 별로 할 것도 없는데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다. 스마트폰 성능 시험하려고 새벽에 일어난 사람처럼 열심히 화면을 터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뭐. 인생 별거 있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게 행복이지. 뭣 하러 이렇게 일찍 일어나 생고생이냐? 보통은 이쯤 생각하고 나면 그래도 그런 게 아니지 하고 다른 생각도 같이 드는데 오늘은 그렇지 아니했다. 그냥 포기해버렸다. 될 대로 되라며 쓰러졌다. 분명 어제 저녁만 해도 새로운 일을 추진해보겠다며 의욕에 차 있었는데 이거 뭐 작심삼일은커녕 자고 일어났더니 바로 포기다. 어렵게 마음먹고 쉽게 포기한다.


몇 시간 후 부스스하게 일어나 오늘 아침 일을 생각해보았다. 후회된다기보다는 묘했다. 생각 한 번으로 이렇게 쉽게 현실이 달라지다니. 당연한 결과 같지만 생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게 곧 생활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물론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놔 둘 필요도 있다. 때로는 그게 더 필요하니까. 하지만 생각을 가볍게 여기고 어찌할 줄 몰라 되는대로 산다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수행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을 엄격한 규율에 따라 유지하는 이유도 생각의 무게를 잘 알기 때문이리라. 생각을 가볍게 여기고 본능적인 이끌림의 노예가 되면 생각의 합리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합리화로 인해 오히려 생각은 한계에 부딪힌다. 합리화에서 벗어나야 생각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렇기에 엄격한 규율로 생활을 붙잡아 두고 수행에 적합한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진정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기 위해.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은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는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195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 한 척이 화물을 양륙하기 위하여 스코틀랜드의 한 항구에 닻을 내렸다. 포르투갈 산 마디라 포도주를 운반하는 배였다. 한 선원이 모든 짐이 다 부려졌는지를 확인하려고 어떤 냉동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가 안에 있는 것을 모르는 다른 선원이 밖에서 냉동실 문을 닫아 버렸다. 안에 갇힌 선원은 있는 힘을 다해서 벽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배는 포르투갈을 향해 다시 떠났다. 냉동실 안에 식량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선원은 자기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냉기가 코와 손가락과 발가락을 꽁꽁 얼리고 온몸을 마비시키는 과정을 벽에 적었다. 배가 리스본에 닻을 내렸을 때, 냉동 컨테이너의 문을 연 선장은 죽어 있는 선원을 발견했다. 선장은 벽에 꼼꼼하게 새겨놓은 고통의 일기를 읽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선장은 컨테이너 안의 온도를 재보았다. 온도계는 섭씨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은 화물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에서 돌아오는 항해 동안 냉동 장치가 내내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그 선원은 단지 자기가 춥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상상 때문에 죽은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생각은 훨씬 더 무겁다.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는 때때로 인생의 재질을 결정하고 우리 삶의 방향을 지정한다. 늘 살아오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일 것이다. 우린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생각과 현실의 차이를 확인하며 산다. 잠이 들어도 그 생각은 멈추지 않고 가끔은 생각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꿈을 꾼다. 정확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우리 생각의 흐름이 현실의 결을 정한다.



생각을 생각한다. 생각은 자유다. 생각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상황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생각이고 생각 자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생각이다. 스스로를 그와 같이 알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는 건 인생의 함정이다. 생각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삶의 전원 버튼을 누르면 생각이라는 OS가 동작한다. 생각이 우리를 이끌고 별의별 일을 다 하며 산다.


생각의 무게를 잊지 말자.
생각한다. 고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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