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떠난 대만/상해 배낭여행 이야기 1
여기는 대만 타이베이 숙소.
거의 밤 10시가 다 되어 숙소에 들어왔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첫날은 늘 피곤하다.
게다가 상해를 경유해서 대만까지 왔으니 더 피곤할 수밖에.
그렇지만 할 건 하고 쉬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일지를 나눠주고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적게 했다.
사실 오늘 있었던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한국에서 대만까지 오는데 하루가 걸렸으니 오늘은 열심히 이동한 게 전부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아이들도 나도 오늘 하루의 여정을 돌아보며
별일 아닌 것 같은 사소한 것까지 글로 남기고 있다. 지금 이렇게.
오늘 아침 공항에 모인 아이들. 역시나 어색한 얼굴로 두리번거린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나이대가 다양하다.
하지만 이번 배낭여행엔 남자 다섯, 여자 다섯. 성비는 딱 좋다.
어색함에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아이들을 모아 체크인 카운터로 보내고
나는 부모님들께 간단히 안내 사항을 전한 뒤 잘 다녀오겠다며 인사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짐까지 보낸 다음 공항 2층에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잠시 가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잠시는 아니었다. 거의 1시간 정도 했으니.
서로 어색한 얼굴로 공항 의자에 앉아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은 조용했다.
다만 같은 반이라 함께 오게 된 오리와 비둘기만 잠시 속닥거리곤 했다.
몇 마디 농담을 던지곤 배낭여행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열심히 설명했는데
이런! 애들이 너무 열심히 듣는다. 얘네들이 왜 이러나 싶을 정도다.
물론 막바지엔 초등학생들이 잠시 끼 좀 부려볼까 했지만
앞으로 불러서 내 설명을 몸으로 재현하는 도우미 역할을 맡겼더니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공항에서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소지품 검사와 출국 심사를 마치고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유지인 상해까지는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지만 점심으로 기내식이 나왔다.
아이들도 나도 배가 고파서 그런지 향이 강한 중국식 소고기 덮밥인데도 맛있게 잘 먹었다.
내 옆 자리에 앉았던 다람쥐와 원숭이는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많이 친해져 있었다.
농담 따 먹기도 하고 맛 없는 걸 서로의 입에 넣어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역시 아이들은 어른보다 빨리 친해진다.
어른이라면 통성명도 하고 이런 거 저런 거 물어보면서 한참 걸릴 듯 한데
아이들은 이야기 몇 마디만 나누면 바로 친구가 된다.
분위기를 보니 대체로 남자 아이들이 금방 친해지는 것 같고
여자 아이들은 아직 탐색전인 듯하다.
그렇게 상해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환승 게이트를 거쳐 다음 비행기를 타기 위한 게이트로 이동했다.
다음 비행기 출발까지 시간이 좀 남아 아이들에게 면세점 구경할 시간을 조금 줬다.
면세점 구경이라는 말에 바람처럼 사라진 아이들.
홀로 남겨진 나는 의자에 앉아 비행기 일정과 숙소 예약 상황을 점검했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하나 둘씩 게이트 앞으로 왔다.
이제 여행 초반이니 면세품을 산다고 해도 여행 내내 들고 다녀야 했다.
결국 아이들은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그새 좀 더 친해져 있었다.
그렇게 모인 아이들과 농담 따먹기를 잠시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한국 아저씨가 게이트 입구로 달려와 잠긴 문을 두드려댔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왜 저러나 싶었는데
좀 더 지켜보니 바로 전에 출발한 앞 비행기를 놓친 모양이다.
그 아저씨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갑자기
공항 직원들이 사용하는 마이크를 집어 들고 영어로
"This is Emergency~ This is Emergency~"를 외쳤다.
공항 전체에 그 아저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비행기를 못 탔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의 어설픈 영어가 메아리쳤다.
곧 공항 직원들이 달려왔고 그 한국 아저씨는 잡혀갔다.
나와 함께 그 상황을 목격한 아이들은 다들 창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아저씨 입장에서는 응급 상황이었겠지만
그걸 지켜본 중국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들도 나도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다소 황당한 사건을 지켜보고 대만 타이베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이번엔 자리가 다 떨어져서 같이 앉을 수 없었다.
잠시 뒤에 한 바퀴 돌아보니 아이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나고 기내식이 나왔는데
이번엔 닭고기와 우동면을 기름에 볶은 음식이 등장했다.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남자 아이들은 식신처럼 여전히 잘 먹었다.
여자 아이들은 이건 좀 아니다 싶었는지 빵과 과일만 먹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리는 비행기에서
한국 대학생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렇게 대만 타이베이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동방항공 비행기는 자주 지연되는 편인데
이번에도 지연되어 도착이 1시간이나 늦어졌다.
어쨌거나 아이들과 함께 굳은 몸을 기지개 펴면서 풀고
대만 입국 심사를 받으러 갔다.
예상했던 대로 출입국 카드를 작성해야 하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출입국 카드를 작성하는 곳에 모여 적기 시작했다.
역시 다들 이름과 직업, 여권 번호까지는 잘 적는다.
그런데 집 주소를 적을 때쯤 되자 아이들 입에서 '오 마이 갓~' 이 절로 나왔다.
"집 주소를 영어로 적어야 돼요?"
영어 작문시간 같은 시간이 지나고 다 적었는지 확인하던 중 한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우리 집 주소를 몰라요~~"
집 주소를 모르다니. 그래 그럴 수 있는 일이야를 되뇌며 그 아이를 상대로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오랜 심문 끝에 마침내 그 아이가 사는 도시와 동네 이름 정도를 알 수 있었고,
온갖 묘사와 같은 도시에 산다는 다른 아이의 증언을 토대로 얼추 비슷한 동네의 주소를 써 넣었다.
시간이 지연되어 속이 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예능 프로 하듯이 스무고개를 내며 대만에 입국했다.
- 다음 편에 계속 -
* 이 이야기는 2015년 1월에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대만/상해 배낭여행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실명을 쓸 수 없어 동물별명으로 대신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배낭여행에 참여한 남자 아이는 호랑이, 참새, 기린, 원숭이, 다람쥐로 여자아이는 오리, 비둘기, 두루미, 사슴, 거북이로 표기하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