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대접하는 가장 쉬운 방법
쾌적하게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집을 청소하는 것이다. 노동으로 노곤해진 몸을 뉘일 곳이 깨끗해야 푹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집안일을 하고 대청소를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평일에는 깔끔하게 유지하는 정도로만 하고, 주말에만 한 번씩 그동안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생활하고 머무는 공간의 상태는 곧 나의 정신을 반영한다.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는 방과 물건이 잘 정리된 깔끔한 방 중 어디에 몸을 뉘이고 싶을까?
집은 하루종일 바깥에서 고생한 나를 달래주는 공간이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 깨끗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퇴근하고 돌아온 깨끗한 집이 나를 반겨주면 대접받는 기분이다. 호텔 문을 처음 열고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랄까. 반대로 퀴퀴한 냄새가 나고 할 일이 잔뜩 쌓인 더러운 공간으로 퇴근을 한다면 어떨까? ‘대충 시켜 먹고 잠만 자고 나가자...’, ‘왜 이렇게 더럽지? 청소는 나중에 하자…’ 지친 몸으로 겨우 집에 온 나를 달래줄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대접하지 않을 궁리만 하게 된다.
나는 좀 깔끔을 떠는 성격인데,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올대리님 혹시 퇴사하세요?” 퇴사박스에 물건을 가득 싣고 떠나는 퇴사자의 자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제로 퇴근을 하는 건데 퇴사하는 걸로 오해한 사람들도 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면 서류와 폰을 든 사람들이 모여있다. 아무것도 없는 책상에서 스마트폰으로 서류를 스캔해야 잘 나온단다. 이런 나라도 공간이 흐트러질 때가 있는데, 직장에서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다.
어떤 직장을 가도 업무는 힘들고 빌런은 많다. 도대체 내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을 할 때도 있고,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노가다인 일도 있다. 가령 PPT 100페이지의 네모칸 정렬을 맞추는 작업이라던가… 어제의 동료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산이 되어준다던 팀장이 잘못을 뒤집어씌우질 않나, 이간질이 업무였던 중간 관리자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이럴 땐 깔끔 떠는 나라도 집안 청소를 게을리한다. 고생했으니 밖에서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기 일쑤. 청소기도 세탁기도 못 돌린다. 정신없이 일주일이 가고 그제야 집안을 둘러본다. 배달음식과 술을 때려 넣은 나는 돼지가 되어있고 집안은 돼지우리가 따로 없다.
일어나자마자 자고 일어난 흔적을 지운다.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고 침구를 탁탁 털어 이케아 침실을 세팅하듯 정리한다. <타이탄의 도구>와 같이 여느 자기 계발서에 늘 나오는 잔소리가 있다. “매일 아침 침실을 정리하세요. 그것부터 시작하세요. “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나의 공간을 정리하는 습관의 첫 번째 단추가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의견을 덧붙이자면, 내가 매일 아침 침구를 정리하는 이유는 기분 좋은 퇴근을 위해서다. 침실은 내가 하루 중 두 번째로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첫 번째는 사무실). 또, 침대는 나 전용 충전기이기도 하다. 나라는 사람은 저속 충전기가 필요한 모델이기 때문에 7~8시간 정도 잠을 자야 한다. 취침 시간이 11시를 넘어가면 안 된다. 퇴근을 하고 빨리 누워서 자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깨끗하게 세팅된 침실이 나를 부른다. 꿀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서 또 침대 정리를 한다. 쾌적한 출퇴근러의 선순환이 시작되는 첫 번째 지점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사람들은 많은 고민을 한다. 살면서 유일하게 이 두 가지가 겹친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청소기 돌리기다. 청소기를 돌리는 데에도 재능이 필요하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속눈썹까지 볼 수 있어야 하고, 청소기 노즐을 바꿔 끼우는 부지런함까지 갖춰야 한다. 이걸 매일 해도 지치지 않으려면 청소기를 돌리는 데에서 재미까지 느껴야 한다. 그게 바로 나다.
청소기를 매일 돌리면 집안에 뭐가 밟히는 게 없어 뭘 하든 기분이 좋다. 보통 저녁을 먹자마자 청소기를 돌린다. 괜히 자기 전에 깨끗한 바닥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엎드려서 스마트폰도 좀 보다가, 굴러다니는 책도 집어 든다. 기분 좋은 쉼이다. 퇴근하고 잘 쉬어야 잠도 잘 자는 법. 잠을 자는 데에도 기분 좋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대청소를 한다. 가족과 함께 살기 때문에 평일에는 청소기만 돌리고, 대신 주말에는 일주일간의 묵은 때를 벗기는 작업을 한다. 평일 내내 기본적인 청소는 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대청소는 필요하다. 사람은 청소가 필요한 까다로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패브릭 소파 사이에 낀 머리카락과 과자 부스러기들도 빼야 하고, 쿠션도 빨아야 된다. TV나 장식장에 쌓인 뽀얀 먼지도 털어내고 식탁에 지워지지 않은 얼룩도 닦아야 한다. 화장실 물때와 거울에 묻은 양치 자국들도 지워야 하고 바닥 물걸레질도 해야 한다. 작정하고 집을 어지른 게 아닌데도 치울 게 산더미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처음엔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나는 청소에 재능이 있는 편이라 보통 한 시간 반 내외로 대청소를 끝낸다. 넉넉하게 두 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다음 일주일이 달라진다. 멀리 출퇴근을 하면서도 깨끗한 집에서 쾌적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야근이 좀 있더라도 집안일이 부담되지 않는다.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깨끗한 공간을 둘러보면 내가 나를 얼마나 대접하고 관리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나와 내 가족을 또 일주일 동안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주는 뇌물인 셈이다. 시공간은 칼로 자르듯 완전하게 나뉜 게 아니기 때문에 집에서의 기분이 회사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좀 더 건강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다.
일이 엄청 바쁠 때 직장인들이 간과하는 게 있다. 나 자신이다. 시간이 없고 녹초가 됐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매일 배달음식을 먹이고 집안일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포괄임금제와 야근에 이상하리만큼 관대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직장인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회사에 쓰기 때문에 남아있는 게 별로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대접할 시간을 만드세요!라는 말이 와닿기는 쉽지 않지만,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하길 바란다. OTT와 쇼츠를 볼 시간은 많지 않은가? 또 진부하지만 환경을 쉽게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꾸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