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위이잉.’
책장이 회전하는 소리가 들리고 선재가 나타났다. 인재와 민정은 구세주를 만난 듯 환한 얼굴로 선재를 향해 달려갔다.
“우왓! 오랜만이에요!”
“진짜, 오랜만이네요! 반가워요!”
선재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우리 오전에 만나지 않았나요?”
두 사람은 감옥에서 막 탈출한 사람처럼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 선재를 책장 뒷공간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곤 책장을 회전시켜 그를 가뒀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봐요! 인재씨! 인재씨!!”
닫힌 책장 앞에 선 인재가 말했다.
“제 목소리 들리죠?”
“들려요. 빨리 이거 열어요.”
“역시 방음이 안 된다. 그지? 민정아?”
“지금 장난쳐요? 기껏 구하러 왔더니 무슨 짓이에요?”
안에서 들고나온 두꺼운 책을 넘기며 민정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 우릴 구해준 건 고맙지만 이건 범죄예요.”
“…….”
“여기, 아저씨 기록이 있어요. 세종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받으셨다고….”
“…….”
“할아버지가 주치의였다고….”
“…….”
뒤이어 인재가 조금 큰 목소리로 선재에게 외쳤다.
“지금이라도 소설가들을 찾는데 협조해 주세요. 소설가들을 못 찾으면 일이 커져요.”
선재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말했다.
“다 알고 있군요?”
“어느 정도는요.”
“…….”
“…….”
“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주인 영감님이?”
“네, 약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어요.”
“약? 그, 알약이요?”
“네, 오전에 물어보셨던….”
“아니, 그땐 모른다고….”
“선생님이 아무한테도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하셔서….”
“알겠어요. 그 알약은 대체 뭐죠?”
선재는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저는 ‘제로’라고 하는 그 알약의 임상 실험을 맡고 있었어요.”
“제로? 임상 실험?”
“제로는 선생님이 환자들의 불안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만든 약이었어요.”
“헐, 주인 영감님이?”
“네, 약효가 뛰어나 한때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신약이었는데요. 부작용이 있어서….”
“부작용?”
“중독성이 강하고, 먹으면 환각을 동반한 수면 시간이 계속 늘어나요.”
“마약 같은 건가요?”
“아뇨. 마약은 아니고, 뭐랄까 뇌에서 상상을 담당하는 부분을 자극하는 약이랄까….”
“아, 그래서….”
인재는 여기까지 듣고 지금이라도 당장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황당한 이야기들이라 경찰이 믿어줄지 알 수 없었다. 증거가 필요했다. 명확한 증거.
“그럼, 소설가들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한 건가요?”
“네, 약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소설가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실험이라니….”
“…….”
인재는 크게 한숨을 쉬었고, 민정은 충격받은 얼굴로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