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병원

by 서효봉

해가 질 무렵, 마을에 도착했다. 안 그래도 조용하고 외딴 마을인데 안개까지 심해 으스스하다. 인재와 민정은 손전등을 챙겨 마을 회관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인재가 방송할 때는 분명 열려 있던 문이 지금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어라? 이거 웬 자물쇠?”

“열쇠 없어요?”

“열쇠? 글쎄…. 마을 이장님한테 있을지도”

“이장이 누군데요?”

“동혁씨”

“헐, 대박! 그 아저씨가 이장?”


인재와 민정은 동혁의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은 여전히 문이 열려 있었고, 모든 게 그대로였다. 열쇠가 있을법한 곳을 찾다가 민정이 뭔가를 발견했다.


“오, 이거 봐요!”

“왜?”

“여기 편지가….”

“어디?”


동혁의 책상 첫 번째 서랍에서 그 회색 봉투가 나왔다. Mr. N.이 서재로 보냈던 편지와 똑같은 봉투였다. 민정은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누구나 운명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모르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는 것이다. 감당할만한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문이 열린다.’ - Mr. N. -

역시나 편지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메시지다. 봉투에는 편지와 함께 열쇠가 하나 들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누가 일부러 문을 잠그고 보란 듯이 여기 편지와 열쇠를 넣어둔 것이다. 인재가 열쇠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게 그 열쇠겠지?”

“아마도요…. 근데 찝찝하네요. 왜 열쇠를 이렇게….”

“우리가 올 줄 알고?”

“그러니까요. 그리고 이 메시지는 무슨 경고 같기도 하고”


인재와 민정은 다시 마을 회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어둑어둑한 복도가 나왔고, 양옆으로 또 다른 문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인재는 손전등을 켜 전등 스위치부터 찾은 다음 불을 켰다. 복도 왼쪽에 있는 문에는 방송실, 오른쪽에 있는 문에는 자료실이라 적혀 있었다.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동안 소설가들이 쓴 소설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책으로 출간된 소설들은 책장에 줄지어 꽂혀 있고, 출간되지 못한 소설들은 A4 용지에 출력되어 쌓여있었다. 먼지 가득한 그 자료실에서 자서전을 찾아야 했다. 민정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거, 오늘 안에 찾을 수 있을까요?”

“말할 시간 있으면 얼른 움직여.”


인재는 A4 용지들을 뒤적거렸고, 민정은 책자에 꽂힌 소설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렇게 30분 넘게 자서전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자료실 문이 꽝하고 닫혔다. 그리곤 뒤이어 찰칵하고 문 잠그는 소리까지 나는 게 아닌가?

“오잉? 문이?”

“헐, 잠겼어요! 어떡해요!”

“누가 이런 짓을….”

“지금 그게 중요해요? 우리 갇혔다고요!”


민정이 자료실 문고리를 잡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인재도 매달려봤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민정은 얼른 경찰이나 119에 연락해보라고 했지만, 인재는 태연하게 전화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전화도 안 돼. 여긴 신호가 안 잡혀”

“근데, 이 아저씨 이상하게 태평하네?”

“내가 뭐?”

“이대로 아무도 안 오면 우리 죽는 거 아니에요?”

“죽긴 누가 죽어. 걱정하지 마. 내가 이럴 줄 알고 지원 요청하고 왔어.”

“지원 요청?”


인재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선재에게 뒤이어 와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선재가 도착하려면 적어도 4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인재는 차라리 잘됐다며 빨리 자서전이나 찾자고 민정을 재촉했다. 그렇게 인재와 민정은 2시간 넘게 자서전을 찾기 위해 자료실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자서전은 찾을 수 없었다. 지친 두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아 투덜거렸다.


“으, 여기 정말 있긴 있을까요?”

“없다. 없어. 괜히 생고생했네.”


그렇게 힘없이 한숨을 쉬며 책장을 바라보던 민정이 말했다.


“언제나, 소설의 의미는 그 너머에 존재한다.”

“갑자기, 무슨 소리래?”

“저기 봐요. 저 책장만 작가 순이 아니고, 막 뒤섞여 있길래 봤더니 제목 셋째 줄을 이어보면 말이 돼요.”


정말 그랬다. 민정의 말대로 소설 제목 세 번째 글자를 이어보니 그럴듯한 말이 되었다.


“근데, 저게 무슨 소린데?”

“글쎄요. 너머에 뭐가 있단 말인가?”

“있긴 뭐가. 그냥 벽인데? 밀어볼까?”


인재가 책장 뒷벽을 밀었더니 책장과 벽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좀 더 힘을 주니 벽이 회전문처럼 회전하는 게 아닌가? 잠시 후 책장 뒷공간이 껌벅껌벅하더니 불이 들어왔다. 민정이 놀라 외쳤다.


“우왓! 대박!”

“아니, 이게 무슨….”


인재는 자기가 해놓고도 믿기지 않아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민정은 신난다는 듯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책장 뒤에 나타난 공간은 꽤 넓었고 그 안에 책장들이 또 있었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그 책장에는 아주 오래된 자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민정이 살펴보니 소설가의 마을과 관련된 자료들이었다. 마을이 처음 만들어질 때의 연구용역 보고서, 설계도 같은 게 있었고, 관련된 신문 기사들을 스크랩한 파일도 여럿 꽂혀 있었다. 민정은 그중 하나를 꺼내 읽었다.


“한국의 버뮤다 삼각지대를 찾아가다.”

“버뮤다 삼각지대?”

“여기 이 마을 주변을 말하는 거 같은데요?”

“뭐? 여기?”

“사람들이 이유 없이 계속 실종됐던 곳이래요.”


인재는 등골이 오싹했지만, 태연한 척 말했다.


“그런 거 말고 다른 거 뭐 없어?”

“아, 여기 또 신기한 논문이 하나 있는데요.”

“논문?”

“여기 이 지역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고 하는데요?”

“뭔 소리? 시간의 흐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사실을 증명하는 과학적 증거가 많대요.”

“너, 지금 나 놀리는 거 아냐?”

“못 믿겠으면 읽어보세요.”


인재는 논문을 직접 읽어보았다. 정말 그런 잠꼬대 같은 이야기가 200페이지 가까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그 논문 뒤에 스크랩되어있는 신문 기사는 더 오싹했다. 소설가의 마을 건립을 후원한 소설가들이 하나, 둘씩 실종되고 있다는 특집 기사였다.


“야, 아무래도 빨리 여길 벗어나야겠다. 예감이 안 좋아.”

“저도요. 근데 지원은 언제 와요?”


두 사람은 그 책장의 맨 아래쪽에서 소설가들의 자서전을 발견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새 책 같은 자서전을 넘기다 보니 동혁, 준수, 희경, 루키의 자서전도 찾을 수 있었다. 그 네 명의 자서전을 읽어보던 민정이 말했다.


“찾았어요!”

“뭘?”

“공통점이요.”

“공통점?”

“여기 보면 전부 다른 내용이긴 한데 특이하게 어떤 병원에 입원한 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나와요.”

“병원?”

“네, 세종병원이라는데요?”


인재는 점점 이상해지는 이 상황이 두려웠지만, 지금은 선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민정의 말대로 자서전에서 유일한 공통점은 세종병원이었다. 그렇게 이상한 공통점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책날개 부분을 잠시 읽었는데 거기에 영래의 사진과 함께 눈에 띄는 약력이 하나 보였다.


‘세종병원 정신의학과 전문의 역임’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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