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맑아졌다. 그 알약을 먹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 나는 늘 머릿속이 복잡하고, 불안하고, 우울했다.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장이라도 죽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선생님을 만나고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 희망이 생겼다. 그 희망은 나도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고, 나아질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이 개발한 알약의 첫 임상 실험 대상이었다. 알약을 먹는 날은 하루가 행복했다. 꽉 막힌 듯한 머리가 맑아지고 좋은 생각들이 손에 손을 잡고 찾아왔다. 내 앞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웃음 지어졌고, 멋진 상상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구원받았다. 선생님은 나를 어둠 속에서 건져내 주셨다. 항상 다정한 목소리로 내 마음을 알아봐 주시고 보듬어 주셨다. 나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뭐든지 하겠노라 결심했다. 어차피 죽을 작정이었는데, 이렇게 살게 되었으니 뭘 못하랴!
어느 날 선생님은 상담실로 나를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부탁이 있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었기에 나는 무엇이라도 들어드릴 수 있다고 했다.
“선재씨, 부탁 하나만 할게요.”
“네, 어떤 부탁을?”
“여기 이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입니다.”
“아, 네. 모두 14명이네요.”
“이 사람들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알아봐 주시면 좋겠어요.”
“네?”
“어떤 일을 하고, 어디 사는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고, 성격은 어떤지 등등 아무튼 죄다 알아봐 주세요.”
“이거, 혹시 불법 아닐까요?”
“글쎄요.”
글쎄요. 라는 말에 어떤 힘이 느껴졌다면 기분 탓이었을까? 나는 거부할 수 없음을 느꼈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약을 계속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미 이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14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정보를 알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6개월 정도 걸려 그 일을 완수했고, 드디어 보고하는 날, 선생님은 좀 이상했다.
“그래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선생님이 신경 써 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나가 볼까요?”
“다음 단계요?”
“네, 이제부터 그 14명은 소설가가 될 겁니다.”
“소설가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소설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니, 왜 굳이”
“이유는 묻지 마세요. 선재씨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아마 꼭 해야 할 겁니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강요라고는 하지 않던 선생님이다. 그날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다른 사람 같았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버리겠다는 듯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날부터 영문도 모른 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음 단계’를 실행해 나갔다. 직업, 나이, 성별, 성격 모든 게 다른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소설가로 만든다는 건지, 당최 이해되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지시대로 하나씩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그들 모두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더 신기한 것은 선생님이 갑자기 유명한 소설가가 된 것이다. 선생님은 이미 10년 전부터 소설가로 활동했지만 이렇다 할 작품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 병원을 관두시고부터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매년 문학상을 받으며 문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 선생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셨다. 14명의 소설가 지망생들은 알게 모르게 선생님의 지원을 받으며 소설가가 되었다. 지난 8년은 그렇게 순식간에 흘렀다. 선생님은 갑자기 소설가가 되셨고, 환자였던 자들을 소설가로 키워내셨다. 그런데 왜? 항상 왜? 가 빠졌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